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혜리의 시선]한동훈은 조국이 아니다

안혜리 입력 2022. 5. 26. 00:30 수정 2022. 5. 26. 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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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무능한 내각에 피로
조국, 도덕성보다 실력부족 더 커
정치적 고려 넘는 실력 보여주길
안혜리 논설위원

지난 5년 동안 너무 당연한 걸 잊고 살았다. 무슨 일이든 제대로 굴러가려면 합당한 전문성과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 그에 걸맞은 자리와 권한을 줘야 한다는 지극히 기본적인 상식 말이다. '인사가 만사'라는데 지난 5년의 문재인 정부에선 이런 상식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 공직자로서 지녀야 할 사명감이나 국민과 공유할 국정철학은커녕 이념적 동지라 발탁된 무능하고 자격 없는 사람들로 채워진 국무회의가 온갖 헛발질로 국민 삶을 점점 더 피폐하게 만드는 모습에 처음엔 분노하다가 부지불식간 마치 그게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다. 다 거기서 거기지, 뭐 정권 바뀐다고 뾰족한 수가 있으려나. 이런 끔찍한 세뇌 아닌 세뇌에서 벗어나도록 해준 게 바로 한동훈 신임 법무부 장관이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 20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사실, 지난 4월 윤석열 대통령이 본인의 최측근인 그를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을 땐 매우 회의적이었다. 검사로서 한 장관 능력 뛰어난 거야 온 세상이 다 알지만 여러 정치적 고려가 필요한 새 정부 첫 내각 인사로는 파격적이다 못해 너무 오만한 행보로 느껴진 탓이다. 지명한 쪽도, 그 제안을 받은 쪽도 솔직히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한 달여 지켜본 결과 조심스레 한번 기대를 걸어보는 쪽으로 마음이 바뀌었다. 비단 검수완박(검찰수사권완전박탈)을 언급할 필요도 없이 문 정부의 권력 수사 뭉개기로 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완전히 무너지다시피 한 지금 필요한 건 어설픈 정치적 고려가 아니라 일 제대로 해서 국민 삶을 평안하게 할 진짜 실력자의 인선이라는 판단이 들어서다.
둘을 나란히 놓는다는 것부터가 어느 한쪽에 모욕적이긴 하지만 조국과 한동훈, 이 두 사람을 비교하면 딱 답이 나온다. 두 사람의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당시 발언, 그리고 장관 취임 직후 행보를 복기해보면 더욱 명확하다.
우선 조 전 장관. 딸 조민씨의 동양대 표창장 위조 등 이젠 너무나 명확한 조 전 장관 일가의 불법을 놓고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정치적 공방을 벌인 탓에 묻혀버렸지만 사실 지난 2019년 조국 청문회는 장관직을 수행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조 전 장관의 실력이 여과 없이 드러난 자리였다. 사문서위조 등 도덕성만이 아니라 실력이 더 큰 문제였다는 얘기다. 어떻게든 편들어 주느라 민주당 의원들이 열심히 판을 깔아줘도 아무런 논리적 설명을 못 했으니 하는 말이다. "검찰개혁과 관련해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말해달라"는 백혜련 의원의 질문에는 "감사하고 면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가 전부였다. 표창원 의원이 한 번 더 묻자 "글을 많이 썼고, 각종 위원회를 오래 경험한 게 장점"이라고 했다. 아마 적잖은 국민들이 장관은 아무나 하는 거구나, 싶었을 거다. 취임 후 행보도 이런 낮은 기대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퇴임까지 불과 한 달 동안 조 전 장관이 한 일은 그가 문 정부 첫 민정수석으로 있으면서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을 수사한다는 빌미로 자기 손으로 23명에서 무려 43명으로 크게 늘린 검찰 특수부를 폐지하겠다고 나선 게 전부였다. 아, 이 사이 조 전 장관 동생은 영장 실질심사에 불출석하고도 100% 구속 전례를 깨고 구속영장이 기각되기도 했다.
이번엔 한동훈. 한동훈 잡으려다 국민적 조롱거리로 전락한 최강욱·김남국·김용민·이수진 등 '처럼회' 소속 민주당 법사위 의원들의 활약상 탓에 덜 부각됐지만 지난 9일 법무부 장관 후보 인사청문회는 한 장관의 평소 소신을 유감없이 드러낸 자리였다. 한국 3M이나 이모 교수, 2만 시간 논란 같은 민주당 의원들의 저질·억지 질문에도 흔들리지 않는 침착함만큼 화제가 된 건 그의 논리정연한 발언이었다. 검찰의 74년 쌓인 수사 자산 언급을 비롯해 시종일관 검수완박의 문제를 조목조목 짚으며 드러낸 법 전문가로서의 자질 얘기만이 아니다. 그는 "없는 죄를 만들어 뒤집어씌우는 게 안 되는 것만큼 있는 죄를 덮어주는 것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지난 정권을 겪으며 국민들이 분노했던 지점을 정확히 짚었다. 그리고 실제로 취임하자마자 추미애 전 장관이 없애버린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을 부활시켰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검찰 인사 하루 만에 산업통산자원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정조준하는 등 지난 정권이 뭉갠 비리 의혹 수사가 활기를 띠고 있다.
코미디보다 더 웃겼던 인사청문회 동영상뿐만 아니라 과거 아무도 보지 않았던 장관 취임식 영상이 수백만 조회 수를 기록하는 등 한 장관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뜨거운 건 한 장관 발언처럼 '없는 죄 만들지 말고 있는 죄 덮지 않기'를 바라는 국민적 기대가 깔려있다고 본다. 그가 사실상 민정수석 역할까지 겸하게 되면서 권력의 집중에 따른 여러 우려가 나온다. 부디 그가 권력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초심을 지키기를 바랄 뿐이다.

안혜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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