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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 프리즘] 우순경 사건과 형제복지원 사건

위성욱 입력 2022. 05. 26. 00:20 수정 2022. 05. 26. 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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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성욱 부산총국장

40년 전인 1982년 4월 29일. 경남 의령군 궁류면 4개 마을 주민 95명이 경찰이 쏜 총탄에 맞아 죽거나 다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의령경찰서 궁류지서에 근무했던 우범곤(당시 27세) 순경이 예비군 무기고에 침입해 카빈소총 2정과 실탄 129발, 수류탄 6발을 들고나와 저지른 만행이어서 ‘우순경 사건’으로 불렸다.

이 사건은 범행 동기부터 황당하다. 우 순경은 사건 발생 당일 야간 근무를 위해 낮잠을 자고 있었다. 그런데 동거녀가 그의 가슴에 붙은 파리를 잡겠다고 손바닥으로 내리쳤고, 놀라 깬 그와 다툰 것이 계기였다. 이후 동거녀의 친인척들로 다툼이 번졌고, 우 순경이 그 길로 지서로 달려가 범행을 저질렀다.

그는 무기고에서 나와 행인을 쏜 뒤 바로 옆 우체국부터 갔다. 통신시설을 끊어 외부와의 연락을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이후 궁류면 4개 리(里)를 돌아다니며 총기를 난사해 62명이 죽고 33명이 다쳤다. 29일 오후 9시 30분부터 다음날 우씨가 인질 5명과 함께 수류탄을 터뜨려 자폭한 오전 3~4시까지 불과 6~7시간 만에 사상자 95명이 나오면서 이 사건은 단시간 최다 살인으로 기네스북에까지 올랐다.

우순경 사건 발생 직후 다수의 사망자를 수습하기 위해 트럭에 실린 관을 옮기는 모습. [중앙포토]

그러나 사건 발생 일주일 후 사실상 뉴스 보도가 사라졌다. 당시 전두환 군사정권 하에서 보도 통제가 되면서다. 이후 40년 동안 이들 희생자는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 유족들은 냉가슴을 앓을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의령군이 올해 정부와 경남도의 지원을 받아 피해자의 넋을 기리는 위령탑과 추모공원을 착공한다니 늦었지만, 유족들의 40년 한이 풀리는 계기가 마련됐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에 불거진 ‘형제복지원 사건’의 피해자 명예회복은 아직 진행형이다.

부산 형제복지원은 1960~1980년대 부랑아를 선도한다는 명목으로 무고한 시민을 강제 구금한 후 가혹 행위를 한 곳이다. 2020년 부산시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3만8000여 명이 감금됐고, 최소 523명이 숨졌다. 이 사건도 1987년 3월 원생 30여명이 집단 탈출하던 중 1명이 구타당해 숨지면서 세상에 처음 알려졌지만 정권의 비호 아래 다시 묻혔다. 이후 2018년 피해자들의 신상기록카드가 처음 공개돼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현재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1년간 조사를 벌인 결과 이르면 다음 달 첫 보고서가 나온다고 하지만 배·보상 등 실질적인 피해 복구는 힘든 상황이다.

두 사건은 경찰과 검찰로 상징되는 공권력이 원인이 되거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서 큰 피해가 났지만, 피해자들에 대한 추모나 명예회복이 늦어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정부와 자치단체가 지금이라도 고인의 넋을 위로하고 유족들의 피맺힌 한을 달래는 방법을 찾는 데 앞장서야 하는 이유다.

위성욱 부산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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