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탈레반이 여성들에게 원하는 것은"..대변인 답변은?

우수경 2022. 5. 26.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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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와 입을 가린 아프간 여성앵커(좌)/항의에 동참한 아프간 남성 앵커(우)


아프가니스탄 집권 세력 탈레반이 TV 여성 앵커들에게 마스크를 쓰고 진행하라는 지시를 내린 가운데 탈레반 대변인이 아랍권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히잡(머리를 가리는 스카프)은 신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에 언론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자비훌라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은 아랍권 언론 '알아라비아'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5월 23일 방송된 인터뷰는 정치와 안보· 외교 등 탈레반이 집권한 지난 9개월 간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는데, 마지막에 여성 앵커는 작정한 듯 '아프가니스탄 여성'에 대한 질문을 쏟아냈습니다.

앵커는 무자히드 대변인에게 "탈레반이 여성들에게 원하는 게 무엇인가"라고 물었고 대변인은 "우리는 여성들을 우리의 여자형제 그리고 어머니로 여기고 있으며 그들의 권리를 지킬 필요가 있다"고 답했습니다. 그러면서 "여성들은 보건과 교육 분야에서 일하고 있으며 경제와 안보 등의 이슈에도 보탬이 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또 여성 교육에 대한 앵커의 질문에는 "여성이 고급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며 "히잡이나 부르카(머리부터 발끝까지 가리며 눈만 망사로 되어 있는 의상)는 의무는 아니지만 아프가니스탄 문화의 일부이며 선택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여성 앵커는 "TV 앵커들은 부르카 착용이 의무인가"라고 물었고, 대변인은 "부르카를 쓰라고 강요하지 않았고 마스크로 입과 코를 가리라고 요청했다"고 답했습니다.

"미디어에서는 얼굴 표정과 전달력이 매우 중요하다"는 앵커의 말에 대변인은 "TV와 언론은 인간이 만들었지만, 히잡은 신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에 언론보다 중요하다"고 밝혔습니다.

만족스럽지 않은 답변이었는지, 여성 앵커는 인터뷰 마지막에 한 마디를 덧붙였습니다

"자세한 설명을 원했는데, 당신은 일반적인(general) 답변만 반복하고 있군요!"

인터뷰는 히잡을 쓰지 않은 아랍 여성 앵커가 진행했습니다. '알아라비아'는 아랍권에서 알자지라 다음으로 큰,아랍 지역을 대표하는 언론입니다.

알아라비아(Al arabiya) 방송의 여성 앵커와 인터뷰하고 있는 자비훌라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 (출처:알아라비아 유튜브)


■ 탈레반 "여성 앵커 얼굴 가려라"…남성 앵커도 항의 동참

최근 탈레반은 TV 여성 앵커들에게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톨로뉴스 등 아프간 매체를 통해 여성 앵커들이 검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진행하는 화면이 공개되면서 이같은 탈레반의 지시에 항의하는 목소리들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SNS에는 #freeherface(얼굴을 자유롭게하자) 라는 해시태그로 동참의 뜻을 밝히는 이들도 늘고 있습니다. 특히 남성 앵커들도 연대의 의미로 마스크를 쓰고 진행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아프가니스탄 독립언론인협회는 탈레반 재집권 이후 여성 언론 종사자의 80%이상이 일자리를 잃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탈레반은 지난해 8월 아프가니스탄에서 재집권한 이후 이슬람 질서 강화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종교 경찰'의 역할을 하는 권선징악부를 만들었고, 특히 여성들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여성들이 공공장소에서 눈을 제외한 얼굴을 모두 가리는 의상을 착용하도록 의무화했고, 학교와 놀이동산에서도 남녀를 분리했으며, 여성은 남성보호자 없이 장거리 여행을 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또 여학생들의 교육은 여전히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항의 시위를 하는 아프간 여성들(좌)/부르카를 입은 아프간 여성들(우)


■ 꾸준히 항의 시위 나서는 아프간 여성들

20년 전과는 달리 아프간 여성들은 항의 시위에 나서고 있습니다. 대규모 시위는 못하지만 수도 카불 등에서 10명 내외의 여성들이 모여 꾸준히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이들 대부분은 부르카를 입지 않고 얼굴을 드러낸 채 시위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SNS에서도 이들의 시위 사진을 공유하는 방식의 응원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위에 참여하는 여성들의 안전은 위협받고 있습니다. 지난 5월 18일 미국 CNN과 인터뷰를 한 시라주딘 하카니 아프간 과도정부 내무장관은 "버릇없는 여성들(naughty women)은 집에 머물러야 한다"며 "현 정부를 의심하고 다른 곳의 지배를 받는, 말을 듣지 않는 여성들을 의미한 것"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 말은 항의 시위를 한 여성들에 대한 경고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8월 재집권 직후 국제사회에서 '정상'국가로 인정을 받겠다며 국제 기준을 맞추겠다고 공언하던 탈레반은 여전히 변화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유엔은 이같은 아프간 상황에 우려를 표하고 있으며 특히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사무총장은 "아프간 여성들과 소녀들에 대해 약속했던 것들을 지켜야 한다"고 탈레반에 경고하기도 했습니다.

우수경 기자 (swoo@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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