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시각]선거 현수막 기획 실패기

입력 2022. 5. 26.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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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대선 때다.

모든 후보가 동의했으니, 대선 승패를 떠나 다음 선거엔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현수막이 없는 선거운동.

단 한 표로 모든 걸 얻거나 잃을 수 있는 선거에서, 저렴한 현수막 제작은 후보에겐 포기하기 힘든 유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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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 김상수 기자]지난 3월 대선 때다. 헤럴드경제는 그린피스와 함께 대선 후보를 대상으로 환경 분야 질의응답을 진행했다. 당시 문항 중 하나다. ‘선거 때마다 선거 관련 각종 폐기물에 대한 논란이 제기됩니다. 후보님은 선거 홍보 효과 감소나 투표율 감소 등 부작용을 감안하더라도 종이 공보물, 현수막 등 선거 관련 폐기물을 줄여야 한다는 데에 동의하십니까?’

당시 윤석열·이재명·심상정·안철수 후보 모두 이에 동의한다고 답했다. 모든 후보가 동의했으니, 대선 승패를 떠나 다음 선거엔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문항을 다시 보자. 간단히 ‘선거 폐기물을 줄여야 한다는 데 동의하는지’ 물을 수도 있었다. 굳이, ‘홍보 효과나 투표율 감소 등의 부작용을 감안해달라’는 문항을 넣었다.

모든 쟁점이 그렇듯, 환경 분야 역시 선택의 문제다. 비용이든 불편함이든 희생이 불가피하다. 공보물이나 현수막 등 선거 폐기물도 여전히 누군가에는 분명 필요하다. 다만, 그 ‘누군가’는 빠르게 줄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선거 정보의 90%를 TV나 인터넷으로 얻는다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연구 보고서를 굳이 인용할 필요도 없다. 그냥 우리의 일상 속 체감으로도 충분하다. 시대는 급변했고 정보 획득의 창구도 급변했다. 여기까지가 ‘펙트’다.

다시, 이젠 선택의 문제다. 지난 2018년 지방선거 때 쓰인 종이 공보물은 총 6억4650만부. 현수막은 13만8192개. 코팅된 종이 공보물은 재활용도 불가능하고, 폐현수막은 일부 마대나 에코백 등으로 재활용될 뿐 상당수 소각 처리된다. 사실상 2주짜리 일회용 폐기물이다. 시대는 빠르게 변하는데 선거 문화는 수십년째 그대로다.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고 대선에 이어 기획을 준비했다. 이번엔 실제 변화를 이끌어보고 싶었다. 단 한 선거구라도 말이다. 현수막이 없는 선거운동. 공보물과 달리 현수막은 공직선거법상 반드시 제작해야 할 의무사항도 아니다. 그저 관행적으로, 경쟁적으로 점차 많은 현수막을 만들고 있을 뿐이다.

단 한 곳이라도 현수막 없는 선거가 실현된다면, 분명 한국 선거운동 자체가 바뀔 것이라 확신했다. 숨 가쁘게 움직였다. 이미 후보 인지도가 충분한 선거구를 선별했고, 모든 후보가 동참하길 독려했다. “어려운 결정이지만 한국 선거 역사상 의미 있는 첫 행보가 될 것”, “승패를 떠나 진정 선거운동 폐해를 고민하고 실천한 후보로 남을 수 있다”는 등 성심껏 설득에 나섰다.

결론적으로, 기획은 실패했다. 단 한 표로 모든 걸 얻거나 잃을 수 있는 선거에서, 저렴한 현수막 제작은 후보에겐 포기하기 힘든 유혹이었다. 불필요한 쓰레기를 줄여보자는 제안은 아직 너무 먼 얘기였다. 모든 후보는커녕, 어느 한 후보조차 흔쾌히 동의하지 않았다. 그렇게 기획은 미뤄졌다. 그리고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됐다. 선거 현수막은 여전히 전국 골목까지 걸렸다. 올해 지방선거에 쓰인 현수막은 10만장 이상일 것으로 추산된다.

이왕 시작한 것, 다음 선거엔 또다시 기획을 추진할 심산이다. 후보자가 어렵다면, 정당을 국회를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설득해 볼 심산이다. 언젠가 바뀔 것은 자명하다. 결국은, 우리가 가야 할 길이다.

dlc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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