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중앙일보

[윤석명의 퍼스펙티브] 전문가 중심 개혁위 구성, 회의록 전문 공개해야

입력 2022. 05. 26. 00:34 수정 2022. 05. 26. 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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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의 연금개혁 성공하려면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전 한국연금학회 회장·리셋 코리아 연금분과장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6일 국회 첫 시정연설에서 연금개혁을 강조했다. 지속가능한 방향으로 연금을 개혁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국민이 싫어하는 안을 제도 개편안에 포함하지 말라는 문재인 행정부의 개혁 노선과는 결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문제는 제대로 결실을 보려면 넘어야 할 산이 수없이 많다는 점이다.

“공무원연금 재정 추계를 해보니 끔찍하다. 10년 전에만 제대로 개혁했더라도 이 지경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리도 무책임하게 공무원연금을 운영해 왔는지 어이가 없다.” 공무원연금 실상을 제대로 아는 공무원연금 가입자가 한 발언이다. 우리 연금이 이 지경까지 오게 된 이유는 불투명한 제도 운용에 있다. 소수가 정보를 독점하면서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정보만 제공하고, 그러한 입장을 옹호하는 집단 위주로 꼭두각시 위원회를 구성·운영해서 벌어진 현상이다. 자기들만의 리그를 형성해 논의한 내용이 마치 전체를 대변하는 것으로 호도해 왔다. 그 결과 기득권은 철저히 보호됐고, 이를 주도한 위원회 위원은 특정 정부에서 승승장구했다.

「 2009년 공무원연금제도 개편 당시 이해관계자가 과반
팩트에 입각한 전문가들의 개혁 요구 목소리 잠재워
국민연금 자료 유출에 청와대가 공무원 핸드폰 압수도
회의 내용 생중계하고, 모든 정보 홈페이지에 올려야

‘그들만의 리그’ 불투명한 제도운영

윤석명의 퍼스펙티브

이러한 모습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지난 16년 동안의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 논의 과정을 소환해 보자. 먼저 연금개혁 논의 과정에서 정보 왜곡이 가장 심한 공무원연금부터 들여다보자. 2009년 공무원연금제도 개편을 위해 두 차례 위원회가 가동했다. 2006년 1기 위원회의 경우 제대로 논의해보자는 자세가 있었고 실제 그렇게 운영됐다. 세종로청사 국무위원 식당과 시내 호텔을 오가며 수없이 많은 조찬 회의를 했다. 참여했던 전문가뿐 아니라 지원하는 정부도 일단의 최선을 다했다. 위원들의 요청 자료는 대부분 공개됐고 더 필요한 자료는 새로 만들어 제공됐다. 당시 논의 중이던 국민연금 개혁이 이루어진다면 개혁 내용을 반영해 추가로 지급률을 하향 조정한다는 내용이 개혁안에 포함될 정도였다.

2007년 7월 우여곡절 끝에 국민연금 개혁이 이뤄지면서 1기 위원회 내용을 수정할 필요가 생겼다. 2기 위원회가 출범했다. 2기 위원회의 전반기 위원회는 1기와 유사한 방식으로 운영됐다. 하지만 돌연 전반기 위원회가 해산되고 새로운 위원회가 조직됐다. 종전 위원회와 비교할 때 2기의 후반기 위원회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논의를 주도했던 전문가 다수가 탈락하여 소수로 전락하는 대신, 이해관계자가 위원회를 절반 넘게 차지했다. 논의 방향 역시 이전과 딴판이 됐다.

애초에는 필자 역시 2기 후반기 위원회에서 배제됐다. 기득권을 사수하려는 입장에서는 연금 재정 안정을 부르짖는 필자가 눈엣가시였을 것이다. 이후 필자가 소속 기관의 사회보장연구본부장 보직을 맡으면서 2기 후반기 위원회에 뒤늦게 합류할 수 있었다. 처음 참여한 회의부터 당혹스러웠다. 소수로 전락한 전문가는 침묵하고 있었고, 이해관계자의 목소리가 웅변이 되고 있었다. 팩트에 입각한 발언, 즉 강한 개혁을 주문하면 다수의 이해관계자가 동시에 공격했다.

회의록에서도 사라진 공청회 질의

이러한 위원회 구조의 결말은 명약관화하다. 1기와 2기 전반부와 전혀 다른 개편안이 만들어졌다. 위원회 안을 결정하는 최종 회의가 서울 이태원 캐피탈호텔에서 열렸다. 무슨 감출 일이 그리 많았던지, 당일 장소까지 바꾸면서 회의가 열렸다. 파행적인 위원회 운영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국책연구원 전문가 3인이 위원직 탈퇴를 선언했다. 회의장이 술렁이면서 휴회가 선언됐다. 시민단체 추천 위원의 중재로 합의가 이뤄졌다. “지금까지 논의된 내용을 2기 후반부 위원회 논의 결과로 확정한다. 단 위원직 탈퇴를 선언한 3인이 요구한 1기 위원회와 2기 전반부 논의 내용을 2기 후반부 위원회 보고서에 부록으로 수록한다.” 이 합의를 지키는 조건으로 위원회가 파국 없이 종결됐다.

이것이 2009년 공무원연금 개혁위원회를 둘러싼 필자의 경험이다. 지난 위원회 논의 과정을 소환한 이유는 무엇보다 애초의 합의가 지켜지지 않은 때문이다. 전문가 3인이 요구한 자료는 물론이고, 2기 후반기 위원회 논의 자료도 공식적으로 구할 수 없다. 정부가 한 약속조차 헌신짝처럼 버리는 현실에서 어떤 의미 있는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겠나. 이러니 연금 개혁 전제 조건이 투명한 자료 공개라고 강조하는 거다.

그해 12월 공무원연금 개편안에 대한 국회 공청회가 열렸다. 당시만 해도 연금개혁에 소신 있는 정치인이 있었던 것 같다. 캐피탈호텔 회의에서 위원 탈퇴를 선언했던 문형표 KDI 박사와 필자를 공청회 진술인으로 선정해서다. 공청회 자료집의 찬반 표시란에는 필자와 문 박사가 정부 안에 반대하는 것으로 표기됐다. 이런 정부 개편안이 1년이 지난 2009년 12월 원안 수정 없이 통과됐다.

그로부터 5년이 더 지난 2015년 2월 26일 국회에서 2009년 공무원연금 개편을 평가하는 공청회가 있었다. 필자가 발제하면서 제기한 이슈가 있었다. 2009년 공무원연금 개편에서 재직자 약 56%가 연금액이 한 푼도 깎이지 않았다. 연금액이 늘어날 수도 있어, 더 받을 수 없게 한 부대 조항이 사실이냐는 문제 제기였다.

당시 김현숙 의원(현 여성가족부장관)이 인사혁신처 차장에게 “재직자 56%의 연금액이 삭감되지 않는 것이 사실이냐”고 질의했다. 이 질의 이후 휴회가 선언됐다. 공청회 속개 후 인사혁신처 차장이 “예”라고 답했다. 공청회를 국회방송이 녹화 방송했다. 2020년 국회 보고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당시 회의록을 자세히 들여다봤었다. 이 글을 쓰면서 다시 들여다봤다. 유독 이 부분만 회의록에서 빠져있다. 이런 게 공무원연금 개혁 과정의 또 다른 현주소 아닐까.

2018년 국민연금 회의록 미공개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국민연금도 유사하다. 2018년 재정계산에서 일어난 일이다. 위원회 논의 내용이 유출됐다고 청와대가 보건복지부 공무원의 핸드폰을 압수했다. 본인 동의로 압수했다고 했다. 청와대 압수를 어떤 공무원이 거부할 수 있겠나. 더 심각한 문제는 20회가 넘는 장문의 위원회 회의록이 아직도 공개되지 않고 있는 거다. 회의록이 공개돼야 어떤 주제로 얼마나 치열한 논쟁이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팩트조차도 딴지를 걸다 보니 흐르는 게 시간이고 나가는 것이 국민 세금이다. 그러다가 위원회 종료 시점이 되면 누가 무슨 안을 제안했는지 모르게 익명으로 복수 안을 만들어 위원회 논의 결과라고 공청회에 부친다. 치열한 논쟁이 있었음에도 결론이 없고 책임지는 사람도 없다. 노력했으나 단일안은 도출하지 못했다고 하면서. 그러니 회의록을 공개 못 하는 거다. 2007년 이후 국민연금 개혁 논의에 성과가 없는 배경이다. 이 방식을 답습한다면 윤석열 행정부에서도 가시적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대통령이 연금개혁 의지를 밝힌 이상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연금 관련 모든 정보를 공개하는 거다. 알아서 공개하라고 하면 영양가 없는 자료만 제출할 것이다. 팩트 보고서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다. 진작 인수위에서 해야 했을 일이었다. 늦었더라도 지금부터라도 서둘러야 한다. 담당 부처와 공단이 만든 초안을 중립적인 전문가가 검증하고 부족한 자료는 추가하는 방식으로 제대로 만드는 데 윤석열 행정부가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이것만 제대로 해도 절반은 성공한 것과 다름없다.

인기 영합하는 위원들 가려내야

제대로 된 팩트보고서를 언론과 공유한 뒤에 대통령 직속 연금개혁위원회를 시작해야 한다. 모든 회의는 유튜브로 생중계하고, 무편집 버전으로 관련 정부 부처와 각종 제도 공단 홈페이지의 연금 개혁 특별 사이트에 올려야 한다. 또 이 정보들은 영구적으로 보존해야 한다. 풀버전의 실명 회의록을 작성해 홈페이지에 올려야 한다. 최소한,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 국민과 언론이 알고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자기 발언이 공개되는 것을 원치 않는 위원은 스스로 사퇴하면 된다. 일본이 채택한 방식이다. 많이 늦었으나 제대로 된 개혁으로 갈 수 있는 지름길이다.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할 사람들 위주로 위원회를 구성하는 행태를 막는 것이 윤석열 행정부의 공적연금위원회가 가장 먼저 넘어야 할 산이다. 미국 청문회와 유사한 방식으로 위원회 성격과 논의 범위를 사전에 확정해야 하는 이유다. 덧붙여 논의 범위는 지속가능한 재정 안정화 방안 마련으로 한정시켜야 한다. 포퓰리즘에 영합하는 전문가가 누군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카멜레온처럼 색깔을 바꾸는 자칭 전문가가 누구인지를 국민과 언론이 구별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래야만 적절한 노후 소득을 거론하면서 위원회가 넘기 어려운 산으로 향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적절한 노후 소득은 다양한 사회보장제도와 노동시장 개편을 통해 달성할 문제다. 이슈를 섞으면 죽도 밥도 안된다. 이렇게 해야 주요 선진국들이 운영하는 연금제도로 이행할 수 있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전 한국연금학회 회장·리셋 코리아 연금분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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