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갑생의 바퀴와 날개] '반값 통행료'로 화물차 급증, 고속도로 안전투자 더 늘려야

강갑생 입력 2022. 5. 24. 00:14 수정 2022. 5. 24. 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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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갑생 교통전문기자

문재인 정부가 민자고속도로의 공공성을 강화한다며 ‘민자고속도로 통행료 관리 로드맵’을 발표한 건 2018년 8월 말이었다. 당시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김현미 국토교통부(국토부) 장관 명의로 발표된 로드맵의 핵심은 민자도로 통행료 인하였다. 한국도로공사(도공)가 운영하는 재정고속도로의 평균 1.43배 수준인 민자도로 통행료를 2022년까지 3단계에 걸쳐 1.1배 내외로 낮추겠다는 계획이었다.

이를 위해 정부는 세 가지 방법을 동원했는데, 첫째는 운영기간 연장이었다. 개통 후 30년 동안 운영하면서 투자비를 회수하기로 돼 있던 걸 20년 더 늘려주는 대신 통행료를 내리는 방식이다. 서울춘천고속도로가 대표적이다. 둘째는 출자자 지분과 차입금 금리 변경 등 자금재조달을 통해 생기는 이익을 활용해 통행료를 인하하는 것이다. 구리포천·부산신항·인천김포고속도로 등이 해당한다.

「 대구부산선은 대형차 59%나 늘어
고속도 사망사고 절반이상 화물차
다른 운전자 등 교통안전에 큰 영향
문제점 분석해 정밀한 대책 세워야

통행료 인하 이후 대구부산선에는 중대형 화물차의 운행이 많이 늘었다. [CCTV 화면 캡처]

셋째는 아예 기존 투자자의 지분을 인수할 신규 투자자를 찾는 방식이다. 기존 투자자에게 약속된 운영기간 동안 통행료 인하에 따른 손실을 신규 투자자가 먼저 메워주고 이후 20년간 운영하면서 투자비를 회수한다. 재정도로보다 통행료가 평균 2배 이상인 천안논산고속도로(천안논산선)·대구부산고속도로(대구부산선)에 이 방식을 적용했다.

하지만 두 도로는 인수 뒤 20년만 운영해선 투자비 회수가 어렵다는 전망이 나온 탓에 도공을 신규 투자자로 내세웠다. 도공이 우선 손실분을 메워준 뒤 추후 운영하면서 투자비를 거둬들이라는 것이었다. 그 결과 천안논산선은 2019년 말에 승용차 47.9% 대형차 48%, 대형화물차 51%, 특수화물차는 52%씩 통행료를 인하했다. 대구부산선도 2020년 말부터 승용차 52.4%, 대형차 53%, 대형화물차 55%, 특수화물차는 56%씩 인하했다.

당시 이러한 정책을 두고 적지 않은 비판이 나왔다. 우선 통행료 인하가 승용차 이용을 부추길 거라는 우려였다. 유정훈 아주대 교수는 “정부가 왜 굳이 민자도로 통행료를 일괄적으로 낮춰 승용차 이용을 권장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부채 30조원 넘는 도공에 부담 떠넘겨

30조원이 넘는 부채를 짊어진 도공에 부담을 떠넘긴 것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 하헌구 인하대 교수는 “막대한 부채를 진 도공에 또다시 큰 부담을 안기면서까지 무리하게 민자도로 통행료 인하를 추진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민자도로의 운영기간 연장은 현세대가 통행료를 덜 내기 위해 미래세대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거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이들 논란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런데 당시엔 별로 주목받지 못했던 새로운 문제가 최근 떠올랐다. 통행료를 낮췄더니 덩치 큰 화물차가 대폭 늘어난 사실이 확인되면서 도로 안전에 빨간불이 켜진 것이다. 〈중앙일보 5월 19일자 ‘문 정부 때 만든 공포의 도로 …‘반값 통행료’ 화물차 50% 폭증’ 온라인 보도〉

이에 따르면 국토부와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이 운영하는 ‘교통량정보제공시스템(TMS)’의 통행 현황을 분석했더니 대구부산선의 전체 교통량(2021년 기준)은 요금 인하 전보다 평균 18.4% 늘었다. 반면 중형화물차는 40.8% 증가했고, 대형화물차는 이보다 더 많은 58.7%나 늘어났다.

하루 평균 2000대가량 다니던 대형화물차가 3300대로 1300대나 증가한 것이다. TMS에선 바퀴 축이 3~5개인 화물차는 중형으로, 트레일러 형태의 화물차는 대형으로 분류한다. 천안논산선도 전체 교통량은 12.4% 늘어난 가운데 중형화물차는 49.8% 증가했고, 대형화물차도 14.9% 더 많아진 것으로 확인됐다.

대형사고 유발자 1t 초과 사업용

이렇게 화물차가 늘어난 건 상당 부분 통행료 인하 때문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기존에 요금 부담 탓에 이용을 꺼렸던 화물차들이 대거 이들 고속도로에 진입하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한국교통연구원이 주최한 ‘미래 민자고속도로 통행료 관리를 위한 정책간담회’에서 발표된 자료를 보면 통행료 인하 이후 천안논산선의 차량은 증가했지만 23번 국도 등 주변 도로의 교통량은 줄었다. 당시 하헌구 교수는 “화물차는 통행료 등 비용에 상당히 민감하다”며 “화물차 증가는 통행료 인하가 주요한 이유 같다”고 밝혔다.

고속도로 차량 몰려 주변 국도 교통량 줄어

화물차, 그것도 중대형 화물차의 증가는 여러모로 도로 안전에 상당히 위협적인 게 사실이다. 도공 자료를 보면 최근 3년(2018~2020년)간 고속도로에서 발생한 화물차 가해사고 사망자는 302명으로 전체 고속도로 사고 사망자 582명의 절반을 훌쩍 넘는다. 화물차는 한번 사고가 났다 하면 대형사고란 의미다.

정부나 전문가도 통행료 인하로 인한 화물차 급증은 미처 예상치 못했던 것 같다. 유정훈 교수는 “통행료 인하가 교통안전 문제를 야기할 거라는 건 생각지 못했다”며 “화물차가 다른 운전자에게 주는 부담감과 교통안전에 미치는 영향을 더 살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통행료 인하를 통해 서민 부담을 덜어준다는 취지 못지않게 중요하고 양보할 수 없는 가치가 안전이다. 낮춘 통행료를 다시 올리는 건 반발도 크고 명분도 약해서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제라도 정부와 도로관리 주체들이 이들 도로의 안전관리에 더 힘을 쏟고 투자해야만 하는 이유다. 또 현 정부에서도 통행료 인하 정책을 계속 추진할 거라면 앞선 도로들의 효과와 문제점을 꼼꼼히 분석해 보다 정밀한 안전대책을 함께 준비해야 한다.

강갑생 교통전문기자 kks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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