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관계 개선이 日의 선물인가

성호철 도쿄 특파원 2022. 5. 28.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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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정진석 국회 부의장 등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일본에 파견한 한일 정책협의대표단이 일본 총리관저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를 만나고 있다. 대표단의 단장인 정 부의장이 기시다 총리에게 윤 당선인의 친서를 전달하는 모습./한일 정책협의대표단 제공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26일 ‘한국 윤석열 정권이 일본과 관계 개선을 위해 시동 걸었다’며 ‘최대 관건은 징용공 문제과 관련, 윤 정부가 일본이 납득할 해결책을 제시할지에 달렸다’고 보도했다. 같은 날 산케이신문은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미일 정상회담 때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징용공과 위안부 문제에 대해 그간 한국이 양국 합의를 무시한 경위를 설명했다’고 보도했다.

일본은 혼네(本音·속마음)와 다테마에(建前·겉마음)가 다른 나라다. 한 달 전 “일·한 관계 개선을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던 기시다 일본 총리의 공식 언급을 언론 보도를 참조해 일본식 화법으로 해석하면 “관계 개선은 꼭 필요하지만(다테마에) 한일 악화의 책임은 한국이니 한국이 징용공과 위안부 문제를 풀 해법 들고 오라(혼네)”일 것이다.

기시다 총리 입장에선 그럴 만도 하다. 그는 2015년 당시 박근혜 정부와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합의한 실무 장관(외무상)이었다. 차기 정권인 문재인 전 대통령이 국가 간 합의를 일방적으로 무시했고 반일(反日) 정서를 정치적으로 악용했다는 그들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 징용공 배상 문제도 그들 나름의 논리가 있다. 1965년 한일 협정에서 해결했는데 갑자기 한국 재판부가 일본 기업에 배상 판결 내렸다는 것이다. 조약 당사국인 한국 정부가 나서 달란 요청이 비정상은 아니다.

하지만 일주일 전 도쿄서 만난 시민운동가 아리미쓰씨는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는 “결국 일본이 가해자고 한국이 피해자 아닌가”라며 “사과하고 용서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꼬였고 그 원인을 한국 정부가 제공했다한들 갑자기 한국이 가해자가 되는 건가”라고 반문했다. 재판·조약·구상권·합의·반일 같은 용어를 걷어내고 보면, 일본이 한국에 선(先) 해법을 요구하는 상황이 문제란 지적이다.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쏘고 중국이 군사력 과시에 급급한 지금, 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한 한·일이 관계를 정상화해야 하는 건 옳은 일이다. 다만 관계 개선은 양국 모두에게 이익이지, 일본이 한국에 주는 선물이 될 순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달 취임 당일, 축하 사절로 온 일본 하야시 외무장관을 중국의 왕치산 국가부주석보다 먼저 만났다. 일본을 중국보다 예우한 것이다. 한국 외교부는 ‘다음 달 도쿄서 외교장관 회담을 열자’ ‘양국 정상 만남을 빨리 갖자’고 하는데 일본은 팔짱만 낀 형국이다.

한 달 전 정진석 국회부의장은 기시다 총리를 만나 ‘고장난명(孤掌難鳴)’이란 말을 꺼냈다. 손바닥 하나만으론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바이든 대통령에게 한국 전 정권의 잘못을 고할 정성을 들이기에 앞서 한국과 직접 만나도 되지 않겠나. 그렇지 않다면 자칫 7월 참의원 선거 때 반한(反韓)감정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려 한다는 의심을 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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