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무릎 꿇은 미 대통령

선우정 논설위원 입력 2022. 5. 25. 03:18 수정 2023. 12. 13.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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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방문 중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3일 도쿄 영빈관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함께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의 가족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교도/로이터 연합뉴스

무릎을 꿇고 눈높이를 맞춰 대화하는 것은 ‘당신을 존중하고 당신의 말을 경청하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키가 작은 어린이만이 아니라 장애인이나 노인, 부상자를 대할 때 이런 행위로 존경의 메시지를 전한다. 그제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일본 납북 피해자 가족 면담 때 자식을 북한에 빼앗긴 고령자들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세상을 떠난 장남 사진을 주머니에서 꺼내 보이면서 “아이를 잃은 당신의 고통을 안다”고도 했다. 바이든은 병과 사고로 자녀 2명을 잃었다.

▶북한이 일본인 납치를 인정하고 사과한 때가 2002년이다. 그 후 미 대통령 4명 모두 일본인 납북 피해 가족을 만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4년 단임이었지만 2번 이들을 만났다. 납치 문제의 상징적 존재인 요코타 메구미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땐 애도 편지를 보냈다. 그가 남들보다 정이 많은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미국과 일본 언론은 ‘브로맨스’ 외교 파트너였던 일본 아베 총리에 대한 외교적 배려라고 해석했다.

▶북한의 일본인 납치는 1980년대 초부터 알려졌지만 일본 외교의 핵심 이슈가 된 것은 2000년대 초반이다. 아직 40대였던 국회의원 아베가 깃발을 들었고 납북자 5명과 가족을 북한에서 데려오는 성과도 올렸다. 국민 보호라는 국가의 기본에 충실했다. 우리 입장에선 받아들일 수 없는 문제가 많아도 일본 국민이 그를 인정하는 이유다. 이후 납치 문제는 대북 외교의 ‘모든 것’이 됐다. 미 대통령의 납북 피해자 면담은 일본의 대미 외교를 가늠하는 척도로 자리 잡았다.

▶이 문제에 인색했던 미 대통령은 의외로 오바마다. 방일 당일까지 면담 요청에 확답하지 않았다. 겨우 성사된 면담조차 10분 만에 끝냈다. 같은 민주당이기 때문에 바이든도 그러지 않을까 하고 일본 정부가 우려했다고 한다. 그런데 기대를 훨씬 넘어섰다. 30분 면담 동안 피해자 가족 11명 모두에게 일일이 말을 걸었다. 피해자들은 “미 대통령의 진심이 느껴졌다”고 했다.

▶일본인 납북자는 17명이다. 한국의 전쟁 이후 납북자는 516명에 달한다. 6·25전쟁 당시 납북자까지 합치면 8만명이 넘는다. 문재인 정권 당시 납북 피해자는 국민 취급도 못 받았다. 민주당 의원은 북한이 싫어한다는 이유로 납북자의 법적 이름을 ‘실종자’로 바꾸자는 법안까지 냈다. 정권 교체 이후 변화가 느껴진다. 대통령 취임식에 납북자 가족과 탈북 국군 포로가 특별 초청 대상자로 참석했다. 무릎 꿇은 미 대통령을 보면서 국가의 기본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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