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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 '근대화'로 왜곡된 일제 침략주의의 민낯

최형욱 기자 입력 2022. 05. 26. 13:37 수정 2022. 05. 26.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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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식민사학 비판 총서
이태진 외 6인 지음, 사회평론아카데미 펴냄
"메이지 유신은 자국 발전보다
亞독점 위한 무력 양성이 목표"
조선총독부박물관·경성제대 등
'동양제패' 이데올로기 구축 앞장
뿌리 깊은 '식민사관' 비판 근거
한일 넘어 동아시아로 확장·분석
[서울경제]

‘일본은 메이지유신을 통해 동아시아 국가 가운데 유일하게 근대화에 성공했다. 반면 조선은 반도라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대외적으로 자주성을 잃고 내부적으로는 당파적인 민족성으로 정쟁을 일삼다가 결국 일본의 통치를 받게 됐다.’

우리 사회에 아직도 뿌리 깊은 식민사관이다. ‘일제 식민사학 비판 총서’는 일제 강점기 이후 형성된 식민사회의 실체와 왜곡의 뿌리를 한국은 물론 일본, 더 나아가 동아시아로 확장해 분석한 책이다. 1~4권은 2월말에 나왔고 이번 5~8권 출간으로 완간됐다. 국사편찬위원장을 지낸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가 연구 책임을 맡았다.

조선총독부 청사./사진제공=사회평론 아카데미

한국 역사학계는 1960년대 이후 내재적 발전론으로 통칭되는 한국사 인식 세계를 구축함으로써 식민사관 극복에 많은 성과를 거뒀다. 한민족과 일본 민족은 하나의 조상이라는 ‘일선동조론’이나 일본이 세운 괴뢰국 만주국와 조선의 역사는 하나라는 ‘만선사관’, 왜(倭)가 4세기 중엽 가야 지역을 정벌해 통치기관을 설립했다는 ‘임나일본부설’, 한국의 역사는 외세에 좌우됐다는 ‘타율성론’ 등은 이제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최근 10여년간 대일본 관계 설정이 진영논리에 휘말린 가운데 연구의 확장성도 주춤한 실정이다. 일각에서는 한국이 일본 제국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경제 성장 등 근대화 토대를 마련했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또 한편에서는 1980년대 민중사관이나 민족주의의 영향을 받아 “토착 왜구” “죽창가” 등 광복 이후에나 쓰였던 구호들을 남발하고 있다. 일부 정치 세력의 이해관계, 폐쇄성과 배타성에 기반한 반일 선동은 오히려 식민사관 극복을 가로막고 있는 실정이다.

조선총독부 박물관 전경./사진제공=사회평론아카데미

이 같은 현실에서 이번 총서는 식민주의 역사학 비판의 시야를 일제의 ‘동양 제패’ 이데올로기를 생산한 주요 조직으로 확장했다는 데서 의미가 깊다. 조선총독부박물관,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 경성제국대학, 만철조사부 등에서 일제 침략의 이데올르기를 만들어낸 학자들을 확인하다보면 일본 제국의 본질을 만날 수 있다. 집필진은 “일제 침략주의의 실체를 말 그대로 머리에서 발끝까지 뒤져본다”는 심정으로 5년간의 작업 끝에 이번 총서를 내놓았다.

서영희 한국공학대 교수가 쓴 5권 ‘조선총독부의 조선사 자료수집과 역사편찬’은 일제의 ‘조선반도사’ ‘조선사’ ‘고종순종실록’ 편찬 과정을 조선총독부의 식민사학 체계 구축이라는 틀안에서 조망한다. 서 교수는 ‘고종순종실록’에 대해 “변화된 사회상과 일제의 국권 침탈사는 상대적으로 축소하고 형식적인 왕실 의례를 부각시켰다”며 기초 사료로 활용하기 이전에 엄정한 사료 비판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한다.

경성제국대학 도서관 모습./사진제공=사회평론아카데미

정준영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교수가 집필한 6권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와 조선 연구’는 식민지 조선의 최고 학부였던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에 재직했던 일본인 교수들의 ‘조선 연구’ 과정을 들여다본다. 이들은 학자로서 나름대로 학문적 자율성과 과학적 엄밀성을 추구했다. 하지만 한계는 명확했다. 일제의 대륙 침략 이후 학자들은 식민통치 안정화의 첨병이 되거나 침묵하거나 해직되고 된다.

7권 ‘남양과 식민주의’는 허영란 울산대 역사문화학과 교수가 ‘대동아공영권’의 또 다른 공간이었던 ‘남양(南洋)’을 다룬 책이다. 기존 연구가 한반도나 만주에 집중된 반면 타이완과 남양군도, 동남아시아 전역을 연구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허 교수는 “동양이 메이지 시기 이래 북진의 공간이었다면 남양은 태평양전쟁에 의해 확장된 남진의 공간이었다”며 “일본은 ‘아시아와의 연대’를 내세웠지만 침략을 수단으로 하는 자가당착적 연대”였다고 비판한다.

태평양 전쟁 당시 동남아에 주둔 중인 일본군./사진제공=사회평론아카데미

마지막 권 ‘일본제국의 대외 침략과 동방학 변천’은 1권의 저자이기도 한 이태진 교수가 썼다. 그는 외무성 산하 동방문화학원, 교토제대 인문과학연구소, 도쿄제대 동양문화연구소 등 동방학과 대동아공영권 이데올로기 구축에 앞장선 기관의 실체를 파헤쳤다.

앞서 출간된 책은 1권 ‘일본제국의 동양사 개발과 천황제 파시즘’, 2권 ‘조선총독부 박물관과 식민주의’, 3권 ‘만선사, 그 형성과 지속’, 4권 ‘제국 일본의 동아시아 공간 재편과 만철조사부’ 등이다. 이태진 교수는 “메이지 지도자들은 자유민주주의로 일본을 발전시키려고 ‘유신’을 한 것이 아니라 아시아를 독점하기 위한 무력 양성을 목표로 삼았다”며 “제국 일본의 잘못된 역사교육은 동아시아에서 큰 전쟁을 반복하게 했다. 한중일 3국 역사학계의 반성과 협력관계가 절실한 상황”이라고 비판한다. 각권 2만5000~2만8000원.

남만주철도 노선도./사진제공=사회평론아카데미
최형욱 기자 choihu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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