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공유지, 우리는 이웃을 잃었다 [넥스트브릿지]

최유진 입력 2022. 5. 23.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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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스트 브릿지] 공유지를 주민에게 돌려주는 법

정책네트워크 넥스트 브릿지(Next Bridge)는 지식경제, 기후, 디지털,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등 전환의 시대를 직면하여 비전과 정책과제를 연구하는 포스트 386 세대(90년대 대학을 다닌 사람에서 90년대생 청년) 중심의 연구자·정책 전문가의 네트워크다. 넥스트 브릿지는 주권자인 국민들이 사회 지향과 정책과제에 대한 이해가 높아야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와 사회발전이 가능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정책담론을 위한 대중적인 소통을 희망하며 다양한 분야의 정책 전문가들이 자기 분야의 정책과제를 가지고 매주 정책 칼럼을 연재한다. <편집자말>

[최유진 기자]

공유지는 우리 주변에 다양하게 분포한다. 도시 지역을 기준으로 보더라도 주민의 건강을 지키는 산책로나 등산로, 아름다운 풍경으로 주민의 휴식 공간이 되는 강과 호수, 녹지 등은 모두 공유지이다.

공유지와 관련된 논쟁적 주제는 '공유지의 비극'이다. 공유지의 비극은 인간이 이기적으로 자신만을 위해 공유지를 사용하면, 공유지가 황폐하게 되어 결국 아무도 이를 사용할 수 없게 되는 상황에 이를 수 있음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목초지에서 목동들이 자신의 소를 더 살찌우기 위해 경쟁적으로 풀을 뜯기는 시간을 늘리면, 언젠가는 재생하는 풀의 속도가 사라지는 풀의 속도를 이기지 못해, 목초지에는 풀이 모두 사라지게 된다. 종국에는 그 어떤 목동도 자신의 소에게 풀을 뜯길 수 없는 엄청난 '비극'이 발생한다.

공유지

공유지의 개념은 이렇게 정의된다. 우리 주위에 존재하는 모든 재화(혹은 부지)는 경합성 및 비경합성 여부와 배제성 및 비배제성 여부에 따라 네 가지의 유형으로 분류가 가능하다.
   
 우리 주위에 존재하는 모든 재화(혹은 부지)는 경합성 및 비경합성 여부와 배제성 및 비배제성 여부에 따라 네 가지의 유형으로 분류가 가능하다.
ⓒ 최유진
 

경합성은 재화를 사용(소유)하기 위해 다른 사람과 경쟁해야 하면 발생하는 특징이고, 배제성은 재화를 사용(소유)하기 위해 요금을 지불해야 하면 발생하는 특징이다. 경합성과 배제성이 모두 발생하는 재화를 민간재라 부르고, 비경합성과 배제성을 특징으로 하는 재화를 요금재라 부르며, 두 성질이 모두 존재하지 않는 즉, 비경합성과 비배제성을 특징으로 하는 재화를 공공재라 부른다.

마지막 재화의 유형은 이 칼럼에서 주로 다룰 공유재인데 공유재는 경합성과 비배제성을 특징으로 한다. 다시 말해 사용(소유)을 위한 경쟁은 발생하지만, 요금을 따로 지불할 필요가 없는 재화가 공유재이다.

공유재인 부지를 공유지라 한다. 공유지들의 경우 산책로나 등산로, 강과 호수, 녹지처럼 특별한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도 사용할 수 있지만, 지역 주민 모두가 동시에 사용할 수는 없기에 이론적으로는 경합성이 발생한다.
     
 산책로는 훌륭한 공유지이다. 산책로에서 주민은 주민을 만나 연결망을 형성한다.
ⓒ 최유진
 
인간은 이기적이기에 공유지의 비극은 피할 수 없다고 주류 사회과학은 단언한다. 물론 그들은 공유지의 비극을 막기 위한 나름의 처방을 내놓았다. 공유지를 민간재로 바꾸어 버리면 공유지의 비극을 사전에 막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공유지를 이용하는 사람에게 요금을 부과하면 되는데, 입산 요금을 받거나 낚시 면허를 발급하는 것 등을 그 예로 볼 수 있다.

이보다 더욱 과격한 방법도 있다. 공유지를 개발하여 판매하는 것이다.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파트와 상가 건물의 건설 현장은 실상 공유지를 파괴하는 현장이다. 그런데 누가 공유지를 파괴할 권리를 관료에게 준 것일까? 누가 공유지를 약탈하고 있는가?

공유지 개발의 대가

국토교통부의 <건축허가 및 착공통계>에 따르면 2011년에는 건축허가 면적이 약 9880만㎡이었으나 2020년에는 약 1억 3500㎡로 27% 정도 상승하였다. 당연한 결과로 같은 기간 주민 1인당 도시면적은 증가(84.96㎡→89.84㎡)하였고, 녹지면적은 감소(274.80㎡→265.34㎡)하였다(국토교통부, 도시계획현황)

기존 건축물이 '도시'에 누적되어 쌓이는데도 새로운 건축허가 건수는 오히려 증가하고 있으며, 녹지 확보에 대한 관심에도 불구하고 녹지면적은 늘어나지 못하고 감소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앞서 정의한 것처럼 공유지는 경제적으로는 경합성과 비배제성을 특징으로 한다. 하지만 가이 스탠딩(Guy Standing)은 저서 <공유지의 약탈>에서 공유지를 이런 경제적인 정의로만 이해하면, 공유지의 풍부하고 다양한 기능을 제대로 인식할 수 없다며 경계했다. 공유지를 뜻하는 영어 단어인 'common'은 초기 영어의 '공동체'를 의미하는 단어인 'commune'에서 왔다. 이는 곧 공유지가 공동체 활동의 모태가 되는 공감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공유지의 보존은 공동체의 활성화와 큰 관련이 있다. 공동체 활성화는 지역사회의 회복력(resilience)을 향상시켜 자연재해나 인간의 잘못으로 인한 사회적 참사가 발생할 경우 공동체가 이를 빠르게 극복하고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한다.

에릭 클라이넨버그는 저서 <도시는 어떻게 삶을 바꾸는가>에서 시카고의 폭염 사례를 한 예로 제시한 바 있다. 끈끈한 연결망을 유지하는 시카고의 지역사회는 그렇지 않은 지역사회에 비해 폭염이라는 자연 재해 앞에 피해가 훨씬 적었다는 것이다. 엔데믹이 논의되고 있지만 여전히 위세를 떨치는 코로나 펜데믹과 기후위기, 4차 산업혁명, 저출산 고령화 등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정해진 미래' 앞에 다시금 '공동체'가 주목받는 이유이다.

그런데 지속적인 공유지의 개발은 공동체 활성화의 근간을 파괴함으로써 연결망의 해체를 가속화한다. 공유지 개발의 대가로 우리는 '이웃'을 잃었다.

공유지를 주민에게 돌려주는 방법

다가오는 6월에는 전국동시 지방자치 선거가 실시된다. 시·도지사와 시·군·구의 장 및 각급 의원들의 공약을 살펴보고 있노라면 대부분 공유지를 파괴하여 도시를 발전시키겠다는 구상에 머무르고 있다. 균형 발전 전략의 차원과 주민의 삶의 질을 향상하기 위해 적절한 공간의 배치는 당연히 필요하다. 하지만 개발 과정에서 지속해서 공유지가 파괴된다면, 공동체 활성화는 요원하며, 위기에서 구할 지역사회의 회복력도 기대하기 어렵다.

이에 공유지를 주민에게 돌려주기 위해 몇 가지 정책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개발의 이익을 주민에게 돌려주는 방법으로 시민기금 혹은 시민펀드를 적극적으로 조성할 필요가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정치 지도자는 일반적으로 관내 대규모 산업 시설의 입지나 산업의 유치, 사회간접자본(SOC) 시설의 증가, 대규모 택지 개발을 환영한다. 지방세가 증가하고 새로운 일자리도 창출되기 때문이다.

새로운 산업 시설의 입지 등으로 증가하는 지방세 분 중에 일정 비율을 매년 적립하고, 관내 기업이나 공공기관의 사회공헌자금의 투자도 유도하여 마르지 않는 기금의 원천을 만들 수만 있다면 시민의 공적 활동을 지원하는 시민기금의 조성이 가능하다. 여기에 펀드 상품을 개발하여 시민의 참여를 이끌어 낸다면, 기금이 시민 품으로 돌아올 것이다.

둘째, 지역의 도시공사를 시민공모주 방식으로 전환하거나 신설하여 개발의 이익을 주민에게 환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방자치단체의 도시공사는 도 혹은 시유지의 개발과 관리를 총괄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공공임대의 공급을 위한 대규모 도시의 건설은 주로 한국토지주택공사가 큰 역할을 하지만 지역 도시공사 역시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구역 내 공공 부지의 개발을 시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시민공모주 방식으로 도시공사를 운영하면, 도시공사가 투자자로 참여하는 도시의 개발에 시민의 지분이 발생한다. 개발의 이익을 시민에게 환원하는 가장 창의적인 방법이다. 시민에게 개발의 이익이 환원될 수 있다면, 약탈당한 공유지를 보상받을 길이 열리는 것이다.

셋째, 지역자산화를 정책적으로 지원하여 주민을 위한 공간 창출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지역자산화란 사회적경제기업 등 조직화된 주민이 공동으로 부동산을 소유하여 지역사회를 위한 사업이나 활동을 위해 활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목포시의 1897 건맥펍 사례가 대표적인 지역자산화 사례이다. 도시에 건축되는 수많은 건물은 대부분 사적 소유이거나 공적 소유이다. 사적 소유는 활용에 상당한 비용을 지불해야 하고 공적 소유 건물은 활용 장벽이 대단히 높다.

도시의 수많은 건물 중 저렴한 비용이나 무상으로 청소년, 청년, 노인 등 사회적 취약계층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건물은 거의 없다. 지역자산화 사업을 통해 이들 계층의 활동을 지원하는 공간을 공동체가 확보할 수 있다면, 약탈된 공유지의 일부가 회복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개발 이익의 환원을 넘어 공동체 공간의 지속적인 확보가 필요하다.
  
 지역자산화의 모범을 보여준 1897 건맥펍. 건어물 거리의 상인들이 조합원으로 참여해 출자하고, 사회적 금융을 더해 상가 건물이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새롭게 탄생했다.
ⓒ 최유진
 
넷째, 진정한 주민주도 도시재생의 실현을 통해 도시를 주민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2013년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국회가 통과시킴으로써 주민이 주도하는 도시재생의 가능성이 높아졌다. 하지만 거의 10년이 지난 지금 진정한 주민주도의 도시재생은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여전히 관료가 사업 부지와 방법을 정하고 주민은 역량 강화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동원하는 것이 현실이다.

진정한 주민주도 도시재생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주민의 역량을 강화하여 주민 중심의 조직체를 발굴하고 이 조직체를 중심으로 도시재생을 추진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가 추진하는 소규모 도시재생 사업도 마찬가지이다. 주민이 동원 대상이 아니라 추진 주체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주민 스스로 역량 강화를 위해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어야 하며, 주민의 아이디어가 현실화 될 수 있도록 적절한 공적 투자가 필요하다. 기존 도시개발, 공동체 활성화, 도시재생 등으로 흩어진 예산을 통합하여 주민이 원할 때 원하는 방식으로 지원하는 포괄적 지원 방법을 고민할 때이다. 지금처럼 '연초 사업의 공모, 연말 정산'과 같은 방식으로는 주민의 창의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쇠퇴한 구도심의 문을 닫은 슈퍼마켓이 동네 책방으로 새 삶을 시작했다. '부여 세간'의 모습이다. 지역 주민이 스스로 기획한 이 공간에서 공동체 활성화가 기획되고 있다.
ⓒ 최유진
 
개발 이익의 주민환원은 당연한 명제이다. 관료가 중심이 되어 주민을 위한 사업을 진행하는 기존의 방식으로는 공유지를 약탈 당한 주민에 대한 제대로 된 보상이 이루어질 수 없다. 개발 이익의 환원을 넘어 진정한 공동체 활성화가 가능할 수 있도록 공유지를 주민에게 회복시켜주는 더 적극적이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방안이 많이 도출되기를 희망한다.

* 필자소개: 최유진. 도시행정학 박사. 현재 강남대학교 공공인재전공 부교수로 재직 중이며, 강남대학교 사회적기업지원센터 및 경기도 하남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의 센터장을 겸직하고 있다.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와 도시의 사회적 가치를 담은 책 『도시, 다시 살다』(가나출판사)를 최근에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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