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n스토리] 오월 어머니 사진에 42년 슬픔 담은 김은주 작가

천정인 입력 2022. 5. 29.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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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전일빌딩 245 9층에서 '오월 어머니-그 트라우마' 사진전

(광주=연합뉴스) 천정인 기자 = "여기 여기, 여기가 거기여."

5·18 민주화운동 당시 소중한 가족을 잃거나 본인이 다친 장소를 가리키며 내뱉은 5·18 피해 여성들의 무거운 한 마디.

이들의 인물 사진을 작품으로 남기는 사진가 김은주(53) 씨가 가장 많이 들은 말이기도 하다.

사진가 김은주 [연합뉴스 사진]

김 작가는 개인의 상처가 있는 곳이면서 동시에 5·18의 역사가 담긴 현장이기도 한 장소를 인물 사진의 배경으로 삼았다.

총상을 입었던 자택 현관 앞, 아들을 잃었던 옛 전남도청 앞, 남편이 매장된 채 발견된 옛 광주교도소 등이다.

선명하게 찍힌 과거의 배경과 현재의 인물이 교차하며 흘러간 42년의 세월까지 담았다.

김 작가가 '오월 여성'들을 찍게 된 것은 어쩌면 운명이었다.

중학생 시절 일본에 다녀온 아버지가 사다 주신 필름 카메라를 처음 접한 김 작가는 주로 어머니를 모델 삼아 사진을 연습했다고 했다.

하지만 고등학교 3학년 때 가정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사진에 대한 꿈을 접고 증권회사에 취직했다.

결혼도 하고 아이를 낳으며 십수년간 평범한 생활을 이어갔다.

자녀가 유학을 하고 여유가 생긴 김 작가는 사진 학원에 등록했다가 원장의 강한 권유로 대학에 진학해 사진을 전공하게 됐다.

38세 늦깎이 대학생이 된 그는 어머니를 모델 삼았던 어린 시절의 영향 때문이었는지 주로 인물 사진과 여성 사진에 관심을 보였다.

대학 졸업을 앞둔 2009년 말 즈음, 그동안 어렴풋이 알고 있던 5·18을 직접 마주할 수 있었다.

지인을 통해 오월 어머니들을 만나게 된 것.

김 작가는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광주를 찾았지만 단순히 사진만 찍는 건 의미가 없었다.

김 작가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오랜 시간 일상을 공유했다.

"일부러 식사하실 때 뭐 들고 찾아가요. 같이 밥 먹고, 커피도 타드리고, 설거지도 하고…어머니들과 같이 논 거죠. 화투도 치고 사우나도 가고 소풍 가시면 따라가서 사진도 찍어드리고요."

서울 토박이였던 그는 광주에 월세방을 얻어 10개월 가까이 이런 생활을 이어갔다.

오월 어머니들도 어느 순간 마음을 열고 김 작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김 작가가 어머니들의 이야기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건 바로 사건이 벌어진 '장소'였다.

지금도 그 장소를 지나가거나 쳐다보는 것조차 힘들어했다.

어렵사리 근처에 가더라도 주변만 뱅뱅 돌다가 겨우 "여기야 여기"라며 사건의 현장을 가리켰다.

그것이 모티브가 돼 장소와 인물이 교차하는 하나의 서사가 김 작가의 사진에 담기기 시작했다.

고(故) 전옥주 여사를 촬영한 작품 앞에 선 김은주 작가 [연합뉴스 사진]

지금까지 50여명의 오월 여성에 대한 촬영을 마친 김 작가는 5·18 가두방송을 한 당사자인 고(故) 전옥주 여사와의 촬영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5월 항쟁으로 고문을 받아 여성으로 사는 삶을 상실했던 아픔과 간첩 '모란꽃'으로 몰리기까지 한 굴곡진 그의 삶을 사진에 담고 싶었지만 정작 전 여사는 여러 차례 촬영을 고사했다.

어렵사리 설득한 끝에 타지에 사는 전 여사를 광주 동구 옛 전남도청으로 모셔올 수 있었다.

전 여사가 마이크를 잡았던 그 장소였다.

카메라 앞에 선 전 여사의 옷깃과 머리카락이 바람에 휘날리는 모습이 마치 그의 내면을 보는 듯했다는 게 김 작가의 설명이다.

사진을 찍고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얼마 지나지 않아 전 여사는 세상을 떠났다.

김 작가는 "건강이 좋지 않으셔서 (전옥주) 선생님을 찍지 못하면 어떡하나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행히 응해주셨다"며 "촬영이 끝나고 돌아와서 선생님께 청해 들은 아리랑 노래를 녹음할 수 있었던 건 저에게 큰 행운이었다"고 말했다.

오월 여성들을 통해 5·18을 기억하는 그의 작품은 광주 동구 전일빌딩 245 9층 5·18 기념공간 기획전시실에서 오는 10월 14일까지 열리는 '오월 어머니-그 트라우마'전에서 관람할 수 있다.

그는 "저는 오월 어머니를 만나고 이분들에 대해 첫 전시를 하면서 제 사진의 방향을 잡았다"며 "사진 설명은 최대한 팩트(사실)만 적었다. 설명을 보고 다시 사진 속 어머니들의 얼굴을 보면 느낌은 또 다를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작가는 "특별히 오월 어머니들에게 감사한 마음"이라며 "전시회를 찾은 분들이 오월 어머니 한분 한분의 모습을 보면서 '이런 아픔이 있구나' 하는 공감을 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in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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