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행동 다른 윤 대통령식 '협치'란 무엇일까

성한용 2022. 5. 29.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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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한용의 정치 막전막후][한겨레S] 성한용의 정치 막전막후
여소야대 대통령이 사는 법
"처칠-애틀리 연립내각" 말만 거듭
협치 없이 법안·예산 등 통과 난망
전 정부, 여야정 상설협의체 전례
'태도협치' 안되면 '제도협치'라도
윤석열 대통령이 5월2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 국무위원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세종/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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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대한민국에는, 각자 지향하는 정치적 가치는 다르지만 공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기꺼이 손을 잡았던 처칠과 애틀리의 파트너십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합니다.”

지난 16일 윤석열 대통령의 첫번째 국회 시정연설을 들으며 저는 순간적으로 제 귀를 의심할 정도로 깜짝 놀랐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은 보수당 당수였던 윈스턴 처칠이 총리로 전쟁과 외교를 담당하고, 클레멘트 애틀리 노동당 당수는 부총리로 내치를 담당하는 전시 연립내각을 꾸렸습니다. 일종의 대연정이었습니다.

저는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 3월29일치 <한겨레>에 ‘윤석열-민주당 대연정을 기대한다’는 칼럼을 쓴 일이 있습니다. 압도적인 여소야대 상황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국정을 이끌어가기 위해 국회 다수 세력인 민주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이었습니다.

그래서였을 것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처칠-애틀리 발언을 저는 대연정 수용 의사로 해석했습니다. 곧 민주당에 연립정부 구성을 제안할 수도 있겠다고 기대했습니다. 연정의 목표를 정한 정책 합의서를 작성하고 장관직도 배분하게 될 것이라고 상상했습니다.

저의 이런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깨닫는 데 채 하루가 걸리지 않았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바로 다음날 민주당이 극구 반대하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 임명을 강행했습니다. 법무부와 검찰 요직에 이른바 ‘윤석열 사단’을 대거 포진시키는 인사를 밀어붙였습니다.

혼란스러웠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야당과의 관계를 앞으로 어떻게 하려는 것일까요? 윤석열 대통령이 생각하는 협치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협치’하겠다며 말-행동 달라

윤석열 대통령은 한덕수 국무총리 국회 임명동의안이 가결되던 지난 20일 아침 출근길에 기자들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한덕수 총리 후보자는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 경제수석을 하셨고 또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국무조정실장, 경제부총리, 총리를 하신 분입니다. 처음부터 협치를 염두에 두고 지명한 총리입니다. 잘될 것이라고 저는 기대하고 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이 기용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민주당이 동의해줄 것으로 보고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문재인 대통령은 한덕수 국무총리를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내내 한덕수 국무총리를 외면했던 이유는 뭘까요?

문재인 대통령이 2011년에 쓴 <문재인의 운명>에는 한덕수 국무총리가 두 군데 등장합니다. 2007년 10·4 남북 공동선언 국회 비준동의와, 미국산 쇠고기 수입 관련 대목입니다.

“10·4 공동선언은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에 해당했다. 그래서 나는 정상회담 합의에 대해 국회에서 비준동의를 받아두는 게 좋겠다고 강조했다. (중략) 그런데 한덕수 당시 국무총리가 끝내 안 했다. 그는 좀 더 구체적으로 후속 합의가 진행돼, 재정부담의 규모 같은 것이 정해지면 그때 가서 해도 늦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러다 실기하고 말았다. 결국 정권이 바뀌면서 정상 간의 소중한 합의가 내팽개쳐지고 말았다.”

“이명박 정부에서 있었던 쇠고기 파동은 이미 참여정부 말부터 개방파 관료들이 추진하려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 추진에 앞장섰던 한덕수 전 총리와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이명박 정부에서도 오랫동안 승승장구하고 있는 것이 우연한 일로 보이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덕수 국무총리 때문에 10·4 공동선언 국회 비준동의가 무산됐고 미국산 쇠고기 파동이 일어났다고 확실하게 기록해둔 것입니다. 그런데도 윤석열 대통령은 야당과의 협치를 생각해서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를 지명했다고 말했습니다. 기가 막히는 일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민주당과 문재인 대통령을 다른 정파로 본 것일까요?

그뿐만이 아닙니다. 아무리 봐도 윤석열 대통령은 야당과 협치할 생각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두가지 사례만 추가하겠습니다.

첫째, 검찰개혁 여야 합의안을 뒤집어엎은 일입니다. 저는 정치부 기자를 꽤 오래 했지만, 국회의장과 여야 원내대표가 의원총회 추인까지 받아서 서명하고 발표한 합의안을 대통령이나 대통령 당선자가 뒤집는 장면을 이번에 처음 봤습니다.

박병석 국회의장(가운데)과 박홍근 더불어민주당(왼쪽),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4월22일 국회에서 ‘검찰 수사권 폐지’ 법안 관련 국회의장 중재안에 합의한 뒤 합의문을 들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둘째, 김기현 전 원내대표를 유럽연합 특사단장으로 임명한 일입니다. 김기현 의원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 자리를 점거한 것 때문에 국회 본회의에서 ‘30일 국회 출석 정지’ 징계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징계 이틀 뒤 윤석열 대통령은 그를 유럽연합 특사단장으로 내정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국회와 민주당에 대한 반박으로 풀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왜 이러는 것일까요? 왜 사사건건 야당과 싸우려 드는 것일까요? 저는 두가지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정치를 모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정치는 대화와 타협이 본질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평생 검사만 한 사람입니다. 범죄자와 싸워서 이기려 드는 것이 검사의 속성입니다. 당연히 대화와 타협에 익숙하지 않을 것입니다.

둘째, 선거용일 수 있습니다. 야당과 타협하는 것보다 대립하는 것이 6·1 지방선거에 유리하다고 계산하고 의도적으로 그러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히려 희망이 좀 있습니다. 선거가 끝나면 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선거용이 아니라면 큰일입니다. 자,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6·1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이 큰 승리를 거두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검찰의 대대적인 사정이라도 시작된다면 어떤 장면이 펼쳐질까요?

민주당 의원들이 무더기 탈당이라도 해서 국민의힘으로 우르르 몰려 들어갈까요? 윤석열 대통령 주변에 그런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도 있겠지요. 착각입니다. 지금은 공작이나 기획이 통하는 시대가 아닙니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자유한국당에서도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국회의원이 탈당해서 다른 정당으로 가는 것은 이제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다음 총선에서 떨어질 각오를 하지 않으면 말입니다. 왜냐고요? 유권자들은 ‘배신’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대통령이 장관직을 제안해도 야당 의원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열린우리당 시절 김효석 민주당 의원에게 장관직을 맡아달라고 했지만, 김효석 의원은 거절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김종대 정의당 의원에게 방위사업청장을 제안했지만, 김종대 의원이 거절한 일도 있었습니다. 개별적으로 그런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대통령 ‘식사 정치’ 안 된 진짜 이유

여러분은 역대 대통령이 야당 의원들과 ‘식사 정치’를 하지 않은 진짜 이유를 아십니까? 대통령이 되면 독선적으로 변해서 야당 의원들을 만나기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알고 계신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절반의 진실입니다.

대통령이 야당 의원을 초청해도 야당 의원이 대통령과 자리를 함께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나머지 절반의 진실입니다. 왜 그럴까요? 야당 의원은 대통령과 같이 밥 먹는 것을 왜 싫어할까요? 배신자로 낙인찍힐 위험 때문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5월16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취임 후 첫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그래서 걱정입니다. 6·1 지방선거 뒤에도 지금과 같은 여야 대치 국면이 계속된다면 정국은 어떻게 될까요? 윤석열 대통령이 민주당을 계속 몰아붙이면 어떻게 될까요?

대한민국이 마비됩니다. 국회는 국민의 대표 기관입니다. 법을 만들고 예산을 의결하는 곳입니다. 대통령이 국회의 협조를 구하지 못하면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없습니다.

국회는 대법원장과 대법관을 비롯해 헌법과 법률이 정한 고위 공직자 임명동의권을 갖고 있습니다. 국무위원 해임을 건의할 수 있습니다. 탄핵소추를 의결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 탄핵소추는 재적의원 3분의 2가 찬성해야 하지만 다른 공직자는 과반수 찬성이면 됩니다. 탄핵소추된 공직자는 권한 행사가 정지됩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에게 야당인 민주당과의 협치는 선택이 아닙니다. 필수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앞으로 2년 동안 계속 민주당 탓만 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해서 2024년 총선에서 승리해본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국정 실패의 책임은 결국 대통령이 지게 되어 있습니다.

전임자들 교훈 반면교사 삼아야

문재인 대통령을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도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5월10일 취임사에서 “야당은 국정운영의 동반자입니다. 대화를 정례화하고 수시로 만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취임식을 마치고 곧바로 자유한국당 당사를 방문했습니다. 그런데도 대통령 재임 기간 내내 여야 관계는 좋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 초에 적폐청산에 치중했습니다. 윤석열 검사를 서울중앙지검장으로 발탁해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비리를 파헤쳤습니다. 그다음에 벌어진 일은 우리가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여·야·정 국정 상설협의체를 띄우는 한차례 큰 성과가 있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전임자인 문재인 대통령의 사례에서 교훈을 좀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여소야대에서 협치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협치에는 ‘제도 협치’가 있고 ‘태도 협치’가 있습니다.

1998년 출범한 김대중-김종필 공동정부, 2014년 남경필 지사의 경기도 연정이 ‘제도에 의한 협치’의 사례일 것입니다. 2011년 재보궐선거로 당선된 뒤 극심한 여소야대 상황에서도 많은 성과를 낸 최문순 강원지사가 ‘태도에 의한 협치’의 사례일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머리를 숙이며 “네네네네”를 입에 달고 산 최문순 지사의 리더십을 정가에서는 ‘네네네네 리더십’이라고 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체질상 ‘태도 협치’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제도 협치’는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게 바로 윤석열 대통령도 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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