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꼭 버려라".. 실리콘밸리에 퍼지는 '스타트업 혹한기 생존법'

실리콘밸리/김성민 특파원 입력 2022. 5. 24. 08:25 수정 2022. 5. 24.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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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민의 실밸 레이더]

글로벌 경기가 침체를 겪는 상황에서 최근 2~3년간 뜨거웠던 벤처캐피털과 스타트업 생태계에 본격적인 겨울이 닥칠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이를 대비해 미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육성기관)와 벤처캐피털 등은 연일 스타트업들에게 다가오는 혹한기에서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을 설파하고 있다.

이들의 조언을 정리하면 “최대한 돈을 아끼고, 고정적으로 들어오는 수익 구조를 공고하게 하며, 자존심을 버려라’는 것이다. 그렇게 버티며 회사 구조를 바꾸면, “경기가 회복될 때 다시 엄청난 성장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섞인 조언도 있다. 2000년 닷컴 버블 이후 다가오는 스타트업의 겨울을 어떻게 버텨야 할까. 실리콘밸리 투자자들의 조언을 정리해봤다.

텅빈 스타트업 사무실. /픽사베이

◇“앞으로 투자금 받기는 점차 어려워질 것”

실리콘밸리에서는 경기 침체로 앞으로 스타트업들의 기업가치는 기존보다 낮아지고, 투자를 받기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 실제로 비전펀드를 운용하는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은 지난 12일 실적 발표에서 “수중의 현금을 늘리고 투자 기준을 엄격히 하겠다”고 말했다. 작년 한해 전통적 VC(벤처캐피털)보다 더 많은 돈을 스타트업에 투자했던 헤지펀드 타이거글로벌은 올해 40% 넘게 손실을 봤다. 아직 명확한 수익 구조를 만들지 못한 스타트업 입장에선 앞으로 사업이 순탄치 않을 수 있다는 말이다.

세계 최대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육성기관)로 꼽히는 ‘와이콤비네이터(YC)’도 이에 대해 짧고 굵게 동의했다. YC는 자사 액셀러레이터 프로그램을 거친 스타트업 창업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테크 기업들의 주가가 안 좋아지면 VC 투자도 영향을 받는다”며 “VC도 펀드 출자자(LP)에게 돈을 모으기 어려워진다. 톱 VC들의 투자가 줄어들고, 더 작은 VC들은 투자를 중단하거나 사라질 수 있다”고 했다.

YC는 또 “투자 경쟁이 줄어들면서 투자를 받으려는 스타트업들의 기업가치가 기존보다 낮아지고, VC들은 새 투자를 하기보다는 자신이 이미 투자한 스타트업 중 성과가 좋은 회사를 추가 지원하기 위해 자금을 비축할 것”이라고 했다. YC는 “지난 5년 안에 창업을 했다면 ‘정상적인 펀드레이징 환경’에 대해서 생각해보라. 당신이 경험한 자금 모집 경험은 사실 정상적이지 않았고(그만큼 과열돼 있었다는 뜻), 앞으로의 펀딩은 훨씬 더 힘들 것”이라고 했다.

YC가 창업자들에게 보낸 이메일 내용. /YC

◇“비용 절감하고, 현금 흐름 확인해야”

다가오는 혹한기를 버티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비용 절감’이다. YC는 “안전한 방법은 가장 최악을 준비하는 것”이라며 “앞으로 30일 안에 비용을 줄이고, 런웨이(생존할 수 있는 기간)를 늘릴 방안을 마련해라. 목적은 기본적으로 살아남는 것”이라고 했다.

실리콘밸리 유명 VC인 앤드리슨 호로위츠(A16Z)는 스타트업의 기업 가치와 수익 구조를 기존보다 더 자주, 꼼꼼하게 체크하라고 조언했다. A16Z의 저스틴 칼과 데이비드 조지 파트너는 최근 A16Z의 온라인 미디어 홈페이지 ‘퓨처’에 ‘시장 하락기를 항해하기 위한 프레임워크’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이 글에서 두 파트너는 “시장 침체가 벤처 자금 조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확인하려면 6개월 이상이 걸릴 것”이라며 “직접 기업의 연간반복수익(ARR)을 새롭게 평가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분기별, 월별로 발생하는 수익을 재평가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출과 고용을 실시간으로 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계 유명 실리콘밸리 VC인 알토스벤처스의 한 킴(김한준) 대표는 지난 2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돈을 언제 지급하고, 언제 받는지가 보이도록 모든 것을 현금 흐름으로 돌려야 한다”고 했다. 한킴 대표는 인력 감축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그는 “회사 인원을 줄이지 않으면 망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 땐, 첫 계획보다 두배 정도 더 줄여야 된다”며 “그래야 (정리해고를) 또 다시 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회사가 좋아지면 다시 채용할 수 있는 장치도 마련하라”고 했다.

한킴 대표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조언. /페이스북 캡처

◇“자존심 버려라”

VC들은 스타트업들에게 낮은 기업가치에도 투자받는 것을 고려하라고 조언한다. 창업자 입장에서 자신이 만든 회사의 기업가치가 기존보다 낮아지는 것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하지만 일단은 자금을 확보하는 것이 회사 생존을 위해 중요하다고 VC들은 말한다.

YC는 “만약 남은 자금이 얼마 없고 현재 투자자나 새 투자자가 지금 투자를 하겠다고 하면 기존 기업가치 그대로라도 심각하게 투자받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또 “만약 자신의 기업이 펀딩 라운드 시리즈A 이후 단계인데 시장에 맞는 상품을 아직 찾지 못했다면 다음 투자는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며 “앞으로 24개월간 투자 없이 회사를 생존시키는 것은 창업자의 책임”이라고 했다.

한킴 알토스벤처스 대표는 “중요한 이니셔티브가 5개 있으면 1개로 줄이고, 해외 진출 계획 전 국내부터 현금 유동성을 확보하라”고 했다. 그는 “더 이상 투자 없이도 충분히 조금씩 커 나갈 수 있게끔 경영하라”며 “가망이 없으면 자존심 던지고 사업을 빨리 접자”라고 했다.

◇“기회는 또 온다”

실리콘밸리 투자자들은 혹한기를 버티며 생존하면 기회는 다시 온다고 말한다. 페이스북의 전 CTO(최고기술책임자)였던 마이크 슈뢰퍼는 자신의 트위터에 2000년 닷컴버블 당시 페이스북의 상황을 설명하며, “빠르고 거대하게 성장하는 부문에서 문제를 푸는 데 집중하라”고 했다. 그는 “페이스북은 닷컴 붕괴 후 2000년에 세콰이어에서 펀딩을 받았다. 우리는 고정 고객이 있었고, 서버 성장이라는 물결에 타고 있었다”고 했다. 고객을 확보했고 성장세를 보이는 주력 분야에 집중해 경쟁력을 강화한 것이 닷컴버블 이후 페이스북의 로켓 성장의 비결이라는 것이다.

앤드리슨 호로위치도 비슷한 조언을 한다. “가장 강력한 비즈니스는 가장 어려운 시기에 만들어진다. 시장이 변화할 때 살아남은 기업은 시장 점유율 증가와 효율적인 운영방식으로 보상을 받는다”고 했다. YC도 “많은 경쟁자가 계획을 잘 세우지 않고 현금을 소진하며 망한다는 것을 기억하라”며 “경기 침체기에는 살아남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시장 점유율을 확보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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