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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의 소리] 답 없는 사회? 질문 없는 교회!

입력 2022. 05. 24.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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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죄인가.

비통한 마음을 감출 길 없어 사랑의 시를 쓴 것이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알렸고, 그 안에 담긴 묵직한 질문이 강제된 침묵을 깨고 핵심을 찌르며 시대적 관심사가 되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허락한 것은 측은지심, 인간에게 허락하지 않은 것은 자기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 사람은 자기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모르고 산다는 뜻이다.

마지막 답은 사람으로 살아가게 만드는 것은 끝없는 걱정도 잘 짜인 계획도 아닌,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누군가의 따뜻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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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죄인가. ‘인간 실종의 시대’를 살았던 한 시인의 고뇌 깊은 질문이 근대로 통하는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다. 사제 시인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 이야기다. 어느 날 먼발치에 서서 연모해 온 운명의 여인이 흑사병으로 갑작스레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비통한 마음을 감출 길 없어 사랑의 시를 쓴 것이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알렸고, 그 안에 담긴 묵직한 질문이 강제된 침묵을 깨고 핵심을 찌르며 시대적 관심사가 되었다. 질문 없는 사회에서 시인에게 질문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준 것은 아우구스티누스가 남긴 고백록의 한 문장이다. “인간은 산 정상에 올라 아름다운 광경에 넋을 잃고 강물을 보고 바다를 보고 별들의 운행을 보고 감동을 받지만, 정작 인간 내면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시인 페트라르카를 탄생시킨 중세 유럽은 기독교라는 종교에 철저하게 지배를 받았던 공간이다. 인류 역사상 하나의 종교가 대륙 전체를 천년간 지배한 것은 유례가 없다. 그런 기독교가 하나님과 인간을 이간하는 치명적 공식을 만들어냈다. 하나님보다 인간을 더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라고 가르쳤다. 사람이 친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는 예수 말씀에 모순되는 공식이었다. 하나님과 인간은 시소게임을 하는 경쟁 상대가 될 수 없음은 자명하다. 부모와 자식을 나란히 두고 사랑을 저울질하지 않는 이치와 같다. 이러한 이치를 거스르는 것이야말로 이간이고 반역이다.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한 배신이 될까 두려워 형제와 친구는 물론 자기 자신조차 맘껏 사랑하지 못했고 자신을 미워하며 지옥살이를 시작했다. 교회는 인간에 대한 진지한 관심과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시선조차 죄로 간주하기에 이르렀다. 인간에 대한 재발견은 곧 하나님에 대한 재발견임을 상상하지 못했다. 시인은 교회의 창백한 상상력에 원초적 질문을 던진 것이다.

당신 안에는 하나님이 없는가. 가난한 농민을 사랑했던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타인의 고통에 점점 무감해져 가는 우리를 원초적 질문 앞에 다시 세운다. 풍요한 시대를 빈곤하게 살아가는 21세기 삶을 내다보기라도 한 듯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작품으로 흥미로운 이야기 하나를 들려준다. 쌍둥이를 갓 낳은 엄마의 생명을 거두어 오라는 하나님의 무리한(?) 요구에 응할 수 없었던 한 천사의 이야기다. 천사는 하나님으로부터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오라는 미션을 받고 날개 잃은 존재로 땅에 떨어졌다. 사람 안에는 무엇이 있는가. 사람 안에는 무엇이 없는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천사가 찾아낸 답은 의외로 단순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허락한 것은 측은지심, 인간에게 허락하지 않은 것은 자기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 사람은 자기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모르고 산다는 뜻이다. 마지막 답은 사람으로 살아가게 만드는 것은 끝없는 걱정도 잘 짜인 계획도 아닌,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누군가의 따뜻한 사랑. 한마디로 사람은 사랑을 먹고 사는 존재라는 묵직한 메시지다.

우리 시대에 여전히 유효한 두 질문에 대해 성서는 망설이지 않는다.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하지 않은 것이 곧 내게 하지 않은 것이다.” 예수의 말씀이다. 인간을 사랑하는 크기가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크기가 된다. 기독교는 예수께서 주신 2계명을 받들고자 태어났다. 제1계명은 하나님께 충실할 것, 제2계명은 사람에게 성실할 것. 40년이 흘러도 여전히 아픈 5월을 보내며 우리는 교회 밖에서 들려오는 고통 소리에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의미를 되묻지 않을 수 없다.

하희정(감신대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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