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검수완박, 경찰 정말 감당할 수 있나" 현직 경찰 직격탄 [달나라금토끼가 고발한다]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이 통과된 후, '경찰이 드디어 숙원을 이뤘다, 사상 초유의 막강한 힘을 갖게 됐다'는 평가가 많다. 경찰이 독립운동하듯 ‘수사권 독립’을 부르짖기 시작한 게 벌써 50년도 넘은 데다, 역대 경찰청장들이 하나같이 수사권 조정을 외쳤으니 그렇게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외견상의 경찰 권한 강화가 무색하게 일선 경찰 입장에선 업무 환경이 갈수록 열악해지고 있다. 호의적이지 않은 여론은 별개다. 이번 검수완박 역시 수사에 종사하는 경찰관들에게는 결코 우호적인 변화가 아니다.
검수완박. 그러니까 검사가 수사에 점점 관여하지 않는다는 것 그 자체가 경찰 수사관들이 직면하는 가장 큰 짐이다. 경찰은 현재 그걸 감당할 능력이 있는 조직이 아니다. 수사권 독립이 경찰의 잃어버린 성배처럼 설파되던 그 시절에는 수사의 '주체'는 검사였고 경찰은 단지 '보조자'였다. 경찰이 수사 과정에서 무슨 일을 하든 그 귀결점은 검사였다. 검사는 경찰 수사를 좌우하는 권한을 가진 동시에 책임도 졌다. 사회의 관심이 집중될만한 사건은 검사가 직접 수사하고 그렇지 않은 사건은 뒤처리하듯 경찰에 남겨졌다. 이렇게 경찰 내부의 수사 지휘관이 검사에 필적할만큼 많은 경험과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기 어려운 수사 구조가 수십 년 이어져왔다.
이런 상태로 지난 2019년 수사권 조정을 맞았다. 검찰은 원칙적으로 경찰 수사를 지휘하지 않고, 책임도 지지 않게 됐다. 그럼 이제 경찰 지휘관이 그 역할을 해야 하는데, 검사 수준에 못 미친다. 단순히 경찰 지휘관이 검사보다 똑똑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생각해보라. 영장 청구나 공판 경험이 전무한 기동대에 있다가 수사팀장으로 자리로 옮기면 하루아침에 사건을 검토해 수사 지시를 해야 한다. 심지어 수사부서 대다수 관리자는 변호사 자격증 같은 비빌 언덕 하나 없는 보통 공무원들이다. 사명감과 의협심만으로 직을 걸어 모든 책임을 지기를 기대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뜻이다.
간단한 사건 서류도 100쪽, 밀리는 사건
수사권 조정이나 검수완박과 무관하게, 수사 제도 자체가 사회 변화에 뒤처진 점도 경찰 수사관들 앞에 놓인 난관이다. 전화 몇 통과 대면조사 한 번으로 끝낼 수 있는 간단한 사건 하나를 처리하기 위해서도 편철해야 할 서류가 100쪽에 육박한다. 과도한 서류작성과 잡무를 줄이는 과정이 절대 만만치 않다. 수사 서류는 공판으로 직결되기 때문에 업무 절차 개정을 위해서는 경찰청뿐만 아니라 검찰과 법원, 법무부까지 모여 오랜 시간 동안 논의해야해서다. 내부의 과제도 산적해 있다. 사회 전반에 인터넷과 첨단기술이 접목된 분야가 많아지면서 기존 업무분장 체제에 맞지 않는 사건이 늘고 있다. 능력 있는 수사관이 경제팀에선 20건 내외의 사건만 진행하면 되지만, 사이버팀에 있으면 100건 내외의 사건을 다루는 이유다. CCTV와 같은 영상 증거물, 통화기록 같은 디지털 증거물 처리의 기술적인 전문화가 심화하면서 수사관들이 극복해야 하는 기술장벽도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높아졌다. 가정폭력이나 스토킹처럼 이미 범죄 발생 후 처리보다 예방이 더 중요한 사건이 늘면서 이제 수사부서에서는 범죄예방까지 담당해야 한다. 한마디로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이런 빠른 사회의 변화에 더해 '정치의 사법화'로 인한 고소·고발이 폭증하면서 처리해야 할 사건이 날로 느는 것도 큰 부담이다. 책임지는 사람 없이 책임질 일만 많아졌다. 결코 과장이 아니다. 지금 적잖은 경찰 수사관들은 사회적 관심이 집중될만한 민감한 사건이라면 내심 보고하지 않기를 바라는 지휘관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책임 소재를 가리기 위해 거쳐야 하는 내부 검토 과정이 지난해졌다. 잡무가 늘었다는 얘기다. 이런 수사관들의 고충과 어려움을 이해해줄 사람도 많지 않다. 특히 더불어민주당의 검수완박 강행으로 수사권이 온전히 정치의 영역으로 포섭된 작금에는 더더욱 그렇다. 산더미 같은 장애물을 넘지 못한 수사관에게 무능한 경찰이라는 비난이 쏟아지다가 종국엔 공룡이 된 경찰을 개혁하라는 칼날이 들어오지 않을까 두렵다.
진짜 해결책 외면한 경찰 수뇌부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하나하나 풀어가야 할 문제를 지금처럼 복잡하게 만든 결정적인 원인은 경찰 수뇌부의 무책임한 선동에 있다. 기존 검사 중심의 수사체제가 안고 있는 진짜 문제는 '무소불위 권한을 가진 검찰의 오류를 어떻게 견제할 수 있느냐'였다. 검찰 역시 뇌물수수, 사건 은폐, 강압 수사 등으로 적잖은 오명을 쌓아왔지만, 막상 검사가 기소돼 실제 처벌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었다.
1990년대부터 수사권 논의를 주도했던 경찰 내의 오피니언 리더들은 검찰 견제 수단으로 수사권 쟁취만을 줄곧 주장하며, 내부의 합리적인 비판에는 무관심으로 일관해왔다. 사실 검사의 수사권 배제에 대해서 일선 수사관들 사이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부정적 의견이 제기돼왔다. 아예 무관심한 직원이 더 많았다. 하지만 경찰청 수뇌부는 내부 교육, 홍보 독려 등을 통해 수사권 문제에 내부의 비관적인 시각을 잠재우는 데 공을 들였다. 모 경찰청장은 회의 석상에서 경찰들이 수사권 문제에 너무 무관심하다며 언성을 높이기도 했고, 이후 경찰청에서는 직원을 상대로 수사권 문제 대국민 설득을 위한 홍보자료 공모전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1인 시위, 언론 기고나 SNS 활동 등을 통해 공개적으로 검찰의 수사권 독점을 비토하던 투사적인 경찰관들은 수사권 조정 관련 부서에 중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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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권은 권리 아닌 책임과 의무인데
검수완박이 한참 논의되던 때 어쩌면 사람들은 ‘수사권’을 ‘권한’이 아니라 ‘권리’로 여기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수사의 권한’을 부여받은 사람은 그게 검사든 경찰관이든 형사소송법 규정이 갖는 남다른 엄중함, 그리고 죄지은 사람을 벌한다는 사명감 때문에 권리 행사가 아닌 책임과 의무의 수행이라 생각하며 일한다. 그 무게감을 이해한다면 ‘수사권을 박탈한다’는 표현은 검사가 소유하고 있던 무엇인가를 빼앗는다는 뜻이 아니라 직업적 자부심에 똥칠한다는 뜻이라는 걸 알 수 있지 않을까. 이제 경찰 수사관들은 억대 연봉도 마다하고 수백 건의 사건에 파묻혀있다가 자정이 가까워서야 집으로 향하던 업무 파트너의 양심과 사명감에 기대기 힘든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됐다. 이미 기피부서로 전락해버린 수사 부서에서 의무감 하나로 근근이 버티고 있는 수사관들의 어려움이 줄어들 수 있도록, 정치 싸움이나 선동이 아니라 세심한 수사제도 조성을 위한 고민과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달나라금토끼(필명) 현직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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