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현의 일상 속 문화사] 낯선 비주얼 뒤에 숨은 '익숙한 이야기'.. 관객은 열광했다

2022. 5. 24.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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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영화 '스타워즈' 속 문화적 요소들
화면에 보이는 건 머나먼 은하계지만
서사 구조는 서부극·전쟁영화 판박이
사무라이 투구 닮은 다스 베이더 헬멧
제국군 장교 군복은 독일군 복장 변형
햄버거빵 붙인 듯한 레아 공주의 머리
멕시코 혁명 반란군 女 지휘관 모티브
미국 샌프란시스코 건너편에 보이는 오클랜드 항구의 크레인은 네 발 달린 동물을 연상시킨다.
조지 루커스 감독이 1977년에 만들어 세계적 히트작이 된 ‘스타워즈’는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큰 기대작이 아니었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1975년 ‘죠스’를 크게 흥행시킨 이후로 ‘블록버스터’라는 개념이 등장했지만 사람들이 휴가를 즐기고 외출이 많은 시기에 맞춰 흥행이 될 만한 대형 작품을 개봉하는 것이 지금처럼 일반화되지는 않은 시점이었다. 공상과학(SF) 장르 영화가 TV가 아닌 영화관에서 대대적인 히트를 할 거라는 기대도 크지 않았고, 조지 루커스는 아직 30대 초반의 젊은 신인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감독의 이름을 보고 영화관을 찾을 것을 기대하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스타워즈’가 모든 예상을 뒤집고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큰 기대 없이 극장을 찾았던 미국 관객이 “멀리 떨어진 은하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에 열광할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이 영화가 가진 뛰어난 비주얼과 긴장감 넘치는 스토리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는 흥행요소지만, 1977년에 나온 ‘스타워즈’ 1편은 이미 앞선 이야기가 존재하는 것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었다(훗날 에피소드 4라고 불리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영화를 보러 들어간 관객은 거대한 이야기, 혹은 세계관의 일부를 중간부터 보게 된 셈이다.

그런데도 관객들이 쉽게 몰입할 수 있었던 이유를 두고 평론가들은 “익숙한 이야기를 낯선 비주얼 속에 숨겨 두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화면에 보이는 건 멀리 떨어진 은하계지만 영화 속 이야기는 미국인들에게 익숙한 서부 영화, 사무라이 영화, 전쟁 영화라는 것이다. 관객에게 익숙한 이야기 구조를 바탕으로 흥미로운 의상과 무기가 등장하는 영화이니 처음 보면서도 쉽고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었다.

그런데 사실 낯설어 보이는 의상 역시 낯익은 요소들을 갖고 있었다. 가령 제국군의 장교 복장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군의 복장을 변형한 것이었기 때문에 관객들은 직관적으로 어느 쪽이 ‘악당’인지 알 수 있었다. 제국군의 지휘관이자 주인공 중 하나인 다스 베이더가 쓰고 있는 헬멧은 일본 사무라이의 투구에서 모티프를 가져왔기 때문에 낯설고 무서우면서도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을 주었다. 즉, 낯섦과 익숙함을 잘 섞은 것이 ‘스타워즈’ 시리즈 속 의상의 인기 비결이었다. 이는 단지 관객의 추측이 아니다. 루커스 감독과 미술, 의상 담당자들은 영화에 등장하는 각 비주얼 요소의 모티프와 발전 과정을 기록으로 잘 남겨 두었다. 하지만 이 영화의 팬덤이 커지면서 영화에 등장하는 무기, 로봇과 같은 소품들이 어디에서 영감을 얻었는지 추측해 보는 것도 인기였다.

가령 AT-AT라 불리는 거대한 공격무기는 낙타를 연상시키는 모습을 하고 있는데 루커스가 미국 샌프란시스코 옆에 붙어 있는 오클랜드의 항만 크레인들에서 모티프를 얻었다는 얘기가 많다. 이 주장이 설득력 있게 들리는 이유는 오클랜드의 크레인들이 다른 항구에 있는 것들과 달리 (AT-AT처럼) 흰색을 띠고, 모양도 특이해서 마치 거대한 짐승들이 서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클랜드 주변에는 고층빌딩이 적어서 루커스필름이 위치한 샌프란시스코 쪽에서 바라보면 흰색의 거대한 크레인만 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누구나 ‘스타워즈’ 속 AT-AT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루커스필름이 AT-AT를 디자인할 때 오클랜드 항구의 크레인을 참고하지 않았다고 알려졌다.
루커스필름은 멕시코 혁명 당시 반정부군을 이끈 클라라 데라로차의 사진(왼쪽)에서 레아 공주의 헤어스타일에 대한 힌트를 얻었다.
루커스필름은 쉽게 알아볼 수 있는 비주얼 요소만 차용한 게 아니다. 워낙 배경이 상상 속 은하계다 보니 서구의 관객들에게 낯선 비주얼을 보여 줘야 했는데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새로운 디자인을 만들어 내는 것보다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문화 속에서 영감을 얻는 쪽을 선호했다. 대표적인 예가 레아 공주의 특이한 헤어스타일이다. 비록 사람들이 “햄버거빵 두 개를 양쪽 귀에 붙인 것 같다”고 놀렸지만, 이 헤어스타일은 관객들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독특한 모습이었던 건 사실이다. 반란군을 이끄는 극 중 주인공 레아 공주를 상징하는 요소가 되었다.

그런데 기록에 따르면 제작진은 1910∼1920년대 멕시코 혁명 때 독재자 포르피리오 디아스 정부군에 맞서 싸웠던 반란군 지휘관 클라라 데라로차(Clara de la Rocha)의 사진에서 레아 공주의 헤어스타일을 찾았다고 한다. 사진 속 데라로차 모습은 권총을 차고, 소총과 검을 양손에 든 채 어깨와 허리에는 탄약띠를 두르고 있다. 촬영 당시 스무 살이 채 되지 않았던 캐리 피셔의 영화 속 이미지는 좀 다르기는 하지만 헤어스타일은 의심할 나위 없이 데라로차의 것이다.

훗날 캐리 피셔는 그 헤어스타일이 정말 싫었다고 털어놓았다. 의상 담당자들이 다양한 헤어스타일을 준비했는데 루커스 감독은 하필 자신이 정말 싫어하는 “햄버거빵을 붙인” 스타일이 가장 완벽하다고 결정해 버렸다는 것이다. 이 머리는 만들기도 쉽지 않아서 촬영이 있는 날이면 아침부터 무려 두 시간을 헤어스타일 준비에 쏟아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배우가 싫어하고 (사람에 따라서는) 우습게 보이는 머리라고 해도 그 상징성만큼은 완벽했다. 멕시코 혁명 당시 여성이 총을 들고 전투에 참여하는 일은 드물지 않았다고 한다. 데라로차는 장군인 아버지를 따라 정부군을 공격하는 전투에 참여하며 시날로아에 있는 조폐창을 공격, 점거하기도 하는 등 많은 전과를 올렸고, 지휘관 자리에까지 올랐다. 비록 공주는 아니었지만 반란군을 지휘하는 레아 공주 역에 어울리는 모델임은 틀림없다.

그럼 데라로차는 어디에서 그런 특이한 헤어스타일을 가져왔을까? 알 수 없다. 당시에 흔했던 스타일은 아니었던 것 같고, 따로 기록이 존재하는 것 같지도 않다. 다만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 부족 중 하나인 호피족의 여성들이 긴 머리를 양쪽으로 둥글게 마는 헤어스타일을 했다는 사진 기록이 남아 있기 때문에 이들의 풍습이 어떻게든 전해졌을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다.

‘스타워즈’가 잘 알려지지 않은 여성들의 헤어스타일을 찾아낸 것으로 따지면 더 특이한 예도 있다. 루커스필름은 1999년에 ‘스타워즈’ 시리즈를 살려 내면서 세 편의 프리퀄을 만들어 냈는데, 여기에 등장하는 파드메 아미달라 공주(레아 공주의 어머니)가 선보인 다양하고 화려한 의상 중에서도 가장 독특했던 것이 두 개의 크고 둥근 가발을 머리 위에 얹은 것이었다. 입술을 보면 일본풍이 느껴지고, 연지곤지가 찍힌 것을 보면 동아시아 문화에서 차용한 것이 분명한데 기괴할 정도로 큰 가발은 도대체 어디서 온 걸까?
루커스필름에 따르면 이 헤어스타일에 영감을 준 건 아주 희귀한 사진 한 장이다. 1920년대 몽골에서 촬영된 것으로 알려진 이 사진에 등장하는 사람은 몽골의 귀족 여성(아마도 공주)이다. 한·중·일 전통문화에서 볼 수 있는 ‘얹은머리’(가체)와는 차원이 다른 크기를 하고 있다. 몽골에 존재하던 ‘여전사’(warrior queen) 전통 때문에 더욱 이 헤어스타일에 끌렸을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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