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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중앙시평] 북한 코로나 사태와 핵 개발 손익계산서

입력 2022. 05. 25. 00:34 수정 2022. 05. 25.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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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연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장

북한에서 코로나 감염으로 의심되는 발열자 수가 어제 기준으로 300만 명에 근접했다. 월드오미터에 따르면 세계에서 38번째로 많은 수치다. 그러나 사망자 수는 68명으로 매우 적어 세계 195위에 머무르고 있으며, 확진자 수가 비슷한 덴마크의 1%에 불과하다. 의심 환자의 날짜별 추이도 다른 나라에서 보여주는 패턴과 확연히 다르다. 1만 명대에서 사흘 만에 39만 명으로 갑자기 증가하는 등, 일정 기간에 걸쳐 확진자 수가 두 배로 증가하는 ‘더블링’ 현상이 보이지 않는다. 또 일일 환자 수가 일주일 만에 정점 대비 절반 이하로 줄었다. 한마디로 예외적이다. 진단 장비의 부족 등 기술적인 문제 때문일 수 있겠지만 통계가 의도적으로 왜곡됐을 가능성도 있다.

왜곡 가능성이 가장 큰 수치는 사망자 수다. 오미크론이 확산했을 때 홍콩에서의 치명률은 0.71%였다. 북한이 발표한 누적 발열자 수에 이 수치를 대입하면 2만1000명이라는 사망자 수가 나온다. 만약 북한 인구의 절반이 감염된다면 9만 명이 사망할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은 홍콩과 달리 백신 접종을 하지 못했고 의료 인프라가 열악하며 약품이 부족할 뿐 아니라 주민 영양 상태가 좋지 못하다. 그런데도 인구의 12%가 코로나 의심 환자로 분류된 현재 사망자 수는 70명 이하다. 특히 연령별 사망자 수를 보면 고령자 비중이 매우 낮다. 코로나로 인한 고령층 사망자 수가 제대로 집계되지 않거나 고의로 과소 보고되는 것으로 보인다.

「 핵 보유국 되기 위한 자력갱생이
남한 방역 지원을 받지 않는 이유
‘핵 보검’이 주민 생명 해치는 비수
핵의 손익계산서엔 적자만 쌓여

김정은은 통계에도 자력갱생 정신을 주입하고 있다. 그는 코로나 사태를 ‘건국 이래 대동란’으로 규정하면서도 당과 인민의 일심단결과 신념만 있다면 얼마든지 최단기간에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북한에서는 권력자가 과학이 아니라 정신 방역을 강조하면 통계도 자력갱생으로 사상 무장 해야 한다. 이를 본능처럼 알아차리는 관료들은 특히 고령층의 사인(死因)을 굳이 코로나로 보고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융통성을 발휘하기 위해 이들은 정확한 진단키트보다 체온측정기를 더 좋아할 수도 있다. 의약품이 태부족인데다 있는 약마저 빼돌리고 사재기하는 난리로 북한 주민의 고통이 극심할 듯하다. 제대로 치료받지도 못하고 자신의 사인마저 바꿔치기 당한 채 숨을 거두는 주민이 통계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이런 상태인데도 남한의 방역 지원을 받지 않는 이유는 김정은의 핵보유국 시도와 이를 위한 자력갱생 때문이다. 자력갱생은 하노이 비핵화 회담의 결렬에서 시작됐다. 비핵화는 일부만 한 채 효과 있는 제재는 다 해제 받아 북한을 핵보유 정상국가로 만들려는 하노이 작전은 실패로 끝났다. 그 후 북한은 미국이 새로운 셈법을 들고 오지 않으면 북미 협상은 없을 것이라며 버티기에 돌입했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것도 남한의 지원은 꿈도 꾸지 말고 자력갱생하라는 사상전의 일환이다. 그런데 만약 오미크론 환자를 치료하고 사망자를 줄이기 위해 남한의 지원을 받는다면 이는 자력갱생의 실패를 대내외에 인정하는 셈이다. 더 나아가 핵 개발 자체가 정세와 현실을 고려하지 못한 김정은의 몽상임을 자인하는 모양새다.

북한을 지켜준다던 ‘핵 보검’이 오히려 자기 주민을 해치는 비수가 되고 있다. 남한과 국제사회의 지원을 거부해 핵보다 귀한 목숨이 스러지고 있다. 발표된 사망자 수가 얼마이든 전 세계가 이미 알고 있는 오미크론의 특성을 무슨 수로 피할 수 있겠나. 그뿐 아니다. 국제사회의 경제제재와 코로나 사태로 2017~2022년 북한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3~-4%일 것으로 추측된다. 제재 이전 김정은 시기에 연평균 2% 성장했다면 제재 이후엔 5~6% 역성장한 것이다. 북한 국내총생산을 고려할 때 핵 개발 때문에 한국 원화로 해마다 1조원을 웃도는 손실을 기록하는 중이다. 그렇다고 북한 안보 상황이 더 나아졌는가. 북핵으로 오히려 한미동맹은 강화되었다. 이처럼 북한 핵 개발의 재무제표에는 이윤은커녕 부채만 쌓이고 있다. 대규모 적자로 자본잠식 상태라고 봐야 할 것이다.

김정은은 북한을 정상국가로 발전시키고 싶어 한다. 그러나 핵보유 정상국가화는 몽상이다. 지난 7년의 경험이 그랬다. 또 핵 때문에 코로나 통계까지 제대로 발표하지 못하는 나라가 어떻게 정상이 될 수 있나. 코로나가 종식되어 북·중 무역이 재개된다면 경제의 숨통이 약간 트일 수도 있다. 그러나 김정은이 꿈꾸는 정상국가는 북한이 세계 경제에 편입되어 대규모 투자를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북·중 무역만으로는 어림없다. 더욱이 정치는 물론 경제까지도 중국에 완전히 의존하는 상태가 북한의 미래에 바람직할까.

핵보유 자력갱생은 북한이 사는 길이 아니라 죽는 길이다. 지금의 북한 코로나 사태가 고통스럽게 알려주는 진실이다. 우크라이나를 보라. 핵이 아니라 국민이 정부와 나라를 지킨다. 반면 핵을 가져도 주민을 보호하지 못하는 정권은 몰락한다. 김정은은 주민의 목숨을 지키고 있나. 아니면 자신의 핵을 위해 주민 생명을 버리고 있나.

김병연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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