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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사니] 너무 게으른 말

전성필 입력 2022. 05. 23.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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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필 산업부 기자


MBTI(성격유형검사)를 싫어하는 ‘ENTJ’ 유형이다. “문답으로 이뤄진 성격검사 결과가 한 사람의 성향을 대변한다 믿지 않는다”고 항변한다. 그러나 돌아오는 답은 “네가 지나치게 이성적인 ENTJ라 그래”라는 말이다. 나 자신이 어떤 성향을 가졌는지 객관적인 시선으로 따져보는 것은 다양성을 이해하는 첫걸음이기도 하다. 나 자신을 알아야 타인이 나와 다르다는 점을 알고, 각자의 성향 차이까지 이해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늘 마음속에서는 거부감이 올라온다. ‘그렇다고 나를 16가지 유형 중 하나로 규정한다고?’

수년 전 ‘혈액형 성격론’이 유행할 때도 유사 과학에도 못 미치는 근거 없는 낭설이라고 열변했었다. 수많은 인간의 성격을 어떻게 4개의 혈액형으로 구분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누군가 혈액형을 물은 뒤 “B형이라 까칠하시겠네요”라 할 때면 “모든 B형 성격이 같냐”고 반문했다. 나와 같은 혈액형을 갖고 있지만 성격이 정반대인 사람을 예로 들었다. “저 사람이 나랑 같아 보이냐”고 따져 물었지만, 돌아오는 답은 “역시 B형이라 까칠하시네요”였다.

인간은 타인을 ‘분류하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위험한 인물인지, 가까운 거리에 둬도 되는 존재인지 판단하기 위해서다. 상대의 성향을 오랫동안 기억하기 위해선 단순화해 분류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분류 결과는 향후 불필요한 충돌이 발생하지 않고, 서로 위해를 가하지 않는 관계를 맺어가는 데 쓰인다. 일종의 생존 본능인 셈이다.

하지만 분류 유형이 지나치게 적거나 모호하면 ‘편견’이 생긴다는 치명적 오류도 있다. 특정 요소를 과장해 관계없는 다른 요소들과 연결하면서 단순화시키는 것이다. 최근 취업 시장에서 기업들이 외향적 성향(E)인 사람만 지원해 달라는 식의 공고를 내 원성을 산 것은 이런 편견에서 비롯됐다. 객관화하기 어려운 업무 능력을 성격을 분류한 MBTI와 연결시키면 간편하게 평가할 수 있다는 오류를 저지른 것이다. 대선 정국에서 유행했던 ‘1·2번남’ ‘이대남·녀’ 같은 말도 투표 성향이 나이, 외모, 성격과 연결된다는 편견이 만들어낸 밈(meme)이다.

정치권과 산업계에서도 ‘나이’라는 단 하나의 분류법으로 수많은 사람을 동일한 성향을 가진 집단으로 규정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MZ세대가 좋아하는 캐릭터’ ‘MZ세대를 겨냥한 트렌디한 상품’처럼 ‘MZ세대’라는 말은 공공연한 마케팅 용어로 자리 잡았다. ‘민지야 부탁해’라며 청년층을 위한 정책을 펼치겠다고 한 대선 후보는 대통령에 선출되기도 했다. 기업에서는 너도나도 MZ세대의 의견을 청취한다며 ‘역 멘토링’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과거부터 있었던 저연차 직원과 임원 간 만남은 어느샌가 ‘MZ세대와의 소통’과 같은 말로 예쁘게 포장됐다.

단어 하나만으로 198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 사이에 태어난 밀레니얼세대와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출생한 Z세대를 같은 성향을 지닌 하나의 집단으로 만들 수 있을까. 10대 후반부터 40대 초반까지 20여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세대가 하나로 통합되는 마법 같은 일은 과연 실재할까. 지난해 기준 한국의 MZ세대 인구는 약 1700만명. 한국인의 약 34%가 ‘개인주의가 강하다’ ‘집단문화를 거부한다’는 성향이 있다 하면 누가 선뜻 받아들일까.

현실에서 Z는 M을 ‘꼰대’라 부르고, M은 Z를 ‘요즘 것들’이라 하며 대립한다. 많은 Z는 자신들이 MZ세대로 묶이는 것에 거부감을 느낀다고 한다. Z 중 누군가는 M보다 더 기성세대의 문화를 고집한다. 생물학적 나이만으로 사람을 단순화하고 하나의 그룹으로 묶는 행위가 얼마나 동질성을 만드는 데 효과적일지 의문이다. 한 사람이 자라왔던 개별적 환경과 개인적 성향, 자아가 모두 다르다는 점을 애써 무시하는 ‘게으름의 표상’일 뿐이다.

병아리를 감별하듯 손쉽게 다양성의 싹을 자르는 세태를 경계해야 한다. 그러자 누군가 내게 말했다. “네가 개인을 중시하는 MZ세대라 그래.”

전성필 산업부 기자 f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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