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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자동차 회사에서 만든 커피 그라인더로 원두 갈아볼까?

한겨레 입력 2022. 05. 27. 19:26 수정 2022. 05. 27.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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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 자동차]자동차 제조사들의 신박한 '외도'
가격도 페라리급 '콕핏' 의자부터
혼다가 진심으로 만든 잔디깎이까지
르노의 옐로우 티포트. 르노 제공

자동차 제조사들은 자동차를 만든다. 당연한 이야기다. 그렇다고 자동차‘만’ 만드는 건 아니다. 대표적인 예가 자전거다. 여러 자전거 브랜드와 협업해 만들거나 혹은 직접 제작에 나서기도 한다. 페라리, 람보르기니 같은 슈퍼카 브랜드를 비롯해 베엠베(BMW), 메르세데스 벤츠, 아우디, 여기에 현대차, 폴크스바겐 등 거의 모든 자동차 브랜드가 자전거를 내놓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전거는 자동차와 같이 ‘이동수단’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질 뿐 아니라 속도를 찬양하고 숭배하며, 더 가볍고 빠른 탈것을 추종한다는 정서를 공유하고 있다. 그래서 가볍고 빠른 자전거는 자동차 회사들의 기술을 보여주는 좋은 오브제인 셈이다.

하지만 20세기 초부터 시대는 변했다. 자동차가 단순한 이동수단에 머무르지 않고 생활과 문화의 한 축으로 다양한 역할을 담당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면서 자동차 브랜드는 이동수단만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한계를 느꼈고 국한된 틀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 결과물이 그동안 자동차 회사에서 선보이지 않았던 다양하고 신박한 제품이다. 신박하다고 해서 만우절에 내놓을 법한 이벤트성이 짙고 장난스러운 제품이 아니다. 실제로 고객에게 선보이고 현재 판매도 이어지고 있다. 과연 어떤 재미있는 제품들이 있을까?

푸조의 소금·후추 그라인더. 푸조 제공

경주차 닮은 샛노란 주전자

자동차 브랜드가 특별한 제품을 만든다는 건 무언가를 기념하거나 축하하기 위해서다. 2017년 르노는 포뮬러원(F1) 출전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샛노란 옷을 입은 주전자를 만들었다. 그런데 왜 주전자일까? 1977년 실버스톤 그랑프리에 처음 출전한 르노의 ‘RS07’은 포뮬러원 경주차 가운데 처음으로 터보 엔진을 얹었는데 엔진이 완벽하지 않아 종종 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달렸다. 당시 르노 F1 팀을 총괄하던 켄 티럴은 르노의 노란 경주차가 연기를 내뿜는 모습을 보고 ‘옐로 티포트’(Yellow Teapot, 노란 주전자)라는 별명을 붙였다. 그 뒤 옐로 티포트는 르노 경주차의 애칭이 됐다. 주전자 모양이 포뮬러원 경주차와 닮았다고 주장하는 르노 관계자의 말에는 고개를 조금 갸웃하게 되지만 노란색에 아랫부분을 검은색으로 두른 건 르노의 경주차를 그대로 가져왔다. 꽤나 위트 넘치는 제품이다.

자동차 기술을 본떠 제품으로 출시한 경우도 있다. 페라리는 ‘콕핏’(운전석)이라는 이름의 의자를 선보였다. 페라리 디자인 센터에서 디자인하고 이탈리아 가구 브랜드인 폴트로나 프라우가 만든 의자다. 폴트로나 프라우는 1980년대부터 페라리 실내에 가죽을 씌운 회사다. 페라리 시트를 꼭 닮은 콕핏은 자동차에서 쓰이는 알루텍스와 탄소섬유로 프레임을 만들고 거기에 폴트로나 프라우의 가죽을 씌워 완성했다. 페라리 콕핏은 두가지 버전으로 나오는데 머리받침이 있는 프레지던트, 등받이만 있는 이그제큐티브다. 프레지던트가 1만유로(약 1300만원), 이그제큐티브가 7500유로(약 1000만원)다. 가격 또한 페라리급이다.

베엠베 역시 페라리와 비슷하다. 2013년부터 미국 올림픽 봅슬레이 팀과 손잡고 봅슬레이를 개발했다. 그리고 2014 소치 겨울올림픽에서 베엠베 봅슬레이를 탄 미국 여자 대표팀은 2인승에서 각각 은메달과 동메달을 거머쥐었다. 2018 평창 겨울올림픽에서는 독일 봅슬레이 대표팀이 베엠베 봅슬레이를 탔다. 이들의 성적은 4인승에서 금메달과 동메달, 2인승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베엠베가 봅슬레이에 관심을 보이는 건 경량 소재와 공기역학 기술을 연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가지는 모두 자동차에서 중요한 기술이다. 베엠베뿐 아니라 닛산과 현대자동차 고성능 브랜드인 현대엔(N)에서도 봅슬레이를 만든 적이 있다.

베엠베의 봅슬레이. 베엠베 제공

세상의 자동차 회사 중 처음부터 자동차를 만든 회사는 많지 않다. 푸조도 그 가운데 하나다. 푸조는 원래 제분기를 만들던 회사다. 제분기 회사가 제강 공장으로 바뀌면서 푸조는 커피·소금·후추 등을 가는 그라인더를 생산 품목에 추가했다. 재봉틀과 믹서기도 이들의 주력 상품이었다. 이후 푸조가 자동차 사업에 집중하면서 재봉틀 같은 건 더 이상 만들지 않는다. 하지만 그라인더는 여전히 제작·판매 중이다. 프랑스 파리의 유명 레스토랑 테이블에서 푸조의 소금·후추 그라인더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혼다도 1979년부터 잔디깎이를 만들어왔다. 지금은 손으로 밀면서 잔디를 깎는 제품부터 로봇청소기처럼 스스로 잔디를 깎는 제품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고카트처럼 운전하면서 잔디를 깎는 ‘민 모어 브이 투’(Mean Mower V2)가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그 이유는 잔디깎이의 속도 때문이다. ‘민 모어 브이 투’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잔디깎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기 위해 혼다가 야심차게 만든 잔디깎이다. 혼다의 고성능 모터사이클 CBR1000RR 파이어블레이드 SP1에 들어간 4기통 999㏄ 엔진을 얹어 최고속도가 240㎞/h를 넘는다. 최고출력은 190마력에 이르며, 정지 상태에서 97㎞/h까지 가속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3초다. 혼다는 단순히 빠르기만 한 잔디깎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영국에서 열리는 자동차 축제인 굿우드 페스티벌 오브 스피드가 열린 굿우드 하우스의 정원을 손질하기도 했다.

페라리의 콕핏 의자. 페라리 제공

자동차보다 많이 팔린 소시지

마지막으로 소개할 것은 ‘뜬금포’ 제품이다. 2016년 2월 미국 경제 전문지 <포천>이 흥미로운 기사 하나를 발표했다. 폴크스바겐의 소시지가 자동차보다 많이 팔렸다는 기사였다. 많은 사람이 의아해했을 것이다. 사실 폴크스바겐이 소시지를 만든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도 많기 때문이다. 독일 볼프스부르크에 있는 폴크스바겐 공장에선 폴크스바겐 모델의 부품과 자동차는 물론 폴크스바겐 로고를 박고 부품 번호까지 붙인 소시지를 판매한다. 이 자동차 브랜드와 소시지의 연관성을 굳이 따지자면, 독일이라는 국가 정도? <포천>에 따르면 2015년 폴크스바겐의 글로벌 자동차 판매 대수는 2014년에 비해 5%포인트 떨어진 5800만대였는데, 소시지 판매량은 14%포인트가 올라 7200만개를 넘어섰다. 단순 숫자만 비교하면 소시지가 자동차보다 더 많이 팔린 거다. 맛이 궁금하다고? 소시지의 고장 독일답게 짭짤하고 감칠맛이 그만인데다 껍질이 터지면서 뿜어져 나오는 육즙의 느낌이 좋다.

김선관 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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