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자·권성덕·손숙이 단역.. 세대 아우른 새 '햄릿'

김정연 2022. 5. 25.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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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3일부터 한 달간 '햄릿' 공연
25일 오후 연극 '햄릿'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배우 권성덕(81)은 다른 배우들이 탐내는 '무덤파기' 역할을 맡았다. 그는 "그 역을 내놓고 내가 햄릿을 할 걸 그랬다"며 "100세 햄릿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그때 생각해보겠다"고 농담을 던졌다. 연합뉴스


"다들 '무덤파기' 역을 그렇게 바라는지 몰랐다. 그 역을 내놓고 내가 햄릿을 할 걸(웃음)."

지팡이를 짚고 느릿느릿 나타난 81세 관록의 배우 권성덕의 농담에 장내엔 웃음이 터졌다. 25일 오후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에서 열린 연극 '햄릿' 제작발표회에서 정동환("무덤파기 역이 하고 싶었다"), 유인촌("무덤파기 역을 뺏겼다")의 말을 들은 '무덤파기' 역을 맡은 권성덕의 대답이었다.

그는 "저는 다 끝난 줄 알고 조용히 가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또 불러줘서, 힘이 달릴까봐 (고민했지만) 하게됐다"며 "제가 한 100살쯤 되면 100살 먹은 햄릿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그때 또 생각해보겠다"고 덧붙였다.


손진책 연출, 강필석·박지연 새 얼굴


국립극단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로미오 역을 하는 걸 보고 점찍었다는 새 햄릿 강필석은 "지금도 연습실에서 제 정신은 (긴장해서) 우주로 가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햄릿'이 돌아온다. 새 햄릿 강필석·오필리어 박지연을 필두로 신시컴퍼니가 제작했다. 이번 공연은 2016년 이해랑 탄생 100주년을 맞아 제작했던 '햄릿'의 연출 손진책 연출이 그대로 맡았다. 손 연출은 "죽음을 바라보는 인간의 내면에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햄릿 역 강필석(44)은 국립극단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와 뮤지컬 등을 보고 발탁했다. 오필리어 박지연(34)도 뮤지컬을 보고 캐스팅했다. 손 연출은 "6년 전에도 젊은 햄릿을 찾다가 없어서, 그 이후 설정을 바꾼 기획을 한 것"이라며 "제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격'이 있는 연극인데, 그 역을 멋지게 소화하리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강필석은 "아직 연습실에서 제 정신은 (긴장해서) 우주에 가있다"며 "박정자 선생님 첫 대사 이후 심장이 너무 뛰어서 제가 감히 대사를 못하겠더라, 한없이 긴장되고 많이 공부하는 시간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배우 박지연도 뮤지컬을 하는 걸 보고 손진책 연출이 발탁했다. 박지연은 "연출님이 '자기 의견을 잘 말하는, 새로운 오필리어를 그리고 싶다'고 말씀하시는 걸 듣고 호기심과 기대가 컸다"며 "새 오필리어가 부담은 되지만, 좋은 부담"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이번 '햄릿'에서는 여성 캐릭터인 오필리어와 거트루드도 새롭게 그려진다. 박지연은 "일반적인, 순정적인 오필리어가 아니라 진취적이고 자기 생각을 말하는 젊은 감각의 오필리어를 만들고 싶다는 설명을 듣고, 큰 호기심과 기대를 갖고 참여했다"고 말했다.


햄릿 n회차 선배들… 유인촌 "나쁜놈의 전형 표현하겠다"


2016년 같은 연출의 '햄릿'에서 햄릿 역이었던 유인촌은 이번엔 햄릿과 대립하는 클로디어스 역을 맡았다. 그는 "복수 당하는 입장으로 바뀌었는데, 끝까지 잘 버티는 나쁜놈의 전형으로 표현하겠다"며 "주변에 그런 사람 많은데, 잘 찾아서 섞어보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이번 '새 얼굴' 햄릿과 오필리어는 평생을 연극무대에 선 선배들에게 둘러싸여 무대에 오른다. '햄릿' 무대에만 몇 번씩 선 대배우들이다.

햄릿의 삼촌 클로디어스는 배우 유인촌(71), 오필리어의 아버지 폴로니우스는 정동환(73)이 맡는다. 햄릿에게 '죽음'을 암시하는 '유령'은 전무송(81)이, 햄릿의 어머니 거트루드는 김성녀(72)가 맡았다. '무덤파기' 역을 맡은 권성덕(81)을 비롯해 박정자(80), 손숙(78), 윤석화(66), 손봉숙(66), 길해연(58) 등이 배우1~4와 여러 역을 나눠 맡았다. 젊은 배우진으로는 김수현(52), 박건형(45), 김명기(42) 이호철(35) 등 연극과 뮤지컬에서 잔뼈가 굵은 배우들이 함께한다.

전무송과 정동환은 '햄릿'만 네 번째, 손봉숙은 세 번째, 박정자와 손숙·김성녀·유인촌도 6년 전 '햄릿' 공연에도 참여했던 배우들이다. 6년 전 '햄릿' 역을 맡았던 유인촌은 "이전엔 (햄릿 역) 복수하는 연기를 하다가 이번엔 복수를 당하는 입장"이라며 "복수를 당하더라도 끝까지 잘 버티는 나쁜놈의 전형으로 표현해보겠다. 우리 주변에 그런 사람 많은데, 잘 찾아서 잘 섞어보겠다"고 말했다.


"그냥 '배우1'인데 연습 가는게 너무 행복하다"


'배우1'을 맡은 박정자는 "배우1인데도 연습 가는 게 너무 행복하다"며 "무대 구석, 조명 밖에 있더라도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다면 배역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여유롭게 말했다. 연합뉴스

'배우1'부터 여러 역을 나눠가진 원로 배우들은 배역의 크기보다 공연의 의미를 강조했다. 유인촌은 "평생을 연극 무대에서 보낸 어른들과 젊은 배우들이 함께하는 공연은 제가 어렸을 때 명동예술극장에서 봤던 공연 외에는 없는 것 같다"며 "6년 전보다 이번 공연이 훨씬 의미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정자는 "그냥 '배우1'인데 연습 가는 마음이 너무 행복하다"며 "평생 단역과 조연을 더 많이 해서 소중함을 잘 알고, 조명 밖에 있더라도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다면 배역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80이 넘다보니 대사 외우기가 너무 어려운데, 대사가 적어서 좋다"고 농을 던졌고, 손숙도 "6년 전에 거트루드 왕비, 이번에 '배우2'로 전락했는데 매우 행복하고 즐겁다"고 말하며 웃었다.

전무송이 "햄릿의 마지막인 유령을 맡게됐다"고 설명하자 주변의 배우들이 크게 웃었다. 그는 "저는 햄릿이 네 번째인데, 운이 굉장히 좋은 배우인 것 같아서 자부심이 대단하다. 열심히 해서 실망시키지 않게 하겠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


정동환은 "개별 극단이 하기 어려우면 범 연극인들이 나서서라도, 선배와 후배가 연결되고 함께하는 전통이 유지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햄릿'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오는 7월 13일부터 한 달간 무대에 오른다. 2021년 리모델링한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은 1221석 규모다. 박명성 프로듀서는 "대극장 연극이 실종되다시피 한 요즘, 배우들과 힘을 합쳐서 새로운 스타일의 연극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하다"며 "연극을 만들어보고 나중에 뮤지컬도 잘 만들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주는게 1세대 프로듀서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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