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파업 업무방해죄 처벌은 합헌"..뒤로 가는 헌재 판결
재판관 9명 중 5명이 '위헌' 의견 냈지만 정족수 6명 못 채워
10년 심리에도 소극적 결정 지적 속 노동계 "사용자에 날개"
비정규직 해고에 반발해 휴일근무를 거부한 노동자들을 업무방해죄로 처벌하는 것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헌법재판소가 판단했다. 헌법이 보장하는 파업은 본질적으로 업무방해의 목적을 띠고 있다. 그런데도 파업에 단순 참가한 노동자들을 형법상 업무방해죄로 처벌할 수 있다는 판단을 고수한 것이다. 헌재가 사건을 접수하고 10년이나 시간을 끌고도 대법원을 의식해 소극적인 결정을 내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헌재는 26일 A씨가 형법상 업무방해죄가 헌법에 어긋난다며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4(합헌) 대 5(위헌) 의견으로 합헌 결정했다. 위헌이라는 의견이 다수였지만 위헌 결정을 위한 정족수(6명)에 미치지 못했다.
이 사건은 헌재의 최장기 미제 사건이었다. 현대자동차 전주공장이 2010년 3월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 18명을 정리해고한다고 하자 비정규직노조 간부인 A씨 등은 조합원들과 휴일근무를 거부했다. 검찰은 위력으로 하청업체의 업무를 방해했다며 A씨 등을 재판에 넘겼고, 법원은 유죄를 선고했다.
A씨 등은 2012년 2월 자신들에게 적용된 형법 314조 1항에 대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2011년 판례가 헌법소원에 영향을 미쳤다. 종전까지는 ‘단순 파업’에도 업무방해죄를 적용했는데,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단순 파업이 전격적으로 이뤄져 막대한 손해를 끼쳤을 때’ 업무방해죄를 적용할 수 있다고 판례를 변경했다. 이에 A씨 등이 헌법소원을 제기한 것이다.
그러나 10년 만에 헌재가 내놓은 결론은 ‘합헌’이었다. 앞서 헌재는 형법 314조 1항에 대해 1998년, 2005년, 2010년에도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선애·이은애·이종석·이영진 재판관이 합헌 의견을 냈다. 이들은 “단체행동권은 제한이 불가능한 절대적 기본권이 아니므로 기본권 제한의 대상이 된다”며 “단체행동권은 집단적 실력행사로서 위력의 요소를 가지고 있으므로 무조건 형사책임이나 민사책임이 면제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유남석·이석태·김기영·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은 위헌 의견을 냈다. 이들은 “이미 노동조합법은 쟁의행위의 시기, 절차, 방법 등을 제한하는 규정과 함께 형사처벌 조항도 마련하고 있다”며 “심판 대상 조항은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라는 포괄적인 방식으로 단순 파업 자체에 대해서도 형사처벌이 가능하도록 규정하면서 노동조합법의 처벌조항보다 더 중한 형으로 규정해 단체행동권 행사를 주저하게 하는 위축효과를 초래하고 있다”고 밝혔다.
헌재와 대법원의 주도권 다툼 탓에 노동자의 기본권과 직결된 사건의 결론이 나오는 데 10년 넘게 걸렸다는 시각도 있다. 당초 헌재 안팎에서는 이번 사건에서 ‘한정위헌 결정’이 나올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한정위헌은 법 조항 자체가 위헌은 아니지만 법원의 법 해석과 적용에 위헌 소지가 있을 경우 내려지는 결정이다. 대법원은 한정위헌 결정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법원행정처가 2015~2016년 이 사건과 관련한 헌재의 내부정보를 수집한 사실이 ‘사법농단 사건’ 때 일부 드러나기도 했다. 대법원은 이 사건과 관련해 헌재 내부에 한정위헌 의견이 다수라는 보고를 받고 대책을 수립한 것으로 파악됐다.
헌재 판단과 관련해 노동계는 “노동자 권리를 무력화하는 판결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날 민주노총은 기자와 통화하면서 “우리나라는 엄연히 헌법에 쟁의권이 명시돼 있는데 업무방해죄로 인정해버리면 결국 노동권을 무력화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노동자 권리를 무력화하는 사용자에 날개를 달아준 꼴”이라고 비판했다.
공공운수노조도 “매우 실망스러운 판결로, 합법 파업에 대해 업무방해죄를 적용해 형사처벌하면서 노조 탄압의 수단으로 사용돼왔다”고 했다.
이어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합법 파업을 업무방해죄로 형사처벌하는 곳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것이라면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효상·유선희 기자 h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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