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 낳는 기자 '좌표 찍기', 해법 없을까

최성진 입력 2022. 5. 25. 18:16 수정 2022. 5. 25.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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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오후 현업 언론인·미디어 전문가 함께 논의
한국기자협회 등은 25일 트위터 스페이스를 통해 ‘한국 언론의 안전한 취재 환경’에 관한 논의의 자리를 마련했다. 트위터 갈무리

“기자들이 취재 과정에서 여러 경로로 심리적 내상을 입고 있지만 업무에 쫓겨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채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 그러다 보니 취재 중 생기는 트라우마는 사실 업무로 인해 발생한 것이지만 이를 조직 내부에서 해결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김나래 한국기자협회 부회장)

“최근에는 정치인들이 앞장서서 지지자한테 공격할 기자를 정해주는 이른바 ‘좌표 찍기’를 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언론이 잘못하는 경우도 있고 더 개선해야 할 부분도 있지만, 대다수의 기자가 사명감을 가지고 좋은 보도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점에도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다.”(이정애 한국여성기자협회 이사)

25일 현직 기자와 미디어 분야 전문가가 ‘세계 언론자유의 날’(5월3일)을 기념해 ‘한국 언론의 안전한 취재 환경’을 주제로 언론인이 처한 열악한 취재·보도 환경의 문제를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하기 위한 논의의 자리를 가졌다.

한국기자협회와 한국여성기자협회,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등이 참여한 가운데 이날 오후 1시 라이브 음성 커뮤니티 기능을 지닌 ‘트위터 스페이스’를 통해 진행된 행사에선 ‘현직 기자들의 트라우마 실태 파악을 위한 설문조사’ 결과가 주요하게 다뤄졌다. 한국기자협회와 한국여성기자협회는 지난 4월 언론인 54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모바일 설문조사(2021년 11월8~18일) 결과를 공개했는데, ‘기자로 근무하는 동안 심리적 트라우마를 느낀 적’이 있다고 응답한 언론인이 78.7%(428명)가 넘었다. 트라우마를 경험한 이들한테 어떤 상황에서 트라우마를 느꼈는지 묻자 절반이 넘는 응답자(250명·복수응답)가 ‘보도 이후 독자의 반응’에서 트라우마를 얻었다고 밝혔다. 이메일이나 전화, 온라인 기사의 댓글을 통한 독자의 항의·공격이 여기에 포함된다.

이와 관련해 황용석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이날 행사에서 “독자의 온라인 피드백이 한편으로는 언론 보도의 실수를 정정하는 기회도 되지만, 기자를 향해 때로는 폭력적이고 혐오적인 방식으로 독자의 불만이 표출되면서 기자한테는 많은 심리적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흔히 한국 언론의 낮은 신뢰도를 (원인으로) 이야기하는데, 이를 인정하더라도 혐오적 표현이 광범위하게 나타난다는 점은 다른 외생변수로 설명할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황 교수는 온라인에서 빈번히 나타나는 기자 개인에 대한 무분별한 공격의 원인을 깊은 사회적 갈등과 인터넷 공간이 갖는 익명성 등에서 찾았다. 그는 “이념 갈등이나 젠더 갈등, 세대 갈등 등이 심할수록 사람들은 상호작용을 통해 더 극단으로 이동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렇게 되면 자기가 받아들이는 정보를 편향적으로 해석하게끔 만든다”며 “이에 따라 언론이 어떤 사안을 객관적으로 다룬다고 하더라도 그 사안이 자신의 생각과 다른 부분이 있다면 적대적이라고 여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언론인에 대한 과도한 온라인 공격을 막을 방법은 없을까. 이에 대해서는 언론사와 언론 현업단체가 온라인 댓글을 적절한 수준에서 관리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서야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언론 스스로 독자의 신뢰를 재구축하려는 노력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문이 나왔다. 황 교수는 “기자 개인에 대한 과도한 비판과 공격은 취재 활동을 위축시키고 이는 결국 표현의 자유와 의견의 다양성을 제한한다는 점에서 언론사나 한국기자협회 등이 온라인 댓글 관리 시스템 마련을 비롯한 대책을 마련해 나가야 한다”며 “언론 스스로 기사 품질을 높이고 오류를 정정하는 등 신뢰를 재구축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영은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홍보팀장은 “전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혐오 표현의 증가, 언론인에 대한 다각적인 공격에 대해 유네스코는 상당히 우려하고 있다”며 “온라인 공격과 온라인 감시 등이 저널리즘을 위협하는 것은 국제사회가 공통적으로 처한 어려움이기에 글로벌 차원에서 관심을 갖고 풀어나가야 할 숙제 아닌가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행사에서 황 교수는 현업 언론인부터 ‘기레기’라는 표현을 쓰지 말자고 제안했다. 황 교수는 “이 표현을 통해 저널리즘 전체의 신뢰도와 사회적 정보를 유통하는 핵심적인 기제를 우리가 부인함으로써 결국 가짜뉴스가 범람하게 되는 현상이 나타났다”며 “특히 청소년들은 언론을 이해하기 전에 기레기라는 표현부터 배우면서 언론에 대한 냉소적 시각을 강화하고 있는 만큼, 언론계 현업에 있는 사람만이 아니라 언론에 애정이 있는 모든 이들이 기레기라는 표현을 쓰지 말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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