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불붙은 '웰다잉' 논의..민주당 안규백 의원, 국내 최초로 '조력 존엄사' 합법화 법안 발의

김태주 기자 2022. 5. 2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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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기 암 환자로 신체적⋅정신적 고통 속에서 살던 80대 A씨. 활동적인 삶을 살다가 맞은 암 투병 생활 고통은 도저히 견디기 어려웠다.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하고 싶던 그는 의사에게 부탁해 마지막을 직접 선택하기로 했다. 두 달 뒤 그는 가족들에 둘러싸인 채 평소 즐겨 듣던 모차르트 교향곡을 들으며 정맥 주사기에 연결된 밸브를 직접 돌렸다. 약물이 몸속으로 들어오며 그의 눈은 서서히 감겼다.

이처럼 의식 있는 환자에게 의사가 약물 등을 제공해 환자 스스로 삶을 종결할 수 있도록 돕는 ‘의사 조력 자살’은 국내에선 아직 불법이다. 해외 일부에선 시행하는 나라가 있다. 2018년 5월, 호주 생태학자 데이비드 구달 박사가 스위스에서 의사 조력 자살로 죽음을 선택했고, 지난 3월 프랑스 배우 알랭 들롱 역시 같은 길을 택할 예정이다.

국내에서도 이를 합법화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 개정안’(조력존엄사법)을 이르면 다음 주 대표 발의할 예정이다. 윤영호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조사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10명 중 7명이 안락사 혹은 의사 조력 자살 법제화에 찬성하고 있었다. ‘품위 있는 죽음’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본격화할 조짐이다.

◇”‘삶에 대한 환자의 자기 결정권’ 보장”

‘조력 존엄사’란 환자 본인이 원하면 담당 의사 도움을 받아 삶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해외에선 ‘의사 조력 자살(Physician-Assisted Suicide)’로 부른다. 의식 있는 환자 본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를 한다는 점에서 의사가 약을 환자에게 직접 투약하는 안락사와 차이가 있다. 국내에선 안락사와 의사 조력 자살 모두 불법이다. 2018년부터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착용, 혈액 투석 등 무의미한 연명 의료를 중단하는 것만 합법화됐다.

네덜란드, 벨기에, 콜롬비아 등에선 조력 자살과 안락사 모두 인정한다. 스위스와 미국 일부 지역에선 조력 자살만 허용한다. 로마 교황청은 안락사와 조력 자살 모두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며 반대한다.

이번에 발의하는 조력존엄사법 핵심은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을 느끼고 있는 말기 환자에게 ‘자신의 삶을 스스로 끝내며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는 데 있다. 대신 조력 존엄사 대상이 되기 위해 복지부 장관 소속 ‘조력존엄사 심사위원회’에 조력 존엄사 희망 의사와 자신 상태를 증빙할 수 있는 서류 등을 내야 한다. 심사위원회를 통해 결정된 뒤 1개월이 지난 시점엔 본인이 ‘조력 존엄사를 희망한다’는 사실을 의사 2명 이상에게 표현해야 한다. 가족들 동의로도 가능한 연명 치료 중단과는 달리, 조력 존엄사는 환자 본인 의사 표명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는 의미다.

안규백 의원은 “죽음은 한 개인의 단순한 끝이 아닌 전체 삶의 최종 완성판”이라며 “조력 존엄사는 말기 환자에게 품위 있는 죽음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여 ‘삶에 대한 환자의 자기 결정권’을 보장한다”고 설명했다.

◇10명 중 7명 “안락사 법제화 찬성”

조력존엄사법은 ‘품위 있는 죽음’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배경에 두고 있다. 윤영호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가 작년 3~4월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76.3%가 안락사 또는 의사 조력 자살 법제화에 동의했다. 2016년 조사 땐 찬성 비율이 41.4%였다. 5년 새 2배로 껑충 늘어난 것이다. 응답자들은 ‘남은 삶의 무의미’ ‘존엄한 죽음에 대한 권리’ ‘고통의 경감’ 등을 이유로 들었다.

전문가들은 안락사와 조력 존엄사 입법화에 대한 논의가 단순 ‘찬반 논쟁’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최영숙 대한웰다잉협회장은 “의사 조력 자살 법제화는 본인 의사로 자기 삶을 종결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면서도 “모든 법은 오용·남용하는 사람이나, 이를 잘못 해석해 오히려 해가 되는 경우들도 다수 있기 때문에, 발생 가능한 모든 부작용을 검토한 뒤 엄격하고 세세한 안전장치를 걸어야 한다”고 했다. 윤영호 교수는 “진정한 생명 존중 의미로 안락사와 조력 존엄사에 대한 법제화가 논의되려면 독거 노인 공동 부양, 성년 후견인, 장기 기증, 유산 기부, 인생 노트 작성 등 서비스를 제공하는 ‘넓은 의미의 웰다잉(Well-Dying)’ 체계를 마련하는 과정이 선행되거나, 적어도 병행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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