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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남매는 모두 홈스쿨링 중" 이 가족이 살아가는 법 [속엣팅]

추인영 입력 2022. 05. 24. 05:01 수정 2022. 05. 24. 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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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기자의 속엣팅

한 사람의 소개로 만나 속엣말을 들어봅니다. 그 인연을 통해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요. 인연 따라 무작정 만나보는 예측불허 릴레이 인터뷰를 이어갑니다.

[프롤로그] 128년째 한국과 깊은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가문의 특별귀화자 데이비드 린튼(인대위) 교수는 한동대학교 국제법률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칩니다. 이곳은 아시아 유일의 미국식 로스쿨로, 졸업생들은 미국 변호사 시험 응시 자격을 얻게 됩니다. 대부분 미국인인 교수진은 교내 사택에서 생활합니다. 또 다른 가족이나 마찬가지죠. 린튼 교수가 특별한 동료 가족을 소개했습니다. 자녀 9명을 홈스쿨링으로 가르친다는 데이비드 먼디 교수 부부입니다.

■ 무려 128년, 5대째 한국팬…'유퀴즈' 뒤집은 특별귀화자

국가유공자 특별귀화자인 데이비드 린튼(인대위) 한동대 국제법률대학원 교수 집안은 5대째, 햇수로는 128년째 한국과 인연을 맺고 있습니다.

데이비드 먼디(오른쪽) 한동대 국제법률대학원 교수와 아내 에린 먼디가 17일 경북 포항시 한동대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들 부부는 9남매를 홈스쿨링 중이다. 송봉근 기자


“얘들아, 이제 모이자!”
지난 17일 오전 경북 포항 한동대학교에 있는 교직원 사택. 오전 집안일을 마친 후 서울에서 왔다는 손님 방문에 들떠있는 아이들을 아빠 데이비드 먼디(46) 교수가 불러 모았다. 약 10분간의 성경공부를 마친 뒤 아이들은 일과표에 따라 제 자리로 흩어졌다. 둘째 루시아(14)는 엄마 에린 먼디(40)와 불어 공부를, 다섯째 미첼(9)은 아빠와 산수 공부를 할 시간이다.

첫째 줄리아(16)와 셋째 왓슨(13), 넷째 바이바(11)가 공부할 자리를 잡는 사이 헨리(7)는 어린 포터(5), 노라(3)를 데리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미첼은 수업이 끝나면 헨리와 역할을 맞바꾼다. 먼디 교수는 “동생들을 돌보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며 “어린아이들은 공부할 나이가 되기 전까지는 아침마다 캠퍼스에서 자연을 탐험한다”고 말했다. 매일 유기농 재료로 30인분 식사를 준비하는 엄마를 돕는 것도 아이들 몫이다. 이날 오후엔 남자아이들은 축구클럽에, 여자아이들은 미술 학원에 간다. 줄리아는 한동대에서 중급 한국어도 청강 중이다.


6개월 딸과 한국 정착…3명서 11명으로


데이비드 먼디 교수 가족. 윗줄 왼쪽부터 첫째 줄리아(16), 먼디 교수, 아내 에린, 막내 올리(1), 둘째 루시아(14), 아랫줄 왼쪽부터 여섯째 헨리(6), 다섯째 미첼(9), 셋째 왓슨(13), 여덟째 노라(4), 넷째 바이바(11), 일곱째 포터(5). 송봉근 기자
이들 부부도 한국에 오기 전까지는 평범한 도시 생활을 했다. 먼디 교수는 이민·망명 전문 로펌에서 일하다 백악관 옆 미 연방청구법원 재판연구원으로 백신 피해 손해배상을 담당했다. 몇 년간 가슴 아픈 사례들만 다루다 보니 새로운 일을 하고 싶었다. 그러다 친구의 소개로 아내와 함께 한동대를 방문한 뒤 한국 이주를 결심했다. 임신 중이던 아내 에린은 “채플 시간 학생들의 노래를 듣는데 처음 태동을 느꼈다”며 “학생들과 첫눈에 사랑에 빠진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부부는 2007년 1월 생후 6개월 딸을 데리고 한국에 정착했다. 셋이던 가족은 막내 올리(1)까지 한국에서만 아이 8명을 더 낳으면서 11명이 됐다. 사실 에린도 여러 로펌에서 법률보조원으로 근무하면서 로스쿨에 진학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로스쿨은 언제든지 갈 수 있지만, 출산은 젊을 때 아니면 어렵다”는 누군가의 조언을 듣고 생각을 바꿨다고 한다. 그는 대신 둘라(출산) 자격증을 따고 출산·교육 전문가가 됐다. 요즘엔 에린도 여기저기서 강의 요청을 받는다.

홈스쿨링을 결심한 건 아들이 학교와 학원 스케줄로 너무 바빠 얼굴 보기도 힘들다는 지인 애기를 듣고서다. 먼디 교수는 “공부가 아닌 관계의 문제였다. 가족과 가장 좋은 시간을 함께하고 싶었다”라고 했다. 에린도 “일과가 다 끝나고 저녁에야 아이들을 만나면 서로 너무 피곤해서 많이 웃을 수 없지 않을까. 그래서 홈스쿨링을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교과서보다 책으로…성격도 취향도 제각각

데이비드 먼디 교수는 홈스쿨링 교장, 아내 엔디는 아이들의 공부와 생활 지도를 전담하는 담임 교사다. 9남매는 매일 아침 성경공부로 하루 공부를 시작한다. 송봉근 기자
아이들과 식사 준비 중인 엄마 에린 먼디. 빵은 직접 굽고 각종 식재료는 유기농으로 직접 키우거나 공수해 매일 30인분 이상 식사를 준비한다. 송봉근 기자
식사를 마친 후 아이들은 각자 자기 그릇을 스스로 정리한다. 송봉근 기자
먼디 가족의 아이들은 수학 등 일부 과목 외에는 교과서보다 책으로 배우는 편이다. 줄리아는 『내 이름이 교코였을 때』를 읽고 한국의 일제강점기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됐다. 줄리아는 “가끔 학교에 가고 싶기도 하지만, 교실에 온종일 앉아 있고 싶진 않다”고 했다. “학교 다니는 친구들은 시험공부를 열심히 하지만 시험이 끝나면 다 잊는다”면서다. 줄리아와 동생들 역시 정기적으로 학습 성취도 평가를 위한 미국 표준 시험을 치른다. 줄리아는 요즘 수학 공부를 평소보다 열심히 한다. 에린은 “줄리아가 시험 성적을 보고 필요성을 느낀 것 같다”고 했다.

같은 뱃속에서 나온 아이들이라도 성격이나 취향은 제각각이다. 첫째 줄리아는 4살 때 글을 읽기 시작했지만, 9살인 다섯째 미첼은 이제야 읽기 시작했다. 먼디 교수는 “미첼은 그전에는 읽기에 흥미가 없었다”며 “늦게 시작한 만큼 학습 속도는 엄청나게 빠르다”고 했다. 에린은 “아이는 준비가 안 됐는데 조급하게 가르치려고 하면 아이를 자꾸 들들 볶게 된다. 각자의 속도에 맞추면 물만 줘도 무럭무럭 자란다”라고 했다. “홈스쿨링을 하면 아이들이 (공부하는걸) 진짜로 이해하는지 다 볼 수 있어요. 문제가 생기면 바로 멈추고 해결할 수 있죠.”


또다른 가족은 미혼모 공동체


아빠와 산수 공부를 하는 다섯째 밋첼. 송봉근 기자
막내를 수유하면서 둘째 루시아에게 불어를 가르치는 엄마 에린. 에린은 프랑스어를 전공했다. 송봉근 기자
각자 자리에서 자습 중인 첫째 줄리아와 셋째 와슨, 넷째 바이바. 송봉근 기자
먼디 교수와 에린은 또 다른 직함이 있다. 임신으로 어려움을 겪는 여성의 출산과 양육, 취업까지 돕는 비영리단체 여성소망센터 이사장과 교육팀장으로 봉사 중이다. 개인 후원으로만 운영되는 이 센터는 미혼모와 자녀들의 공동체 생활을 실질적으로 함께한다. 이들은 그래서 지난해 한국의 낙태죄 폐지가 더욱 안타까웠다고 했다. 먼디 교수는 “태아도 사람이고, 누구도 그의 삶을 결정할 권한은 없다”며 “법은 옳은 일을 강제하기도 하지만, 옳음의 기준을 정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그는 “사회적 문제는 돈을 들여서 정책이나 프로그램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마음이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청년들은 가정에 대한 비전이 별로 없어요. 사회적 지위나 연봉을 중시하죠. 그런데 늙어서 ‘일을 더 열심히 할걸’이라며 후회하는 사람이 있나요? 보통 가족과 함께 시간을 더 보내지 못한 아쉬움이 크죠. 우리의 비전은 특별하지 않아요. 질서 있는 혼돈 속에서 행복하게 사는 겁니다.”

추인영 기자 chu.i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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