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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만의 佛여성 총리, 임명 순간 극단선택 아버지 떠올렸다

추인영 입력 2022. 05. 25. 15:22 수정 2022. 05. 25.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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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생각했습니다.”
프랑스에서 30년 만에 여성 총리가 된 엘리자베트 보른(61)가 내놓은 답이다. 시사주간지 주르날 드 디망쉬 기자가 총리 임명 후 누가 먼저 가장 생각났는지 물은 데 대한 답변이었다. 이 인터뷰는 지난 22일(현지시간) 게재됐다. 보른 총리의 아버지는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강제 노역을 했던 아픔을 겪었다.

엘리자베트 보른 프랑스 총리가 23일 노동부 장관 이임식에 참석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 16일 2기 내각 총리로 보른을 임명했다. AFP=연합뉴스


보른 총리는 지난 16일 임명 후 첫 공식 일정인 한 간담회에서 받은 “어릴 때 꿈은 무엇이었냐”는 질문에는 “과학이 좋았다. 말하자면 이야기가 너무 길지만, 저같이 인생 여정이 어려울 때, 정말 좋지 않은 일들이 일어날 때 과학에는 뭔가 안심할 수 있는 게 있었다”고 했다. 이 자리에서 ‘어려운 인생 여정’을 구체적으로 말하지는 않았다.

뉴욕타임스(NYT)는 23일 “프랑스 두 번째 여성 총리로서 국민은 이제 그의 인생 여정에 주목하고 있다”며 그의 가족사를 조명했다. “아버지의 죽음이 그를 인내하게 했다. 열심히 하면 결실을 보고, 그 과정에 국가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프랑스의 약속을 굳게 믿게 했다”면서다.


5년간 3개 부처 장관 ‘능력주의자’


2018년 6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오른쪽)과 교통부 장관 시절 엘리자베트 보른 총리. 보른 총리는 마크롱 취임 직후 교통부 장관을 거쳐 환경부, 노동부 장관으로 1기 내각을 내리 함께 했다. AP=연합뉴스

보른 총리는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 재임 당시 1991년 5월부터 1992년 4월까지 내각을 이끌었던 에디트 크레송 이후 프랑스의 두 번째 여성 총리다. 1987년 공무원이 된 그는 2014년 세골렌 루아얄 전 환경부 장관의 비서실장으로 일하다 2015년 파리교통공사(RATP) 최고경영자(CEO)를 지냈다. 2017년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한 전진하는공화국(LREMㆍ현 르네상스)에 합류했다. 교통부 장관에 이어 환경부, 노동부 장관으로 마크롱 1기 내각을 지켰다.

공무원 출신답게 행정과 데이터에 밝지만, 직원들에게는 극도로 까다로웠다고 한다. 2017년 교통부 장관 때 대규모 파업에도 프랑스철도공사(SNCF)의 연금과 복리후생제도 개혁 법안을 통과시켰고, 2020년부터 맡아온 노동부 장관 시절엔 코로나19에도 실업률을 15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낮췄다. 안마리 이드라크 전 통상부 장관은 “똑똑하고 합리적인 프랑스 능력주의의 대표주자”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그의 개인사는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다. 1990년대부터 보른 총리를 알고 지낸 이드라크 역시 “솔직히 그가 (옛이야기를) 명시적으로 말하는 걸 들어본 적 없다”고 말했다. NYT에 따르면, 보른 총리는 과거 인터뷰에서 아버지를 언급한 적은 있지만,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았다. 지난해 방송에서 “너무 어릴 때 아버지를 잃은 것은 약간 충격이었다”고 말한 게 전부다.


11살 때 父 극단 선택…국가 지원으로 공부


장 카스텍스 전 프랑스 총리(오른쪽)가 16일 총리 공관에서 엘리자베트 보른 신임 총리를 맞이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보른 총리의 아버지 조지프 본슈타인은 폴란드계 유태인으로 1924년 벨기에 앤트워프에서 태어났다. 전쟁이 발발하자 프랑스로 이주했다가 조지프와 동생 이삭은 1941년 프랑스 수용소에 감금됐다가 이듬해 탈출했다. 프랑스 그르노블에서 저항운동을 하다 1943년 성탄절에 아버지와 형제들과 함께 붙잡혔다. 조지프는 이삭과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갔고, 비르케나우로 끌려간 아버지와 다른 동생은 끝내 다시 만나지 못했다.

아우슈비츠에서 조지프와 이삭은 매일 고통 속에 강제노동했고, 조지프는 간질에 걸려 이따금 발작을 일으켰다. 형제는 전쟁이 끝난 후 살아남아 프랑스로 돌아왔다. 조지프는 1948년 약사 마르게라이트 레스켄과 결혼해 파리에서 레스켄의 가족이 하던 제약 사업을 이어받았다. 프랑스인으로 귀화하면서 전쟁 당시 신분을 감추기 위해 썼던 성 보른을 진짜 이름으로 썼다.

조지프는 그러나 전쟁의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했다. 수용소에서 얻은 간질은 악화했고 사업은 실패했다. 그의 동생이자 보른 총리의 삼촌인 이삭은 2016년 사망하기 10년 전 프랑스 국립시청각 연구소와의 인터뷰에서 “그가 아우슈비츠를 견딜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결국 보른 총리가 11살이던 1972년 아버지는 창문 밖으로 몸을 던졌다.

보른 총리는 이후 ‘군경유자녀’로 국가 지원을 받았다. “(불안정한 가족사와는 달리) 매우 안정적이고 합리적인” 수학에 두각을 보여 수업료 면제에 장학금까지 지급하는 명문 ‘에콜 폴리 테크니크’에 입학했다. 그가 “진정한 구호였다”며 애정을 드러낸 학교다. 그는 “나는 공화국 능력주의의 원형일 것”이라며 “공화국이 나를 지탱해주지 않았다면 나는 분명히 이 자리에 있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추인영 기자 chu.i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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