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빛이었던 아이"..슬픔 잠긴 美, 총기규제는 난항

박형수 2022. 5. 26.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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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텍사스주의 롭초등학교에서 벌어진 총기난사로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의 안타까운 사연과 총격범의 범행 전후 행보가 추가로 공개되면서, 미국 전역에 슬픔과 분노가 커지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희생자와 유가족을 향해 애도와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지만, 정작 대책 마련에서 상반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미국 텍사스주의 롭 초등학교에서 벌어진 총기 난사 사건으로 19명의 어린이와 2명의 성인이 희생됐다.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총격범, 독일소녀에 SNS로 범행 예고


25일(현지시간) 미국 CNN 방송과 뉴욕타임스(NYT)·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총격범 샐버도어 라모스(18)는 2주 전 소셜미디어에서 알게 된 독일의 15세 소녀에게 전날 메시지를 보내 범행을 예고했다.

소녀가 공개한 라모스와의 일대일 대화에는 범행 당일 라모스가 “할머니가 짜증나게 한다” “방금 할머니를 쐈다” “지금 당장 초등학교에 총을 쏘러 갈거다”는 메시지가 포함됐다. 이후 라모스는 실제로 트럭을 몰고 초등학교로 향했고, 학교 뒷문으로 들어가 4학년들이 공부하는 교실에 난입해 문을 걸어 잠근채 AR-15 돌격용 소총을 난사했다. 텍사스주 당국은 “모든 희생자가 이 교실에서 나왔다”면서도 “라모스가 왜 초등학교를 목표로 삼았는지는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총기 난사 사건이 벌어진 롭 초등학교 앞 임시 추모비에 꽃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소녀는 라모스가 “나는 어머니·할머니와 사이가 나쁘다. 누나와 할머니를 때린 적이 있다”고 말한적 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거의 모든 시간을 집에서 홀로 보냈고, 친구와 약속이 전혀 없어 보였다”고도 했다. 그래그 애벗 텍사스 주지사는 라모스에 대해 “정신병력과 범죄 전력이 없는 고등학교 중퇴자”라고 밝혔다.

라모스의 총격에 희생된 어린이 19명과 교사 2명의 유가족은 슬픔에 잠겼다. 급우를 도우려다 총에 맞아 희생된 10살 아메리조 가르자의 아버지는 “내 딸은 옳은 일을 하려고 노력했다”면서 “아메리조는 엄마와 아빠 말을 잘 듣고, 이도 잘 닦고, 가족을 위해 항상 뭔가를 만들어주던 아이였다”고 CNN에 전했다. 틱톡을 즐기고 팝스타 아리아나 그란데의 팬이었던 테스 마타는 온 가족과 함께 디즈니월드에 가기 위해 용돈을 아껴 저축하는 중이었다. 하비어 로페즈의 부모는 “가족의 빛이었던 아이다. 그 미소를 절대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희생자 중 한명인 아메리조 가르자. 연합뉴스

"총기 규제 시작해야" VS "교사 무장론"


미국 사회는 충격에 빠졌다. 불과 열흘 전 뉴욕주 버펄로에서 흑인에 대한 증오심에 사로잡힌 18세 청년이 수퍼마켓에서 총기를 난사해 흑인 10여 명을 사살한 사건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초등학교에서 어린 학생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한 사건이 벌어지자 ‘총기 규제’ 강화 여론에 힘이 실리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18세가 상점에 들어가 전쟁용으로 설계되고 살상용으로 판매되는 무기를 살 수 있는 것 자체가 상식에 어긋난다”면서 “상식적인 총기 규제가 모든 비극을 막을 순 없지만 상당한 영향을 줄 것이라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총기 규제는 수정헌법 2조(무기 소지를 국민 권리로 명시한 법안)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서 의회에 총기 규제 법안 처리를 촉구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의회에 총기 규제 강화 법안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했다. 연합뉴스


하지만 공화당은 이번 참사에도 총기 규제에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공화당 소속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은 CNN에 출연해 “총기 소유권 규제는 효과적인 대책이 아니다”면서 “아이들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교정에 더 많은 무장 경관을 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보수 성향의 켄 팩스턴 텍사스주 법무장관 역시 “총격범은 어차피 법을 따르지 않는다”면서 “오히려 교사와 교직원들이 훈련을 받고 무장하면 생명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며 ‘교사 무장론’을 주장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텍사스 휴스턴에서 열리는 전미총기협회(NRA) 연례회의에 예정대로 참석해 연설하겠다고 소셜미디어에 밝혔다.

총기 규제 반대 입장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연합뉴스

영·프 "미국, 개보다 총 소유 쉬워" 비판


이에 대해 영국과 프랑스 언론은 “미국이 총기 규제를 강화하는 국가적 수준의 조치를 하지 않으면 참극은 반복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의 많은 주에서는 개보다 총을 소유하는 게 쉽다”면서 “총을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많은 비극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최소한 총기 면허가 운전면허만큼은 어려워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프랑스 르몽드는 “미국의 초등학교에서 대학살이 있었다. 유가족의 끝없는 고통, 그리고 대통령의 엄숙한 연설, 그게 끝이다”면서 “미국에 예외주의가 있다면 학교가 간혹 사격장으로 바뀌는 것을 용인하는 것”이라고 힐난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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