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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에 먹힌 정치' 한탄하며..폴리스를 이상적 정치공동체로 신화화[윤비의 칼과 펜]

윤비 성균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입력 2022. 05. 27. 21:43 수정 2022. 05. 30.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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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 등의 저서로 후세 정치이론가들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미쳤다. 뮌헨시립미술관 소장
현대 정치이론에 큰 영향 준 아렌트
그의 저서 ‘인간의 조건’ 속 정치란
생존·물질적 욕구가 아니라고 정의
아렌트는 고대 폴리스의 정치를
‘빵의 문제’와 분리된 것으로 묘사
이런 구분이 현실에서 흐려지며
정치의 퇴화를 가져왔다고 여겨

우리는 자주 정치에 실망한다. 힘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모두가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자신들의 크고 작은 이익을 관철해보려고 애쓰는 복마전이 정치라는 느낌은 훈련받은 정치학자도 피해가기 어렵다. 현재가 초라할수록 ‘왕년’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현실의 정치가 초라해 보일수록 사람들은 정치가 위대했던 과거를 떠올린다. 공동체가 위엄이 있던 시대, 개인들이 사명감에 인도되던 시대, 모든 정치공동체는 그런 과거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다. 그런 기억의 크고 작은 부분은 만들어진 것이다. 그래서 신화라 부르기도 한다.

이런 신화를 비판하는 것은 과거의 진실에 주로 관심을 갖는 역사학자의 일거리만은 아니다. 신화는 과거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그것이 가리키는 곳은 미래이다. 16세기 초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로마를 이상적인 정치공동체로 그려내었을 때 그가 의도했던 것은 로마의 정치제도와 군사제도를 자신의 시대에 되살리는 것이었다. 이상적 정치공동체에 대한 신화 안에는 흔히 이처럼 정치적 주장이 담겨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사고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이런 신화를 비판하고 넘어서는 것은 어떤 모습의 정치공동체를 어떻게 가꾸어갈 것인가를 생각하는 모두에게 중요하다.

오늘 우리는 서구의 정치적 상상력을 오랫동안 지배해온 한 이상적 정치공동체의 신화, 그리고 그런 신화를 아름답게 붓질하여 우리 시대로 넘겨준 한 인물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고대 폴리스와 한나 아렌트가 오늘 이야기의 주제이다.

■아렌트

그리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아렌트는 고대 폴리스의 정치를 매력적으로 그려냈다.
고대 그리스의 현실 정치에서는
오히려 경제 문제가 생존과 직결
당시 일부 엘리트층의 정치관이
아렌트의 허구적 폴리스관에 영향

아렌트는 워낙 유명해서 어떻게 이야기를 시작해도 클리셰로 들린다. 19세기 이후 현대 정치이론에 큰 영향을 준 인물들은 많지만 존경과 사랑이 거의 컬트에 가까울 정도가 되어버린 인물은 마르크스와 베버를 제외하면 별로 없다. 그중 한 인물이 히틀러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유대인 철학자 아렌트이다. 아렌트의 작품은 여럿이지만 그중 정치이론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것은 1958년 작 <인간의 조건>(The Human Conditions)이다. 여기서 아렌트는 인간의 삶의 다면성에 주목했다. 인간은 생존하기 위해 밭을 갈고 사냥을 하는 등의 일을 해야 한다. 또한 인간은 도구를 제작하고 집을 짓고 다리를 놓는다.

아렌트는 전자를 노동(labor), 후자를 작업(work)으로 불렀다. 아렌트는 여기에 덧붙여 공동체에서 다른 사람과 뒤섞여 살아가기 위해서 하는 활동, 즉 행위(action)가 삶의 한 부분을 구성한다고 보았다.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고 남의 이야기를 들으며 갈등하거나 합의를 하는 등의 모든 활동이 이 행위의 범주에 속한다.

아렌트가 이렇게 삶의 세 영역을 구분하는 이유는 정치의 고유한 성격을 추출해내기 위해서이다. 정치는 행위의 영역에서 이루어진다. 정치는 생존을 확보하고 물질적 필요를 충족시키려는 욕구가 아니라 공동체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확보하고 다른 이들과 적절히 관계를 맺으며 의견을 모으고 행동해야 할 필요에서 비롯된다.

아렌트는 우리가 사는 시대가 정치의 이런 본래적 의미를 망각했다고 진단했다. 정치는 경제에 먹혀버렸다. 사람들은 정치를 경제적 생존과 번영이라는 과제를 중심으로 이해하고 평가한다. 아렌트가 정치 본연의 의미와 모습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한 이유이다.

사실 아렌트의 주장에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 여럿 있다. 삶의 필요와 유리된 정치공동체는 상상하기 어렵다. 공동체 안의 성원들 간에 먹고사는 문제가 중요한 토론 주제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이런 주제를 모두 제외하고 아렌트가 도대체 무엇을 정치의 장에서 논의해야 한다고 여겼는지는 심지어 아렌트를 ‘애정’하는 사람들 가운데에서도 여전히 불분명하다. 경제적 효율성을 빌미로 “정치는 입 다물고 시장이 잘 돌아가도록 꼭 필요한 뒤치닥거리만 하면 돼!”라고 말하는 것도 문제지만 “정치에서 경제는 빠져”라고 말하는 것도 대다수의 사람에게는 현실성이 없다. 경제가 국가적, 국제적 규모로 돌아가는 시대에 정치가 이 문제로부터 물러서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 사람의 부가 종종 다른 사람의 빈곤을 낳고, 그렇게 커간 불평등이 결국 권력의 불평등으로 이어져 민주주의를 아래로부터 갉아먹는 시대에 경제적 문제를 방기한다면 결국 공동체 자체가 위태로워질 수도 있다.

그런데 <인간의 조건> 안에는 아렌트의 주장을 반박하기 어렵게 만드는 ‘장치’가 있다. 그것은 고대 그리스 폴리스 이야기이다. 아렌트에 의하면 폴리스를 창조한 시민들은 정치를 다른 인간의 활동과 아예 공간적으로 구분해놓았다. 그리스인들은 폴리스를 정치의 공간으로 이해했다. 그곳은 자율적인 시민들이 서로 만나서 교류하는 장소였다. 그 안에 한몫 끼려면 위대한 행동과 멋진 말을 통해 타인들 가운데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했다. 그리스인들에게 빵의 문제는 정치적 공간에서 논할 어젠다가 아니었다. 그 문제를 위해 할당된 공간은 집, 그리스어로는 오이코스(oikos)였다. 아렌트는 바로 이러한 구분이 현실에서, 그리고 사고 안에서 흐려지고 마침내 그 경계가 무너져 정치와 경제가 구분할 수 없도록 뒤섞여 버린 것이 정치의 퇴화와 위기를 가져왔다고 여긴다.

고대 폴리스에 대한 아렌트의 이야기는 그 안에 동원된 수사, 문학과 철학을 아우르는 지식만큼이나 위력적이고 매력적으로 들린다. 그런 과거가 존재했다는 생각만으로도 이론의 현실성에 대한 의문은 상당 부분 날아가 버린다. 그러나 고대 폴리스는 아렌트가 말하는 그런 모습으로 정말 존재했을까?

■폴리스

폴리스는 기원전 8세기쯤부터 시작해서 그리스와 에게해 주변, 소아시아 서부, 흑해와 이탈리아 남부로 퍼진 그리스인들의 공동체를 일컫는다. 폴리스는 상대적으로 미발달, 미분화된 사회였다. 경제는 여전히 자급자족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시민들이 먹고사는 문제에 대부분 시간을 쏟아부어야 했다는 뜻이다. 더 많이 갖기 위해 혹은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 시민들은 내부의 다른 시민들, 혹은 다른 폴리스의 시민들과 갈등했다. 패배는 공동체에서의 권리 박탈, 추방, 재산 몰수, 심지어 노예로 팔리는 것을 의미했다. 이런 사회에서 어디까지가 정치고 어디까지가 경제인지 나누는 것은 별 의미가 없었다. 실제로 폴리스에서 열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심지어 피를 흘리게 했던 주요 이슈들은 세금이나 토지 혹은 기타 경제적 이익의 분배, 곡물의 수입 여부나 가격을 정하는 것 따위의 너무나 ‘인간적’이면서 그야말로 먹고사는 문제와 관련된 것이었다. 아렌트에게 큰 영향을 끼친 아리스토텔레스가 폴리스를 단지 잘 먹고 잘 살아남기 위한 수단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고 말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조차 경제적 문제가 폴리스의 관심사여서는 안 된다고 말한 적은 없다. 아렌트가 그리는 폴리스는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고대의 정치엘리트주의

아렌트가 그려내는 폴리스와 정치의 모습이 완전히 근거없는 소설은 아니다. 정치가 생과 사쯤은 아득히 초월해버린 위대한 영웅들의 드라마라는 주장은 폴리스를 지배했던 엘리트층이 사랑했던 스토리였다. 아렌트가 정치적 행위의 핵심이라고 이야기하는 위대한 행동과 말은 호메로스가 <일리아스>에서 영웅과 지도자의 자질로 치켜세우는 것이다. <일리아스>의 영웅들은 이익이 아닌 영예를 위해 살아간다. 이들이 전리품을 두고 갈등하는 것은 어떤 실용적 이익 때문이 아니라 이를 자신들의 용맹과 훌륭함에 대한 정당한 보상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기원전 6세기 이래 일반 시민의 힘이 커지고 민주주의가 성장하는 가운데에서도 이런 정치관은 살아남았다. 부와 훌륭한 가문, 교육이라는 배경을 갖고 있던 엘리트층들은 무지하고 욕망에 쉽사리 휘둘리는 일반 시민 대신 자신들처럼 뛰어나고 멋진 자들이 정치를 맡아야 한다고 믿었다.

이런 생각은 기원전 4세기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철학자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치를 먹고사는 문제와 절대적으로 분리시키지 않았음은 이미 이야기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강조하고자 했던 것은 개인의 이익을 떠나 먹고사는 문제를 포함한 여러 사안을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능력이었다. 어쨌든 그는 가난한 사람들보다는 그래도 꽤 사는 중간계층이 이 점에서는 정치를 떠맡기에 적합하다고 여겼다. 아렌트의 폴리스관은 이런 크고 작은 엘리트주의적 정치관을 연결하여 짜맞춘 것이다.

■독일의 정치엘리트주의

19세기 후반 이후 독일 지식계층도
정치적 이유로 폴리스를 신화화
이들의 보수주의·자유주의 담론
아렌트의 사상과도 맞닿아 있어

주목할 사실은 아렌트 전에도 이런 엘리트주의적 폴리스관과 정치관이 독일 보수주의와 우파 자유주의에서 널리 퍼져있었다는 점이다. 19세기 후반 독일의 지식계층은 급속한 산업화에 힘입어 빠르게 성장하는 자본가 계급과 사회정치적 영향력을 두고 경쟁하는 위치에 있었다. 이들은 정치를 보편적 가치와 이상을 실현하는 일종의 정신적·문화적 행위로 이해했으며, 이윤의 논리로 모든 것을 바라보는 자본가 계급의 부상이 정치의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노동운동이 활성화되고 사회주의가 정치세력으로 부상하면서 정치가 본연의 의미를 상실하고 사적 이해를 다투는 장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위기감은 심화되었다.

이러한 위기의식을 배경으로, 정치의 가면을 쓴 상인의 모럴로부터 진정한 의미의 정치를 지켜내야 한다는 주장이 등장하여 힘을 얻었다. 이런 주장은 19세기 말부터 독일이 영국과 벌인 헤게모니 싸움에서 정치 프로파간다의 단골 소재가 되면서 노골적으로 반자유주의적 성향을 띠기도 했다. 극우 문필가부터 베르너 좀바르트나 헤르만 온켄 같은 꽤 이름 있는 지식인들까지 나서 영국의 자유주의 정치문화와 체제를 치졸한 장사꾼의 이해와 논리에 지배되는 야바위 비슷한 것으로 깎아내렸다. 이들에게 독일의 정치문화와 체제는 탁월함과 위대함을 추구하는 참된 정치의 구현이었으며 이를 지켜내는 것은 유럽정신사 차원의 사명이었다.

이와 같은 엘리트주의 정치관 속에서 고대의 엘리트주의적인 폴리스 관념이 이상적인 정치공동체의 모델로 부활하였다. 베를린은 고대 그리스를 주제로 한 조각, 예술작품, 건축물로 치장되고 고대 그리스에 바쳐진 거대한 박물관이 세워졌다. 이는 단지 18세기 후반부터 독일에서 그리스에 대한 관심이 높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보수주의와 자유주의적 지식인들에게 고대 폴리스는 바로 지금 독일에도 구현되어야 할, 그리고 구현되고 있는 이상적 정치체로 여겨졌다. 19세기 말부터 시작하여 독일 지식사회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던 니체의 엘리트주의적이고 귀족주의적인 고대 관념은 엘리트주의적 정치관을 추종하던 지식계층에게 열렬히 환영받았다.

■아렌트의 폴리스를 넘어서

고대 정치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이데올로기에 의한 신화화 넘어야
다시 복원된 고대 폴리스의 모습은
아렌트를 넘어선 상상력 자극할 것

아렌트는 20세기 정치사상사에서 지울 수 없는 이름이다. 아렌트의 고대관과 폴리스관은 그녀의 정치사상의 중요한 부분이다. 고대 폴리스에서 칼과 펜이 얽히며 그려낸 복잡한 모습을 따라가려는 시도가 아렌트를 피해가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아렌트 사상의 많은 부분은 여전히 충분히 규명되지 못하고 있다.

그녀의 사상이 독일의 보수주의 및 우파 자유주의와 맺고 있는 관계도 그중 하나이다. 그러나 아렌트가 바라보는 폴리스와 그 안에서 행해진 정치의 모습이 이러한 사상 조류에 닿아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분명한 사실은 고대 정치와 정치사상의 모습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데올로기에 의해 침윤된 고대관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다시 복원된 고대 정치와 폴리스의 모습은 아렌트를 넘어선 새로운 상상력을 자극할 것이다.

▶윤비 성균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정치이론을 역사 및 문화와 관련지어 연구한다. 베를린 훔볼트대 정치학과 및 역사학과, 서울대 외교학과에서 서양정치사상을 강의하였다. 가르친다는 일을 영광으로 여기며 산다. 2021년 마키아벨리를 주제로 독일에서 단행본을 출간하였다. 2018~2020년 한겨레 신문에 ‘윤비의 이미지에 숨은 정치’를 연재하였고, EBS <지식의 기쁨> <세바시> 등에서 강연하였다.

윤비 성균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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