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지사지(歷知思志)] 울산

유성운 입력 2022. 5. 25. 00:18 수정 2022. 5. 25.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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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운 문화팀 기자

매년 5월이면 울산에서는 쇠부리축제가 열린다. 한반도 최초의 철광산인 달천철장(達川鐵場)을 기념하는 행사다. 외지에서는 울산을 근대화 이후 현대자동차나 현대제철 덕분에 ‘철’로 먹고 살게 된 신흥 산업도시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울산의 철 생산은 유구한 역사를 갖고 있다. 2000년대 들어 울산의 달천철장 유적을 조사한 결과 삼한시대부터 이곳에서 철을 생산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면서 『삼국지』 위지동이전에서 한군현과 일본이 철을 사 갔다는 곳도 지금까지 알려진 변한이 아니라 울산이 아니냐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이곳에서 고대 일본의 토기들이 발굴된 것도 이런 가설을 뒷받침한다.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철은 고대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전략 물자였다. 삼국 중 중앙집권화가 가장 늦었던 신라가 3세기 이후 급속도로 발전한 것은 수도 경주의 코앞에 울산이라는 천혜의 철 산지가 있었던 덕분이다. 또 울산은 개운포를 비롯해 좋은 항구를 많이 갖고 있었다. 페르시아인으로 알려진 처용이 들어온 곳도 개운포였다. 내륙이 소백산맥으로 막혀있는 신라는 울산 항구를 이용해 활발한 대외교역을 벌일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한국과 신라는 비슷한 과정을 밟았다. 한국도 주변 국가보다 근대화의 출발은 늦었지만, 철(자동차·조선)과 항구(대외교역)를 통해 20세기 후반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했다. 고대사를 읽으며 잃어버린 만주 땅을 아쉬워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보다는 신라가 울산을 이용해 삼국 최후의 승자가 된 비결을 배우는 편이 낫지 않을까.

유성운 문화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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