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삭한 껍질과 부드러운 속살.. 토핑보다 빵이 맛있는 진짜 피자

정동현 음식칼럼니스트 입력 2022. 5. 28. 03:06 수정 2022. 5. 29. 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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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정동현의 Pick]
나폴리식 피자
서울 행당동 ‘핏제리아 달 포르노’의 모르타델라 피스타치오 피자(앞)와 카르보나라 파스타./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피자는 빵의 일종이다. 화덕에서 빠르게 굽는 인도의 난, 중동의 피타(pita)와 맥을 같이한다. 이탈리아 나폴리로 넘어간 이 납작한 빵은 애초에 돼지비계, 마늘, 소금 정도를 얹어 먹다가 신대륙의 토마토를 받아들였고 아시아 원산 물소젖으로 만든 모차렐라 치즈, 인도 원산의 허브 바질을 올렸다. 피자란 원래 사정이 허락하는 대로, 널따란 반죽 위에 재료를 올려 여럿이 나눠 먹는 가난하지만 넉넉한 음식이었다. 어떤 격식이 있는 음식이 아니었기에 오히려 더 큰 확장성을 가지고 있었다.

한국의 피자 시장도 다른 나라와 별반 다르지 않다. 냉동 피자, 미국식 프랜차이즈 피자, 그리고 소수의 이른바 정통 나폴리 피자로 나뉘어 각자의 몫을 가져간다. 그중 나폴리식 피자에 초점을 맞추자면 먼저 경기도 일산 ‘포폴로피자’를 찾아가야 한다. 정발산역 근처에 있는 이 집은 멀리서도 줄을 선 사람들 덕분에 쉽게 찾을 수 있다. 참나무 장작을 가득 쌓아놓은 모습에서 포폴로피자가 지향하는 바도 쉽게 확인 가능하다.

피자를 굽는 시간은 2분 안팎, 400도 가까이 열이 올라간 화덕 안에서 피자는 표범 무늬 같은 그을린 자국을 남기며 부풀어 올랐다. 빠르게 굽기 때문에 피자 바깥은 큰 기포를 만들며 팽창했지만 안쪽은 물기를 머금어 촉촉했다. 생(生)모차렐라 치즈를 올린 마르게리타 피자는 유지방의 고소한 맛이 토마토의 신맛, 단맛과 함께 맛의 고저(高低)를 이뤘다. 어떤 피자를 시키든 나폴리에서처럼 빠르고 정확하게 손님 앞에 도착했다. 주방에 가득 찬 직원들의 합은 지중해의 뜨거운 태양 없이도 맛에 힘을 실었다.

정통 나폴리 피자를 찾는 기행은 서울 합정동 ‘빠넬로’를 꼭 거치게 된다. 이탈리아 현지에서 직접 들여오는 각종 재료 덕에 피자 값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심지어 고가의 트러플(송로버섯)을 올린 피자는 한우 스테이크에 가까운 숫자가 찍힌다. 그래서일까. 직원은 스위스제 시계를 조립하는 장인처럼 신중하게 피자를 화덕에서 꺼냈다. 그 피자를 마주했을 때 서정시 속 애절한 순정과 그 순정으로 이룩한 순수가 느껴졌다.

대표 격인 마르게리타 피자는 동그란 형태 안에 바질이 머금은 감귤류의 향긋함, 모차렐라 치즈의 농축된 우유 맛, 밀가루가 익어가며 만든 가을철 땅에서 불어오는 그윽한 풍미가 하나로 모아졌다. 마치 베토벤 후기 사중주처럼 형식은 엄격했지만 그 속에서 완전히 자유로웠던 음표들처럼, 재료의 향과 맛은 피자라는 형태 안에서 봄날을 닮은 생동을 제약 없이 풀었다.

왕십리로 가면 ‘핏제리아 달 포르노’가 있다. 다른 집과 마찬가지로 나폴리식 화덕에 참나무 장작을 쓰는 이 집은 나폴리식을 표방하지만 정통과 원조라는 이름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보다는 현지 나폴리에서도 유행하는 카노토(canotto), 즉 소형 고무보트처럼 빵 가장자리가 크게 부풀어 오른 스타일을 따른다. 빵의 수분율을 높여 팽창이 크게 되고 그만큼 식감이 부드러운 이 형태는 그만큼 발효가 더 까다로워진다.

피자 이전에 파스타를 먼저 말하자면 로마에서 먹던 모습 그대로 페코리노 치즈와 달걀노른자만으로 맛을 낸 ‘카르보나라’가 황금색으로 빛을 냈다. 시간을 지켜 삶아낸 파스타의 면발은 단단한 물성을 잃지 않았고 치즈와 함께 유화(乳化)된 소스는 뱀이 몸을 감듯 파스타에 단단히 달라붙어 확연한 일체감을 이뤘다.

피스타치오, 이탈리아 소시지인 모르타델라, 부팔라치즈, 바질을 올린 ‘모르타델라 피스타치오’ 피자는 햄이 지닌 동물성 감칠맛, 치즈의 고소함, 바질의 산미로 맛의 균형을 이뤘다. 그 조화보다 놀라웠던 것은 피자의 크러스트, 즉 도우(dough) 그 자체였다. 지금껏 전 세계로 피자를 실어나른 것은 화려한 토핑이 아니라 그 밑을 받쳤던 피자 도우였다.

시인처럼 조심스럽게 단어를 골라가며 자신이 만든 음식을 설명하던 주인장은 눈에 튀는 토핑보다 피자 도우 그 자체를 닮아 있었다. 앞으로 서서 웅변하기보다 뒤로 돌아서서 반죽을 빚고, 말로 자신을 표현하기보다 허리를 굽혀 재료를 살피는 조용한 열정을 지녔다. 오래 전 피자 화덕 앞에서 섰던 이름 없는 이들도 그랬다. 피자의 맛을 냈던 것은 풍부한 재료가 아니라 땀으로 이룩한 잔잔한 염도였다. 소금의 짭짤하고 단맛, 피자 도우의 담백한 맛의 여운이 한국 왕십리 뒷골목에 있었다.

#포폴로피자: 비스마르크 1만6500원, 마르게리타 1만6000원. (031)932-9337

#빠넬로: 마르게리타 2만4000원, 블랙 트러플 피자 6만8000원. (02)322-0920

#핏제리아 달 포르노: 모르타델라 피스타치오 2만원, 카르보나라 2만3000원. (02)2298-27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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