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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아의 날씨와 얼굴] 그는 굶어가며 무엇을 말하는가

이슬아 ‘일간 이슬아’ 발행인·글쓰기 교사 입력 2022. 05. 23.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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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이 지면에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칼럼을 쓴 지 4주가 지났다. 원고 마감이란 언제나 생각보다 빨리 당도하는 무엇이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시간이 더디게 흐르는 듯했다. 그동안 단식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도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농성은 계속되고 있다. 그곳을 지키는 활동가 미류가 밥을 굶은 지 42일이 지났다. 미류와 함께했던 이종걸은 39일 만에 의료진의 강권으로 병원에 이송되었다. 다른 곳에서 노동권을 위해 단식하던 제빵기사 임종린은 단식 53일 만에 병원으로 실려갔다. 내가 먹은 식탁을 치우고 설거지를 하다 그들을 생각한다.

이슬아 ‘일간 이슬아’ 발행인·글쓰기 교사

그들에게 시간이 얼마나 더디게 흘렀을지 가늠한다. 타지에 머무느라 직접 찾아가볼 수 없으니 이번에도 그들에 대해 찾아 읽고 쓴다. 다음 마감이 돌아올 땐 부디 그들이 그곳에 있지 않아도 되기를 바라면서.

세 사람이 목숨 걸고 단식하며 외친 구호는 당연하고 소박한 요청들이다. 당연한데 법이 아직 수호하지 않는 권리에 관한 이야기다. 이 이야기들은 더욱더 큰 소문으로 널리 퍼져야 한다. 차별과 노동으로부터 무관한 존재는 아무도 없으니까. 우리 중 누구는 어떤 법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살거나 죽는다. 농성장에 가보지 않고도 어렴풋이 알겠다. 미류와 이종걸과 임종린이 나와 내 이웃들 앞에서 싸워주고 있음을. 이 국가가 과거에 잃은 소중한 사람들과 앞으로 올 사람들을 대신해 싸워주고 있음을. 우리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있다는 걸 믿지 않고는 그렇게 싸울 수 없을 것이다. 자신뿐 아니라 타자를 상상하고 헤아리는 능력 때문에 가능한 싸움일 것이다.

우리 위해 싸우는 미류·종걸·종린

온몸으로 싸우고 있는 미류의 귀한 말들을, 이 지면에 옮겨 적는다. 그의 가느다란 몸과 곧은 목소리를 더 많은 사람들이 보고 들었으면 좋겠다. 지난 5월19일 기자간담회에서의 발언이다.

“정말 묻고 싶습니다. 차별하지 말자는 법을 만드는 게 사람이 굶다 쓰러져야 될 일입니까. 정말 누가 대답해주면 좋겠습니다. 국회에 들어앉아 있는 국회의원이든, 누구든요. 이게 정말 이래야 되는 일인지, 누가 설명해주면 좋겠습니다. 오늘부터 지방선거 공식 선거운동 기간이 시작됩니다. 선거 때문에 제정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도 하더라고요. 그 선거 왜 할까요.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모든 인간이 동등하게 존엄하다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 하나 선언하지 못하는 나라에서, 그 꽃이 다 무슨 소용일까요. 민주주의에 의미가 없다면 그게 꽃인들, 장식용 조화의 색이 붉을지 푸를지를 결정하는 투표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 가깝게는 작년 국민동의 청원부터 도보행진, 그리고 이 봄 단식투쟁까지 시민들이 할 수 있는 건 정말 다 했습니다.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기 위해서 국회 앞까지 길을 내온 15년이었습니다. 이제 국회가 이 다음 길을 내야 합니다. 법안을 심사하고 회의에서 통과시키는 건 국회의 역할이거든요. 종착지는 분명합니다. 차별금지법 제정이라는 상식이자 대세는 아무도 거부할 수 없습니다. 지금 그 당장 그 종착지에 이를 수 없다면, 최소한 그 종착지에 갈 수 있는 길은 국회가 만들어놓아야 합니다. 그게 신속처리안건이라고 생각합니다. 240일 시간을 거쳐서 그 종착지까지 정말 잘 가보자, 약속하시기 바랍니다. 8개월 동안 국회 안에서는 법안을 어떻게 만들어야 되는지 토론을 하십시오. 국민의힘 의원들도 같이하십시오. 반대의견 있으면 심사하면서 토론하면 되지 않습니까. 어떤 우려가 있고, 그것을 어떻게 수정하면 좋을지, 그래서 더 나은 대안은 무엇인지 찾아나가는 것이 법제사법위원회의 역할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국회 본회의에서 300명의 국회의원들이 힌국 사회에 평등이라는 가치를 세우기 위해서 어떻게 더 의미 있는 법을 만들지 토론하십시오. 시민들은 그 법을 통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토론하겠습니다. 법으로 다 할 수 없는 변화는 또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국회 밖에서는 시민들이 또 토론하겠습니다. 같이합시다. 국회 안팎에서 8개월 동안 한국 사회에 평등이 공허한 말이 아니라 시민들의 삶을, 우리의 삶을 바꿀 수 있는 언어가 되게 할지.(…)”

이젠, 국회 안팎서 함께 얘기하자

미류가 굶어가며 내뱉는 말의 일부다. 밥 먹으면서 이 말을 듣고 읽고 전하는 것은 얼마나 쉬운가. 그러니 같이하자. 국회가 신속히 움직이는지 지켜보자. 국회 안팎에서 함께 얘기하자. 옆 사람과도 앞 사람과도 이 법에 관해 말하자. 그것이 바로 미래에 관한 대화일 것이다.

이슬아 ‘일간 이슬아’ 발행인·글쓰기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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