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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순 칼럼] 국민은 표가 아니다

한겨레 입력 2022. 05. 24. 14:56 수정 2022. 05. 24.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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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순 칼럼]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6월1일 투표를 하려 한다. 열혈 지지자에게만 강력히 어필하면 당선될 것이라는 정략적 선거꾼들의 산술법이 다 맞는 건 아니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이 투표를 포기할 순 없다. 정치적 투명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서, 소신껏 자기 목소리를 내려는 후보들이 싹쓸이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8일 앞둔 24일 오전 경기도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종합상황실에서 직원이 걸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이진순 | 재단법인 와글 이사장

지방선거를 일주일 앞두고 ‘표심 잡기’에 혈안이 된 후보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에겐 ‘표’만 중요한가? 고단한 삶을 이어가는 국민 대다수가 ‘표밭’으로만 보이는가? 유감스럽게도 이번 선거의 유권자 4430만명은 그 마음을 기표용지 위에 온전히 드러낼 수 없다. 표심은 민심을 다 담지 못한다. 국민은 표가 아니다.

이번 지방선거로 선출되는 인원은 4125명(국회의원 보궐선거 제외)이다. 그런데 23일 현재, 이미 무투표로 경쟁자 없이 당선이 확정된 이가 321곳, 509명이나 된다. 지방선거 정수의 12.3%가 국민의 선택 없이 배지를 예약해 둔 셈이다. 그 중 범죄 전력이 있는 사람이 136명으로 무투표 당선자의 26.7%인데, 횡령, 건축법 위반, 무면허 운전 등 전과 7범도 있다.

무투표 당선자 지역구에서는 이들을 뽑는 투표용지도 배부하지 않고 공보물도 발송하지 않는다. 얼굴도 이름도 정견도 알리지 않고 당선된 이들은 앞으로 4년간 군수, 구청장, 지방의원으로 그 권한을 십분 행사할 것이다. 선거비용을 줄이고 투표용지 여러 장에 기표하는 번거로움을 덜게 됐다고 반가워할 일인가? 무투표 당선인 수는 2018년 지방선거 때 89명보다 무려 5.7배나 늘었다.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가장 큰 이유는 ‘지역균형과 자치발전’이라는 지방선거 본연의 취지와는 무관하게, 이번 선거가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의 막가파식 힘겨루기 싸움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두 당 모두 대선 연장전으로 이번 지방선거를 규정하고 ‘정권 안정’과 ‘정권 견제’의 대립각으로 맞서고 있다. 수도권 과밀 해소와 국토의 균형발전, 기후위기에 대한 지역별 대책, 인구 감소와 지방 소멸의 문제에 관해 양당은 지방선거 사령탑으로서 당론과 전략을 제시하는 역할을 처음부터 방기했다. 전·현직 대통령이나 대통령 후보와 누가 더 친한가를 과시하는 거로 경쟁하는 지방선거에서 정작 ‘지역’은 실종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전과 달리 지역 차원의 연정이나 민관 협치를 소신껏 주장하는 후보는 찾아보기 힘들다. 기후위기로 직격탄을 맞게 된 농어촌 지역에서도 지속가능한 생태 발전을 주장하는 후보는 극소수여서 천연기념물처럼 희귀할 지경이다.

지방선거가 중앙 정치세력의 대리전으로 전락한 데에는 언론의 책임도 크다. ‘2022 지방선거보도 민언련 감시단’이 발표한 5월 첫 주(5월2~8일) 모니터보고서를 보면, 지방선거가 언급된 보도 가운데 지방선거를 본격적으로 다룬 보도는 방송 32%, 신문 25%에 불과하다. 그 가운데서도 취재원의 절반 이상은 정치권이며, 유권자의 민심을 직접 취재한 경우는 신문 3%, 방송 4%에 그쳤다. 대부분은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해서 경마식 보도를 하는 것으로 ‘민심을 전한다’고 포장했을 뿐이다. 민심에 관심 없는 선거에서, 국민은 개개의 절박한 사연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머릿수로 환산되는 ‘표’에 불과하다. 유권자가 마지못해 찍든, 욱해서 찍든, 자기 당에만 유리하면 그만이니까.

지방선거가 중앙의 정치적 줄세우기로 치러지면 그 손해는 고스란히 지역민에게 전가된다. 지역별로 우세한 정당이 독점해서 ‘작대기만 꽂아도 당선’되는 이들이 늘어나면, 후보로 나서는 이들이 누구의 눈치를 볼까? 공천권을 행사하는 국회의원과 당협위원장 아래 줄서기 하느라 유권자는 뒷전이다. 매번 자격 미달의 지방의원이나 단체장으로 인한 문제가 터질 때마다 두 당은 공천심사를 강화하겠다며 성범죄, 음주운전, 탈세 등 범죄 전과가 있는 사람을 배제하겠다고 공언해왔지만 제대로 지켜진 적은 없다. 국회의원 선거운동을 할 때 수족이 되어줄 심복을 고르는 일인데, 전과 여부나 국민의 질책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번 선거에서 공천된 이들 중 전과가 있는 후보 비율은 국민의힘 35%, 민주당이 30%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6월1일 투표를 하려 한다. 역대 지방선거 투표율이 54~60% 수준이었으니 열혈 지지자에게만 강력히 어필하면 당선될 것이라는 정략적 선거꾼들의 산술법이 다 맞는 건 아니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이 투표를 포기할 순 없다. 정치적 투명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서, 두 당 줄서기에 혈안인 선거판에서 소신껏 자기 목소리를 내려는 후보들이 싹쓸이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기표용지 위에 다 그려낼 수 없는 절박한 민심을 하늘처럼 떠받들어 이 엉망진창의 선거제도를 개혁하자고 목소리를 낼 신진 정치인을 보물찾기하는 심정으로 찾아내기 위해서라도 나는 투표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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