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정권 방위력 강화 정책, 바이든 OK 사인에 '날개' [세계는 지금]

강구열 2022. 5. 29. 10:0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日, 반격능력 보유·방위비 증액 가속
기시다 "방위력 강화 모든 선택 배제 안해
美와 정상회담서 바이든 강력 지지 표명"
반격능력 보유와 방위비 증액이 양대 축
국가 안보전략 등 안보문서에 포함 추진
'공격→반격능력' 바꿔도 위헌논란 불가피
반격시점 여전히 논란.. 선제 타격 해석도
상대국 정부시설 등 무제한 공격 가능해
방위비 5년내 GDP 2% 이상 증액 목표
증액 땐 日 군사비 세계 9위서 3위로 껑충
韓·日 국방비 격차 2배 이상 크게 벌어져
방위력 강화 찬성 의견 사상 첫 60% 초과
北核·우크라사태로 위기 의식 고조 영향
조 바이든(오른쪽) 미국 대통령이 23일 일본 도쿄 영빈관에서 열린 환영식에 참석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함께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도쿄=AP뉴시스
“일본 방위력 강화의 뒷받침이 되는 방위비를 상당히 증액하고, 탄도미사일에 대응하기 위해 이른바 반격능력을 포함한 모든 선택지를 배제하지 않으려 합니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는 지난 23일 미·일 정상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일본의 방위력을 근본적으로 강화하기 위한 일본의 구상을 설명했다고 밝히면서 회담 대화 중 일부를 소개했다. 그러면서 “바이든 대통령이 강력한 지지를 표시했다”고 하면서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반격 능력’ 보유 가속화하는 일본

바이든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일본이 방위능력을 높이는 것을 평가한다”고 밝혔다. 이어 “보다 강한 일본, 보다 강한 미·일 동맹은 이 지역에 좋은 것을 가져다준다. 그것이 대만해협에서도 지속하고, 남중국해·동중국해에서도 계속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오케이 사인에 기시다 정권의 방위력 강화 정책은 날개를 달게 됐다.

일본이 추진하는 방위력 강화는 반격능력 보유와 방위비 증액이 양대 축이 될 전망이다. 일본 정부가 올해 말 목표로 개정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국가안보전략, 방위대강(大綱), 중기방위력정비계획이라는 3대 안보 문서에도 이런 내용이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반격능력의 원래 명칭은 극우 성향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 시절 개념화된 적기지 공격능력에서 비롯된다. 2020년 6월 육상 배치 미사일방어(MD) 체계인 이지스 어쇼어(Aegis Ashore) 사업이 기술적 문제로 무산된 것을 계기로 아베 당시 총리 주도로 적기지 공격능력 보유론 논의가 본격화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013년 10월27일 도쿄 북부 사이타마현 소재 육상자위대 아사카 훈련장에서 전범기인 욱일기를 들고 있는 자위대를 사열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적기지 공격능력에는 원거리 선제타격 개념이 포함된 것으로 인식돼 무력에 의한 분쟁 해결을 포기하고 전력(戰力)을 보유하지 않는다고 규정한 헌법과 정부의 전수방위(專守防衛: 공격을 받았을 때 군사 대응을 한다는 수동적 방위 개념) 방침에 위배된다는 논란이 계속됐다.

반격능력은 이런 시비를 피하기 위해 새롭게 고안한 명칭이다. 자민당이 지난달 27일 정부에 제출한 ‘새로운 국가안전보장 전략 등의 책정을 향한 제언’에서 정식으로 제시했다.

자민당 제언은 “탄도미사일 공격을 포함한 우리나라(일본)에 대한 무력 공격에 대한 반격능력을 보유해 이런 공격을 억제하고 대처한다”며 “(반격 범위는) 상대국의 지휘통제 기능 등도 포함한다”고 규정했다. ‘적기지’를 빼고 ‘공격능력’을 ‘반격능력’으로 살짝 바꾸면서 반격 범위는 오히려 기존 ‘미사일 기지’에서 ‘지휘통제 기능 등’으로 ‘등(等)’자를 넣어 사실상 무제한 확대했다.
훈련 중 미사일을 발사하는 항공자위대 F-15 전투기. 일본방위백서(2021년판)
반격 시점은 여전히 위헌과 전수방위 위반 논란을 야기한다. 자민당은 반격 시점에 대해 언론에 “명확한 의도로 공격에 착수한 때”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어떤 행위가 ‘공격 착수’냐 하는 점이다.
방위성은 이와 관련해 미사일이 발사돼 5분 안에 일본에 떨어지는 시점, 혹은 연료 주입이 끝나 미사일 발사 준비가 완료된 시점으로 해석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연료 주입이나 미사일 발사가 완료된 시점에서의 공격은 선제타격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일본 도쿄 신주쿠 이치가야에 소재한 일본 방위성 전경. 세계일보 자료사진
나루시마 다카시(成嶋隆) 니카타(新潟)대 명예교수는 아사히신문에 “반격능력이라고 이름을 바꿔도 선제공격이라는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며 “상대국의 (지휘통제 기능이 집중된) 수도나 인구밀집 지역을 공격할 수 있어서 완전한 무력행사”라고 지적했다.
최은미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27일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일본 정부로서는 반격능력 보유가 헌법과 충돌할 수 있다는 우려를 해소해야 한다”며 “(논란을 해소하면서) 제언의 내용이 점진적으로 방위정책에 반영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방위비 GDP 대비 2% 추진… 한국 2배

자민당은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1% 내에서 유지하는 방위비를 5년 내 2% 이상 증액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 제언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여러 나라의 국방예산 대 GDP 비율 목표(2% 이상)도 염두에 두고 방위력을 근본적으로 강화하기 위한 필요 예산 수준의 달성을 목표로 한다”고 명시한 것이다.

올해 일본의 방위비는 역대 최고인 5조4005억엔(약 53조7400억원) 규모로 GDP의 0.96% 수준이다. 대개 GDP 대비 2.6∼2.8%인 한국의 국방예산은 2022년 경우 54조6112억원 규모다. 환율 변동을 제외하면 현재 한·일의 국방예산 규모는 엇비슷하다. 일본 방위비가 GDP 대비 1%에서 2%로 2배 증액되면 한·일의 국방비 규모 격차도 2배 이상 크게 벌어진다. 일본의 군사비 지출 순위도 현재 세계 9위에서 미국, 중국에 이어 3위로 급상승하게 된다.
일본 해상자위대 7번째 이지스함 8200t급 '마야' 요코하마 교도=연합뉴스
일본의 방위비는 1976년 미키 다케오(三木武夫) 내각에서 GDP 대비 1% 이하로 억제한다는 이른바 ‘1%룰’을 각의(閣議·국무회의) 방침으로 결정했다. 아베 전 총리의 친동생 기시 노부오(岸信夫) 일본 방위상은 2020년 9월 취임 후 1%룰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입장을 공공연히 밝혔다.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자민당 간사장은 내년 방위예산과 관련해 “6조엔(59조7000억원)대 중반을 확보해 방위력을 강화할 수 있는 수준의 달성을 목표로 하겠다”고 했다. 이런 구상이 현실화하면 방위비는 GDP의 1%를 넘기게 된다.

이미 1%를 넘었다는 분석도 있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계산한 지난해 GDP대비 일본의 군사비는 당초 일본 정부가 밝힌 0.95%가 아닌 1.1%이고, 도쿄신문이 지난 1월 나토 기준으로 계산했을 때도 1.24%로 산출됐다.

방위비 증액이 재원 마련 문제로 쉽지 않다는 분석도 있다. 방위비 증가분을 충당하기 위해서는 국채 발행의 방법이 있으나 일본정부 부채비율이 GDP 대비 256%(지난해)로 세계 최고 수준이라 부담이 크다. 세금 인상은 소비세 인하 요구도 나오는 상황에서 조세 저항이 클 것으로 보인다. 증세 대신에 예산 지출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재정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복지비가 감축될 수 있지만 이 경우에도 국민이 수용할지는 미지수다.
자위대 창설기념식 퍼레이드에서 행진하는 육상자위대 전차. 세계일보 자료사진
◆日 국민 64% “반격능력 보유·방위비 증액해야”

일본 국민 여론은 정부와 자민당의 반격능력 보유와 방위비 증액 추진에 호의적인 분위기다.

아사히신문과 도쿄대가 지난 3∼4월 실시한 우편 여론조사에서 방위력 강화 찬성 응답은 64%로 반대(10%)를 압도했다. 관련 조사를 시작한 2003년 이후 방위력 강화 찬성 의견이 60%를 넘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FNN 방송의 지난달 16∼17일 조사에서는 방위비에 증액과 관련해 ‘대폭 늘려야 한다’, ‘어느 정도 늘려야 한다’는 대답이 각각 14.6%, 42.4%로 증액론이 57%를 차지했다.

이런 흐름은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불안감이 커진 상황에서 중국 군사력의 대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일본인의 위기 의식이 더욱 고조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아사히신문 단독의 다른 조사에서는 ‘주변국과의 전쟁에 대한 불안감을 이전보다 느끼게 됐다’는 응답이 80%에 달했다.
일본 해상자위대 이지스 호위함 조카이함이 욱일기가 펄럭이는 가운데 해상훈련을 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자민당은 이런 여론을 발판 삼아 7월 참의원(상원) 선거 때 반격능력 보유와 방위비 증액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울 것으로 보인다. 야당의 반대나 군사력 강화에 미온적인 공동여당 일원인 공명당이 소극적으로 나올 경우 방위 관련 논의의 속도와 수위에게 영향을 줄 수는 있다.

외교소식통은 27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 참화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생존해 있고, 전쟁 포기를 선언한 헌법이 전후 일본 사회를 떠받친 버팀목 역할을 했다”며 “방위력 강화 논의가 일본이 그간 지켜 온 원칙을 무너뜨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이 일본 사회에 엄연히 존재한다”고 말했다.

도쿄=강구열 특파원 river910@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