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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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중진국 함정' 벗어나지만 미 추월은 지난한 과제

박현 입력 2022. 05. 23. 18:26 수정 2022. 05. 23.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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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의 G2 기술패권][박현의 G2 기술패권] _19

‘경제추격론’ 연구 권위자인 이근 서울대 석좌교수(경제학)는 “2030년대 중반에 미·중의 경제규모가 비슷해져 본격적인 G2 시대가 열릴 것으로 예상한다”며 “다만 어느 한쪽도 압도적이지 못하고 거의 비슷한 규모 내에서 30~40년 가는 그런 시기가 올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길고 긴 패권 경쟁이 우리에게 주는 함의는 섣불리 어느 한쪽의 승리를 예단하고 거기에 편승하는 전략은 우리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일 것이다.

중국 인민들이 지난해 1월15일 후베이성 우한에서 코로나19 환자 임시 병원으로 사용됐던 컨벤션센터에 내걸린 시진핑 국가주석의 사진을 보고 있다.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인해 주요 도시들이 봉쇄되면서 올해 경기지표가 큰 폭 둔화하고 있다. 우한/AFP 연합뉴스

중국 러우지웨이 재정부장(장관)은 2015년 4월 중국이 ‘중진국 함정’에 빠질 가능성이 상당함을 경고했다. 그는 당시 칭화대에서 열린 포럼에서 “중국은 앞으로 5~10년 내 중진국 함정에 빠질 가능성이 50% 이상”이라며 “매우 빠른 속도로 고령화사회로 진입한 것이 주요 원인”이라고 말했다. 중국 고위 관리가 공개적으로 중국 경제의 정체 가능성을 언급해 당시 많은 이를 놀라게 했다. 그는 중진국 함정을 피하려면 교육과 인적자본 투입을 늘리고, 노동시장·호구(후커우)제도 개혁 등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듬해인 2016년 3월에는 리커창 총리가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다시 경고음을 발했다. 그는 “앞으로 5년 동안 우리는 ‘중진국 함정’에 빠지는 걸 피하기 위해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중진국 함정은 압축성장으로 중진국에 빠르게 진입한 국가가 비용 상승과 경쟁력 약화 등으로 장기간 고소득국가 진입에 실패하는 현상을 말한다. 실제로 한국·대만·싱가포르 등 일부 동아시아 국가를 제외한 다수의 개발도상국들은 중진국에 접어든 이후 장기간 성장 정체에 빠졌다. 브라질·아르헨티나 등 중남미 국가들이 대표적이다. 미국 뉴욕연방준비은행이 2020년 조사한 자료를 보면, 1978년 중진국이었던 52개국 중 고소득국가 진입에 성공한 나라는 8곳뿐이었다. 대부분은 중진국에 잔류했고, 8곳은 저소득국가로 추락하기도 했다. 중진국 함정을 벗어나는 게 쉽지 않은 과제라는 걸 알 수 있다. 중진국 분류 기준이 명확히 정의돼 있지는 않은데, 뉴욕연은은 1인당 국민소득이 미국 대비 10~50%인 국가를 중진국으로, 50%를 넘어서면 고소득국으로 분류했다.

중국은 경제규모로 보면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이지만, 1인당 국민소득으로 따지면 여전히 중진국이다. 2020년 기준 중국 1인당 국민소득은 미국의 30% 수준이다. 한국이 1994년 진입한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도 중국은 2019년에야 넘어섰다. 뉴욕연은은 보고서에서 “중진국 함정에 빠진 경제는 자본과 노동력이라는 요소 투입 주도 성장에서 기술과 교육에 기반한 성장으로 전환하는 데 실패했다는 걸 뜻한다”고 설명했다. 결국 인적자본 축적과 기술혁신을 통한 생산성 향상이 핵심이라는 얘기다.

중국 고위 관리들이 2015년께부터 중진국 함정을 경고한 것은 바로 이 부분이 취약하다는 걸 스스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국은행 조사국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중국의 총요소생산성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급격히 둔화했다. 한은은 “총요소생산성은 중국 경제 성장에 상당 부분 기여해왔으나 금융위기 이후 증가세가 눈에 띄게 약화되면서 성장률 둔화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고 밝혔다.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2000~2009년 연평균 10.3%에서 2010~2019년 7.7%로 둔화했는데, 대부분 총요소생산성 하락(-2.4%포인트)에 기인했다는 것이다. 한은은 “총요소생산성은 2000년대 들어 교역 증대, 외국인 투자 등 대외 개방에 힘입어 빠르게 증가했으나, 금융위기 이후 과잉설비와 기업 구조조정 지연으로 증가세가 크게 둔화했다”고 분석했다. 중국 정부도 이런 상황에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2015년 발표한 ‘중국제조 2025’ 전략도 국제정치에서는 미국과의 패권 경쟁 차원에서 주로 관심을 갖지만, 경제적 측면에서만 보자면 중진국 함정에서 벗어나려는 기획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중국은 중진국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낙관적·비관적·중립적 세가지 시각이 존재한다.

첫번째, 중국이 지금까지의 발전 추세를 지속하는 낙관적 시나리오가 전개되면 2030년대 중반에 고소득국 진입이 가능하다. 이는 시진핑 국가주석이 2020년 10월 19기 중앙위원회 5차 전체회의에서 밝힌 목표를 달성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 주석은 당시 “2035년까지 (경제규모) 총량 또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두배로 커지는 성장”을 목표로 제시했다. 이를 기반으로 신중국 수립 100년이 되는 2049년까지 세계 최강국으로 도약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몽을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빠른 고령화와 인구 감소, 과다 부채, 낮은 교육수준과 생산성 둔화 등 누적돼온 구조적 요인을 해결하지 못한 채 정부의 과도한 기업 규제와 미-중 갈등 지속이라는 변수까지 더해지면서 성장률이 급락할 것이라는 시나리오다. 중국은 1979년 시작된 강제적인 한자녀 정책으로 출산율이 급락하면서 생산연령인구(15~64살)는 이미 2013년 정점(10억1천만명)을 찍었다. 2033년에는 초고령사회(65살 이상 인구가 20% 이상) 진입이 예상된다. 한국·일본이 부자 나라가 된 뒤에 고령화사회에 진입한 것과 달리, 중국은 그 전에 고령화를 맞게 돼 성장동력이 더 빨리 소진될 수 있다. 소득 1만달러 진입 시기의 고등교육 수준도 중국은 한·일에 못 미친다. 또한 민간부문(가계와 비금융기업) 부채 비율은 2008년 국내총생산 대비 112%에서 지난해 상반기 218%까지 급격히 확대됐다. 이런 과다 부채의 연착륙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부채위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본의 부동산 버블 붕괴와 비슷한 이런 비관적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경우 중국의 조기 고소득국 진입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세번째는 중국이 중진국 함정에서 벗어나는 데는 성공하지만 그 시기가 중국 정부가 제시한 목표보다 지연되는 중립적 시나리오다. 중국이 중진국 함정을 벗어날 수 있다고 보는 근거는 중남미 국가와 달리 제조업 경쟁력이 강하고, 첨단기술 관련 대규모 연구개발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미국의 기술통제 강화와 중국 정부의 기업 규제 강화로 인해 혁신 역량이 약화되고 있는 점이 걸림돌이다. 한은은 보고서에서 “디레버리징(부채 구조조정) 기조, 생산성 둔화 지속, 기업 규제 및 혁신 역량 제약, 미-중 갈등 지속 등 구조적 요인을 종합적으로 보면 향후 중국 경제는 낙관적 경로보다는 중립적 경로에 근접할 것”이라며 “제조업의 글로벌 경쟁력, 신인프라 확대 등 첨단기술에 대한 대규모 투자, 내수시장의 잠재력 등이 성장 추세의 급격한 하락을 방지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은은 2035년까지 중국이 연평균 3% 후반대의 성장을 지속해 1인당 국내총생산이 1.74배 커질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시 주석이 제시한 2배 수준에 미치지는 못할 것이라는 얘기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낙관적 시나리오를 제시하는 전문가들이 많았으나, 미-중 패권 경쟁의 심화와 정부의 민간기업 개입 강화, 코로나19 봉쇄정책 등의 악재가 잇따라 터지면서 중립적 시나리오에 무게를 두는 전문가들이 점차 늘고 있다. ‘경제추격론’ 연구 권위자인 이근 서울대 석좌교수(경제학)는 “미국의 대중국 견제가 없었다면 2030년대 초반에 중진국 함정에서 벗어날 것으로 예상했는데 이 변수가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며 “중진국 함정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산업의 업그레이드가 핵심이며 이를 위해선 기술 접근성이 중요하다. 기술 접근에 차질이 생기면 중진국 함정에서 벗어나는 시기도 좀 늦춰질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이 경제규모에서 미국을 추월하는 시기에 대해서도 비슷한 전망들이 힘을 얻고 있다. <블룸버그>는 올해 2월 자체 연구조직에서 미-중 간 장기 성장 예측 결과 “중국이 기존 추세대로 성장을 이어간다면 10년 내 미국을 추월할 것이지만 그런 결과가 보장된 것은 결코 아니다”라고 밝혔다. <블룸버그>는 “부채위기가 발생할 경우엔 일본처럼 미국을 영영 따라잡지 못하게 되며, 부채위기가 발생하지 않더라도 국제적 고립과 인구 감소, 정부 실패가 결합되면 이와 비슷한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근 교수는 가장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로 중국이 미국과 비슷한 경제규모가 되더라도 미국을 따돌리지는 못할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 교수는 “2030년대 중반에 미·중의 경제규모가 비슷해져 본격적인 G2 시대가 열릴 것으로 예상한다”며 “다만 어느 한쪽도 압도적이지 못하고 거의 비슷한 규모 내에서 30~40년 가는 그런 시기가 올 것 같다”고 말했다. 미-중의 경제패권 경쟁이 지금부터 반세기 이상 지속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길고 긴 패권 경쟁이 우리에게 주는 함의는 섣불리 어느 한쪽의 승리를 예단하고 거기에 편승하는 전략은 우리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일 것이다.



박현 | 논설위원
1994년부터 경제·국제·사회부에서 주로 일했으며, 워싱턴특파원·국제부장·경제부장·부국장 등을 지냈다. 특파원 시절 오바마-시진핑 정상회담, 미국의 대외정책과 군산복합체 등을 취재했으며, 2015년 미국의 사드 배치 의도를 폭로한 보도로 관훈언론상 국제보도상을 수상했다. 코로나19 사태 직전까지 알리바바 등 중국 주요 첨단기업과 금융회사들의 발전상을 현장 취재했다. G2의 패권 경쟁이 한국 경제와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하고 있다.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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