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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K TECH REVIEW] 탈중앙화는 신기루일까..테라 폭락 충격에 휘청거리는 웹3.0

황순민 입력 2022. 05. 24. 04:03 수정 2022. 05. 24.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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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 패권에 도전한 테라
탈중앙화금융 서비스 제공
이자 年20% 약속했다 거품
겁먹은 투자자 루나·테라 매도
일주일새 총액 450억弗 사라져
가상자산·NFT·메타버스 등
웹3.0 생태계 확장에 찬물
당분간 규제 쓰나미 불가피
그래도 탈중앙화 기술혁신은
멈출수없는 시대적 도전될듯
한국산 코인이 전 세계 가상화폐 시장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이달 역사적인 폭락을 기록하며 블록체인 생태계 뇌관이 된 루나(LUNA)와 테라USD(UST) 얘기다.

테라폼랩스가 발행한 가상화폐 루나와 테라는 지난 12일부터 일주일 사이 총액이 약 450억달러(약 57조7800억원) 증발하는 등 최근 가격이 급락했다. 손실을 본 국내 투자자만 20만명으로 추산된다. 한때 '혁신가'로 불렸던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는 경찰 신변 보호를 받는 신세가 됐다.

'테라쇼크'로 인해 탈중앙화 인터넷으로 주목받는 '웹3.0' 생태계가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 블록체인업계 전반에 '신뢰'가 깨졌다는 지적이다. 루나·테라 폭락의 파장을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촉발된 2008년 금융위기와 비교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웹3.0은 모든 사람이 거래 내역을 확인할 수 있는 디지털 장부(블록체인)를 통해 데이터를 분산 저장하고 소유권을 개인들에게 돌려준다는 개념이다. '탈중앙화'는 중앙 통제기관 없이도 개인 간 금융거래나 빠른 의사결정을 가능케 한다는 웹3.0의 핵심 가치다. 대체불가토큰(NFT)과 메타버스는 각각 웹3.0의 수단(디지털 자산)과 활용공간(인프라)으로 주목받았다. 탈중앙화자율조직(DAO), 탈중앙화금융(디파이·Defi), 게임파이(Gamefi) 등은 일종의 웹3.0 서비스(앱)다. 가상화폐는 웹3.0에서 인센티브(화폐) 역할을 한다. 테라쇼크는 디파이에서 발생했다. 20%에 가까운 이자율을 제공하겠다며 막대한 자금을 끌어모았는데, 결국 폭탄이 터졌다.

◆ 기축통화 패권에 도전한 테라

테라는 탈중앙화 생태계를 표방했다. '스테이블코인'을 통해 웹3.0 생태계에서 '달러'가 되겠다는 구상이었다. 이를 위해선 자신들이 발행한 가상화폐(루나와 테라)를 가치 있게(혹은 그렇게 믿게) 만들어야 했고, 활용처를 늘려야 했다.

스테이블코인은 우리가 법정화폐라고 하는 '정부가 발행하는 돈'과 동일한 가치를 갖는 것을 목표로 하는 코인이다. 블록체인 관련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일반 사용자들의 참여가 늘었다. 이들은 가치의 변동이 심한 가상자산보다는 가치가 고정된 가상자산을 선호하는 경향이 커 스테이블코인 수요를 불러왔다.

스테이블코인은 세계의 기축통화인 미국달러(USD)와 동일한 가치를 갖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것을 금융에서는 페깅(pegging)이라고 부른다. 페깅을 위해선 막대한 담보물이 필요한데, 테라는 알고리즘과 쌍둥이 화폐인 루나로 이를 해결했다. 테라와 미국달러의 가치가 벌어지면 루나를 발행하거나 소각하는 방식을 통해서 차익거래를 유도하는 시스템을 만든 것이다. 일시적으로 페깅이 깨져도 시장에 있는 투자자들이 무위험 차익거래에서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에 쉽게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는 구조를 만든 셈이다. 이 경우 달러를 담보로 소유할 중앙화된 존재가 필요 없어 정부 규제로부터 자유롭고 완전한 '탈중앙화'가 가능하다는 계산이었다. 이러한 메커니즘의 핵심 역할을 한 것이 '앵커프로토콜(ANC)'이라고 하는 디파이 서비스다. 테라를 예치(예금)하면 연 20%에 달하는 이자를 약속했다. 이 과정에서 테라 생태계에 대한 믿음과 '루나틱'으로 불리는 지지 커뮤니티까지 생겨났다.
◆ '죽음의 소용돌이'와 테라의 몰락
실제로 컴투스 등 게임사와 각종 블록체인 프로젝트가 속속 테라 생태계에 합류하는 등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다. 앵커프로토콜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자신들의 가상화폐(테라)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거래소에서 테라로 자산을 매입하게 하는 등 대중화가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해당 전략이 실행되기 전에 과도한 거품이 꼈고, 문제가 발생했다. 구조적 약점으로 지적됐던 테라폼랩스의 알고리즘은 사실상 '폰지사기'(다단계 금융사기)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자 지급 능력에 대한 시장의 의문이 커지자 두 코인에 대한 매도 물량이 동시에 쏟아져 나왔다. 생태계는 순식간에 붕괴됐다. 겁먹은 투자자들이 매물을 쏟아내자 알고리즘은 더 많은 루나를 찍어내 대응했다. 6조개에 달하는 루나가 시중에 풀리자 가격은 폭락했다. 루나는 국내 거래소에서 결국 가치가 '0'에 수렴해 사실상 휴지 조각이 됐다. 경제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죽음의 소용돌이(death spiral) 현상을 피하지 못하면서 테라가 폭락하고 루나도 추락했다"고 평가했다.

폭락 원인에 대해서는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우선 알고리즘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취약성이 드러난 결과라는 해석이 중론이다. 스테이블코인인 테라를 담보하는 루나의 가격이 하락세를 나타내면서 테라의 고정가격도 무너지는 결과를 불러왔다는 것이다. 높은 이자율을 통해 사람을 모은 바람에 스테이블코인의 유동성이 묶인 것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에 더해 악의적 세력의 공격이 루나와 테라의 붕괴를 가속화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기관이 루나의 폭락을 배후 조종했다는 음모론도 나온다. 1992년 조지 소로스가 영국 파운드화를 투매해 유럽 환율 메커니즘을 무너뜨렸던 '검은 수요일' 사건과 유사한 점이 많다는 주장이다. 코인게코의 공동 설립자인 보비 옹은 "헤지펀드가 수십억 달러를 동원해 공매도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자산운용사 블랙록, 증권사 시타델증권, 제미니거래소 등이 언급됐는데 이들 모두 의혹을 공식 부인했다.

◆ 가상자산 규제 전 세계적으로 강화될 듯

테라 사태를 계기로 가상자산에 대한 규제가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금융당국은 이미 스테이블코인 규제 법안을 의회에 제출해 놓은 상태다. 테라 사태를 언급하며 연일 의회를 향해 스테이블코인 규제법의 시급성과 조기 의결을 요구하고 있다. 업계는 스테이블코인 자체가 몰락하기보다는 미국이 주도하는 규제 속에서 이른바 '말 잘 듣는' 스테이블코인이 살아남는 흐름이 생겨날 것으로 보고 있다. 익명을 요청한 블록체인업계 한 관계자는 "이번 사건이 규제 강화 명분이 될 수 있다"면서 "각국 정부가 스테이블코인의 발행을 제도권 은행들로 한정할 수 있고, 제도권 친화적인 스테이블코인이 상대적 수혜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달러를 기반으로 한 스테이블코인 'USDC'는 코인 유통량이 급증하며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다. USDC는 미국의 서클이라는 회사가 발행한다. 서클은 골드만삭스, 피델리티, 블랙록 등 유수의 미국 금융회사에서 투자를 받은 핀테크기업이다. USDC는 미국 규제를 준수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는 코인으로 지목된다. 불안에 떠는 투자자들이 USDC로 몰린 배경이다.

◆ 중앙화의 반격…기로에 놓인 웹3.0 생태계

'테라쇼크'는 가상자산·NFT 광풍 등으로 주목받은 웹3.0 생태계 확장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분위기다. 당장 게임업계가 영향권에 있다. 게임사들이 발행한 가상화폐의 가치가 폭락했고, 게임사들이 미래 먹거리로 점찍은 '블록체인 게임' 시스템 안정성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무엇보다 국내 게임업계의 숙원인 P2E(플레이 투 언) 제도화의 동력이 상실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블록체인 생태계에 대한 인식뿐 아니라 'X2E' 서비스로 대표되는 '돈 버는 행위' 자체에 대한 불신이 번지고 있는 상황이다.

검찰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은 첫 수사 대상으로 테라사태를 지목했다. 일각에선 테라사태가 계획된 폰지사기라는 주장도 나왔다. 크립토업계에선 "시장의 미성숙이 중앙의 개입을 자초한 결과"라는 한탄이 새어나온다. 당분간 웹3.0 주도권은 일정 부분 각국 중앙정부와 빅테크기업에 넘어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시스템 보안 강화와 대중화 측면에서 블록체인 기술 적용이 대기업 주도로 이뤄지고, 중앙은행이 직접 블록체인을 바탕으로 한 전자화폐(CBDC)를 발행하는 식이다. 국제결제은행(BIS) 등에 따르면 전 세계 66개국 중앙은행 가운데 80% 이상이 디지털 화폐 연구개발(R&D)에 돌입했다. 디파이 시장 성장에 맞서 중앙은행이 통제할 수 있는 법정 디지털화폐 생태계 조성이 시급하다는 판단에서다.

웹3.0을 시장의 짧은 유행으로만 평가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정보기술(IT)업계의 대체적 평가다. 빅테크들도 관련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탈중앙화 애플리케이션(디앱) 숫자는 최근 3년간 359% 늘어나는 등 성장세가 가파르다. 앞으로 △블록체인 기술의 대중화를 위한 처리 속도와 편의성 개선 △코인의 시세 변동성을 안정화할 수 있는 기술 △보안성과 에너지 효율을 높일 수 있는 거래 프로토콜 등 분야에서 개선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테라폼랩스는 유사시 가격 방어 명목으로 약 35억달러어치 비트코인을 사들였는데, 정작 사태가 터지자 비트코인 행방이 묘연해지면서 논란이 커졌다. 사측이 뒤늦게 사용내역을 밝혔지만 테라 블록체인 바깥에서 비트코인을 사고팔면서 불신을 자초했다는 지적이다. 또 테라 커뮤니티의 반대 의견에도 '테라2.0' 프로젝트를 강행할 의사를 밝혀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웹3.0의 효율성은 중앙화된 기관이 없다는 점에 기인한다. 하지만 '테라쇼크'는 역설적으로 웹3.0이 없애려는 시장의 비효율성이 안전망일 수도 있다는 교훈을 남겼다. 웹3.0의 실현 여부는 기술이 아니라 사람에게 달렸을지 모른다.

[황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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