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제로 코로나와 중국 '대탈출'

베이징=김남희 특파원 입력 2022. 5. 28. 16:40 수정 2022. 5. 28.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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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김남희 특파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모교인 베이징 칭화대에 재학 중인 한국인 유학생 A씨는 5월 초 한국으로 돌아갔다. 학기가 끝나려면 아직 한 달이 더 남았지만, 베이징이 봉쇄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귀국을 택했다. A씨는 “처음 봉쇄설이 돌았을 때만 해도 ‘아무리 그래도 수도인데 설마 봉쇄하겠어’라고 생각했는데, 상하이 봉쇄가 길어지고 베이징 초등학생 어린이들까지 시설에 격리되는 것을 보고는 귀국을 결심했다”고 했다.

베이징 ‘탈출’은 쉽지 않았다. 베이징에서 인천공항으로 바로 가는 직항편이 없어 경유를 해야 했다. 베이징 공항에서 저녁 비행기를 타고 저장성 항저우 공항에 도착해 밤새 ‘노숙’을 한 후, 다음 날 아침 인천행 비행기를 탔다. 스무 시간이 넘는 여정이었다. 귀국 며칠 후, 칭화대 캠퍼스는 봉쇄됐다.

베이징대 유학생 B씨의 귀국길은 더 험난했다. B씨는 5월 중순 베이징에서 푸젠성 샤먼을 경유해 인천으로 향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베이징 공항에서 건강 상태 확인 앱 젠캉바오의 색깔이 비정상을 뜻하는 빨간색으로 바뀌어 비행기를 타지 못했다. 베이징에 있는 주중 대한민국 대사관 영사부에 연락해 젠캉바오 상태를 정상(녹색)으로 되돌릴 방법을 문의했으나, “도움을 줄 방법이 없다”는 답만 들었다. 겨우 학교 기숙사로 돌아가 온갖 곳에 전화해 해결법을 찾기까지 이틀이 걸렸다. B씨는 항공권을 다시 구매해 베이징 공항 출발 후 홍콩을 경유해 30시간 만에 한국 땅을 밟았다.

중국이 ‘제로 코로나’ 정책을 고집하며 수시로 도시를 봉쇄하면서, 중국을 떠나는 외국인이 늘고 있다. 중국의 가혹한 방역 조치를 지켜본 이들은 한밤중에 갑자기 격리소로 끌려갈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이젠 신물난다고 말한다. 당장 내일의 계획도 세울 수 없는 불확실성도 일상을 짓누른다.

4월 1일 도시 전체가 봉쇄된 후, 상하이에선 한국인 유학생 약 2000명 중 수백 명이 귀국했다. 봉쇄 전부터 학교 기숙사 안에 갇혀 있던 학생들은 도시 전체가 봉쇄되고 기본 생필품조차 구할 수 없게 된 공포를 느꼈다고 한다. 베이징에 체류 중인 유학생 일부도 부분 봉쇄되는 지역이 날로 늘자, 중국 생활을 포기했다. 최근 베이징대·베이징사범대 캠퍼스에선 학생 수백 명이 집에 보내달라고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엄격한 통제 사회인 중국에서 대학생 집단 시위는 드문 일이다. 그만큼 캠퍼스 안에서 사실상 감금 생활을 해온 학생들의 분노가 컸다는 의미다.

중국에 진출한 외국 기업은 중국에서 일할 주재원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항공편 부족과 중국 입국 후 강제 격리, 중국 내 이동 제한과 봉쇄, 열악한 생활 환경 때문에 중국에 가겠다고 손드는 직원이 없다고 한다. 중국에서 가장 세련된 국제 도시로 불리던 상하이 전격 봉쇄와 그후 이어진 아비규환이 결정타였다. 상하이 봉쇄 중 집에서 홀로 숨진 채 발견된 40대 한국인 주재원의 비극은 충격을 줬다.

주중미국상공회의소는 이달 9일 “121개 회원 기업 중 ‘외국인 직원이 코로나 관련 정책 때문에 중국으로 이주하길 거부한다’고 답한 곳이 49%”라는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82%는 격리·봉쇄가 얼마나 오래 이어질지 가늠할 수 없는 불확실성을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고 한다. 콤 래퍼티 주중미국상공회의소장은 “올해 여름 (중국에서) 외국 인재 대탈출이 있을 걸로 예상한다”고 했다. 그는 “외국에 있는 직원 중 중국에 오겠다고 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며 “지난 2년간 (중국 정부에) 출장 제한 완화를 강력히 요청했으나, 중국 입국은 지금도 여전히 어렵다”고 했다.

현재 외국에서 중국으로 오는 국제선 항공편은 극소수다. 중국의 국제선 운항 편수는 코로나 이전인 2019년 수준의 2%에 불과하다. 한국과 중국을 오가는 국제선 직항 항공편(편도)은 주당 10편 남짓이다. 한국 출발, 베이징 도착 노선은 10월 말까지 아예 없다. 베이징 출발, 한국 도착 직항은 4월부터 매달 마지막 주 목요일 단 한편으로 줄었다. 베이징에 거주 중인 한국인 C씨는 “고3 아이가 6월에 입시를 보러 혼자 한국에 가야 하는데, 아직 비행편을 구하지 못해 걱정이 크다”고 했다.

어렵사리 중국에 입국해도 2주 이상 의무 격리도 외국인에겐 큰 부담이다. 베이징 입국자는 그동안 지정 격리 시설에서 총 21일간 집중 격리 후, 경우에 따라 거주지에서 7일간 추가 격리를 해야 했다. 그나마 5월 초 집중 격리 10일과 자가 격리 7일로 격리 기간이 줄었다.

격리에서 풀린 후에도 중국 국내 이동은 더 어렵다. 특히 중국 당국이 ‘수도 사수’에 사활을 걸면서, 다른 지역에서 베이징에 진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베이징 내 이동도 극도로 제한됐다. 4월 하순 베이징에서 오미크론 변이가 확산한 후, 베이징 전역 지하철역 중 100개 이상이 폐쇄됐고, 일부 구에서는 버스·지하철·택시 등 대중교통 운행이 완전 중단됐다. 다른 도시 출장은커녕 사무실 출근도 못한다.

생활 환경은 더 나빠졌다. 5월 1일부터 베이징 내 모든 식당의 실내 영업이 금지됐다. 대형 쇼핑몰·영화관·피트니스센터·관광지 등도 모두 문을 닫았다. 등교도 중단됐다. 베이징 시민은 봉쇄 아닌 봉쇄 속에 살아가고 있다.

올해는 한·중 수교 30주년을 맞는 해다. 양국 정부 고위급 대화에선 관계 증진을 위해 인적 교류를 확대하자는 내용이 빠지지 않는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16일 윤석열 정부의 첫 외교장관인 박진 장관과 화상 회담을 하면서 “새로운 30년을 위해 양국 국민, 특히 청년의 우호 증진을 이끌자”고 했다. 그러나 교류의 문이 더 닫혔다는 것을 중국 정부도 모르진 않을 것이다. 외교관도 파견을 기피하는 곳이 지금의 중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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