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소문 포럼] 무모함의 시대, 복권형 투자

김창규 2022. 5. 24.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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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규 경제에디터

# ‘투자의 현인’으로 불리는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이사회 의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미국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연례 주주총회를 열었다. 코로나19 여파로 3년 만에 열린 대면 주총은 팀 쿡 애플 CEO, 제이미 다이먼 JP 모건 CEO 등을 비롯해 4만여명이 몰릴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다. 그런데 버핏은 이런 축제의 자리에서 요즘 주식시장을 도박장에 비유하며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월스트리트 금융사가 투기적 행동을 부추기고 있다”며 “이들은 자본주의라는 식탁에서 떨어지는 빵부스러기를 챙겨 어떤 식으로든 돈을 번다”고 했다. 그는 “최근의 투기적 투자 행위를 보면서 터무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또 “정상적 투자가 아닌 투기성이 강한 거래를 부추겨 대기업이 증시 포커판의 칩으로 전락했다”고 비판했다.

# 코로나19로 경기침체를 우려한 세계 각국이 돈을 푼 탓에 시중엔 돈이 넘쳐났다. 세계의 ‘개미(개인투자자)’는 직접 투자에 나섰다. 단타 매매는 물론이고 투기성 높은 거래에도 과감히 뛰어들었다. 미국에선 한물갔다고 평가받던 종목이 급등락을 반복했다. 그런데도 극소수의 성공신화를 꿈꾸며 수많은 개미가 직접 투자 대열에 올랐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국내 20대 남성의 연간 거래회전율은 무려 6000%를 넘어선다. 계좌 잔고가 100만원이라면 6000만 원어치의 주식 매매를 했다는 뜻이다. 자본시장연구원이 지난해 개인투자자 20만명의 투자를 분석해 보니 ▶개인투자자는 주가 변동성이 높은 유형의 주식에 집중 투자했고 ▶거래회전율, 일중거래(특정 종목을 당일 사서 당일 파는 것) 비중 등이 매우 높아 단기적이고 투기적이었으며 ▶투자성과는 시장수익률보다 낮았고 ▶신규투자자의 60%가 손실을 본 것으로 분석됐다. 개인투자자가 직접투자로 높은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진단이다.

「 투자 대가도 시장 예측못하는데
2030 개인투자자, 고수익 좇아
투기성 높은 ‘로또’ 노린 투자해
“모르는 상품에 투자하지 말라”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이사회 의장(왼쪽)이 지난달 29일(현지시간) 골프카트를 타고 주주총회장에 들어서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 휴지조각 수준으로 가격이 급락해 전 세계 암호화폐 시장에 충격을 준 국산 코인 ‘테라 사태’ 이후 이상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테라와 연동된 암호화폐 루나를 보유한 사람은 지난해 말 9만명 수준이었다. 하지만 ‘테라 사태’이후 루나 보유자는 28만명으로 급증했다. 거래소에서 유통되는 루나 물량은 지난해 말 383만개에서 지난 13일 2억개, 15일 700억개로 큰 폭으로 뛰었다. 지난달 119달러(시가총액 약 50조 원)에 달했던 루나 가격은 99.99% 폭락해 0.0001~0.0002달러 수준이다. 여기에 투자자 보호 장치도 마련돼 있지 않다. 기존에 루나를 보유하고 있던 투자자는 큰 손해를 볼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도 루나를 사려는 사람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건 ‘도전적’이라고 설명하기도 어렵다. 암호화폐 투자자의 절반가량은 20·30세대다.

# 버핏은 지난달 열린 주총에서 한 참석자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그동안 놀라운 마켓 타이밍(주식 시장의 상승·하락을 예측해 높은 수익을 올리는 투자 행위)을 보여줬다. 어떻게 그렇게 잘 맞출 수 있나.” 그러자 버핏이 의외의 대답을 했다. “우린 (마켓 타이밍을) 전혀 맞춘 적이 없다. 시장이 이럴 거니까 저럴 거니까, 이런 생각으로 매수 결정을 내려본 적이 없다. 경제가 어떻게 되는지 우리도 모른다.” 월스트리트의 전설적인 투자자인 피터 린치도 “사람들은 주식시장을 예측하려 한다. 이는 완전히 시간 낭비다. 아무도 시장을 예측할 수 없다”고 말하곤 했다. 이렇듯 세계적으로 성공한 투자자도 금융시장이나 경제를 멀리 내다보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입을 모은다.

# 요즘처럼 시장이 급등락하고 인플레이션과 공급망 충격 등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데도 2030세대를 비롯한 수많은 개미가 공격적 투자에 나서는 걸 전문가는 ‘복권형 투자’로 진단한다. 싸게 사서 횡재를 노리는 복권처럼 비교적 적은 투자금액으로 매우 높은 수익률을 올릴 수 있어서다. 한물간 종목에 투자하는 것도, 휴짓조각이 될 상황에 빠진 암호화폐에 몰리는 것도 이런 심리 때문이다. 다른 세대보다 종잣돈이 적은 20·30세대에서 이런 투자가 두드러진다. 하지만 이는 부작용이 따른다. 수익이 날 확률이 아주 낮아서다. 손해를 보면 돈을 빌리게 되고 결국 더 위험한 상품에 투자하는 악순환에 빠진다. 투자 대가는 막연히 감과 기대만으로 투자하려면 시도조차 하지 말라고 말한다. 투자엔 인내심이 필요하다. 투자 대상에 대한 연구와 분석도 필수적이다. 투자 대가가 한결같이 하는 말. “모르는 상품에 투자하지 말라. 확신이 섰을 때 투자하라.”

김창규 경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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