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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때문에 투사가 된 시인, 그가 6년 만에 내놓은 시집

김병기 입력 2022. 05. 29.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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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10만인] '꿈꾸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시집 출간한 송경동 시인①

'이 사람, 10만인' 연재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하는 10만인클럽 회원을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편집자말>

[김병기 기자]

 고 백기완 선생의 영결식이 서울광장에서 엄수된 19일 송경동 시인이 조사를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사랑 때문에..."

'거리의 시인', '투사 시인'의 입에서 이런 말이 쉽게 튀어나올 줄 몰랐다.

희망버스를 타고 한진중공업으로 몰려가 공장 담벼락을 넘자고 주동했다가 0.95평 독방에 갇혔던 그였다. 넉달 반 동안 광화문광장 텐트에서 엄동설한을 버티며 박근혜 퇴진을 외쳤다. 기륭전자 농성장에서 대형 포클레인 위에 올라 점거농성하다가 떨어져 발뒤꿈치뼈가 열 네 조각이 났다. 평택 대추리에서 미군기지 이전 확장 반대투쟁을 할 때 경찰이 던진 벽돌에 머리가 터졌다.

"나의 시는 나의 무기"라고 목 놓아 외칠 것 같은 그에게 '왜 시를 쓰냐'고 묻자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되돌아온 메아리가 사랑 때문이라니...

지난 12일 영등포역 근처 비정규 노동자 쉼터 '꿀잠'(서울 영등포구 도신로 51길 7-13)에서 송경동 시인(55)을 만났다. <꿀잠>,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에 이어 그가 최근 펴낸 4번째 시집 <꿈꾸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창비 출간)를 들고서다. 6년 만에 시집을 내놓은 소감부터 물었다.

그는 "촛불항쟁 성과를 5년 만에 거덜내고 수구·보수·재벌 정부를 맞게 되는 시점에 시집이 나와 기쁨보다는 씁쓸함과 함께 분노가 인다"고 말했다. 그 심정을 한 편의 시에 담았다.
 
'문민정부' '국민의정부' '참여정부' '촛불정부'...
왕조명만 바뀌고 사회는 바뀌지 않는군요
사색당파는 끊이지 않고 계급사회는 여전하군요
빌어먹을, 다시 죽 쒀서 개 줬군요
다른 꿈을 꾼다는 건 여전히
뼛속 바닥까지 쓸쓸하고/외로운 일이군요.

- <영풍문고 앞 전봉준씨에게> 중에서
 
[시평] "오랜만에 느끼는 서정적 투지"

한 시인이 언론 입길에 오르는 일은 흔치않다. 간혹 등장해도 문화면 정도가 시인의 자리다. 그는 주로 사회면을 장식했다.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박근혜 정부 노동법 개악에 맞선 '을들의 국민투표'도 그가 앞장섰다. '예술인 블랙리스트'에 반발해 광화문광장에 차린 유쾌, 통쾌하고 발랄한 '예술인 텐트촌'은 박근혜 탄핵 분위기를 이끌었고, 그곳 촌장도 그였다.

점거, 단식, 천막농성... 보수언론들은 이런 그를 '전문 시위꾼'으로 몰기도 했지만 적어도 명성을 쫓아 문단을 기웃거리지 않았다는 반증이다. 그렇다면 사회운동가로 알려진 그의 시에 대한 문단의 평가는 어떨까? 불문학자인 안삼환 선생과 김윤태 문학평론가는 페이스북에서 이런 평가를 올렸다.

"하이네의 경향성이 엿보인다."

하인리히 하이네는 괴테와 함께 독일의 국민 시인이다. 우리에게는 서정시인으로 알려졌지만, 냉혹한 현실에 대한 풍자를 곁들인 정치 참여시의 선구자였으며 혁명시인으로 추앙받고 있다. 송 시인은 이런 평가에 대해 "시와 현실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을 예술적 감수성으로 승화시킨 하이네의 시와 비교된 것 자체로도 영광이고 고마웠다"면서 겸연쩍어했다.

그런데 류근 시인도 자기 페이스북에 이런 성찬을 올렸다.

"창비 시선의 마지막 전사 같은 육성이 우렁우렁 살아난다. 모처럼 마주하는 생목소리다. 나는 쉰 듯도 하고 고음인 듯도 하고 아주 저음인 듯도 한 송경동의 음성을 들으며 참으로 오랜만에 '창비스러운' 서정적 투지를 느낀다. 앉은 자리에서 다 읽었다. 오늘 밤 꿈에 송경동의 살냄새 피냄새 땀냄새가 범람할 것 같다."

서평가인 김미옥씨도 페이스북에 "양립 불가한 투쟁과 서정이 이렇게 어깨를 겯고 아름다울 수 있다니!"라고 적었고, 하응백 문학평론가는 "송경동은 리얼리스트로 위장 취업한 도도한 낭만주의자다"라고 평했다.

평론가들이 이구동성으로 송 시인의 투지 앞에 '서정'이라는 수식을 단 게 무엇보다 생소했다. 학창시절, 우리는 서정시와 참여시는 양극단의 시로 배웠다.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나치 치하의 독일을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라고 절망했던 것도 이런 맥락으로 이해했다. 하지만 시적 서정은 아름다운 꽃 한송이, 눈부신 자연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그는 공장 노동자 등짝에 핀 소금꽃에서도 빛나는 서정을 길어 올렸다.
 송경동 시인의 <꿈꾸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시집 표지
ⓒ 창비
[시인의 꿈] "나는 계속 꿈꾸는 하는 소리 하다가..."

오랜만에 세상에 내놓은 시 58편. 시인에게 '서점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냐'는 속된 질문을 던졌다. 그는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인지, 세상이 바뀌었다는 게 느껴진다"면서 "과거에는 시집이 나오면 보수, 진보를 가릴 것 없이 대부분의 언론들이 짧은 출간 소식 정도는 내줬는데 이번에는 감감무소식이다"라는 말로 대신했다.

그는 "자본의 광풍이 여러 사회적 가치를 덮어버리는 세상이기에 작가적 응전이 쉽지 않지만, 나라도 또 다른 세상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알리려면 내 시쓰기 역시 또 하나의 사회적 투쟁 전선"이라고 말했다.

그의 투쟁 대상에는 부조리한 외부로만 향해 있지 않다. 이번 시집의 제목이기도 한 '꿈꾸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는 운동권 내부의 조합주의와 패배주의, 냉소주의에 대한 풍자이자, 기성 제도와 권위에 굴하지 않고 '꿈꾸는 소리'를 하고 살겠다는 결연한 의지이자 선언이었다.
 
그때마다 그러잖아도 바쁘고 일 많은데
꿈꾸는 소리 좀 그만하라는 질책과
비웃음을 듣곤 했지만
뭐 사는 게 별거 있는가
이제와 무슨 권력이나 부나 명성 얻을 것도 없고
뒤늦게 철든 이들 따라 무슨 욕심 차리는 것도 추해
나는 계속 꿈꾸는 소리나 하다
저 거리에서 자빠지겠네"

- <꿈꾸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중에서
 
<토대>라는 시에서는 "나는 대장만 하고 싶은" 일부 운동권 지도자에 대한 불편한 심경을 담았다. <소설과 철학의 기원>에서는 "한 저명한 소설가께서 허둥지둥 현장을 휘젓다가/방송카메라가 보이자 저돌적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면서 우리 안의 허위의식도 꼬집었다. 왜 그랬을까? 그는 체 게베라의 녹색노트에 적힌 시 한 구절을 인용했다.
"가장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운동을 함부로 만드는 이도 혁명의 적이다."
 
▲ 방송차 오른 송경동 시인 세월호 참사 39일째인 24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세월호참사 2차 범국민촛불행동'에 참가했던 참가자들중 일부가 "박근혜 퇴진"을 외치며 청와대 행진을 시도했다. 송경동 시인이 방송용 승합차 위에서 발언하고 있다. 송 시인은 잠시 뒤 경찰에의해 강제로 끌려내려와 연행되었다.
ⓒ 권우성
 
[성찰] "마음의 독, 좋지 않은 정서적 찌꺼기가 쌓여간다"

시는 시인의 삶에 농축된 시간의 결과물이다. '투사 시인'의 시에는 투쟁의 깃발만 나부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은 찾기 어렵다. 되레 자성과 성찰의 시가 여럿 들어 있다. <관변 시인>에서는 "한 번만 더 지면을 주면 시키는 대로 말랑말랑한 시 얘기만 할 텐데라는 상념이 더 많은 나는 아무래도 관변 시인이 될 기질이 농후하다"고 읊었다.

<내 안의 원숭이를 보라>는 시에서는 "내 안에도 들어와 사는 큰 원숭이 한 마리를 본다/작은 재주에 으쓱하고 쉬지 않고 재롱을 부리며/광대처럼 무대에서 박수만 받고 싶어 하는 원숭이/사회를 검색하는 일보다 자신을 검색하는 일이 더 많고/숨겨진 진실을 캐는 일보다/눈곱만한 자산을 계량하는 일이/더 많아진 원숭이"라고 성찰하기도 했다.

현장에서 비타협적으로 투쟁해 온 그도 바람에 쉼 없이 흔들리며 피는 꽃이었다. 그는 "파쇼와 싸우다 보면 파쇼를 닮아간다는 말이 있듯이 제 안에 좋지 않은 정서적 찌꺼기가 쌓여간다"면서 "한편으로는 제가 감당할 수 없는 세상의 고통을 받고 스스로 깨지고 마모되면서 그 하중에 눌려서 생성된 '마음의 독'이자 산재"라고 표현했다.

시적 언어로 이를 세상에 풀어낸 것은 스스로를 경계하고, 자기성찰을 하겠다는 의지로 읽혔다.
 
 송경동 시인
ⓒ 김병기
[실험시] 현장을 기록한 또 다른 한 편의 산문시와 생태시

시의 뒷부분에 산문으로 주석을 단 것도 있다. <해산명령>에는 유성기업 한광호 조합원이 자결한 배경과 함께 노조파괴 시나리오 등에 대한 이야기를 덧붙였다. <그들을 누가 죽였지>에서는 콜텍 기타를 만들던 노동자들의 13년에 걸친 싸움을 기록했다. <다른 세계를 상상하라>는 시에서는 삼성반도체 백혈병 희생자들의 투쟁을 두 장에 걸쳐 해설했다.

시집으로서는 익숙지 않은 구성이지만 그 산문을 접하면 그게 또 한 편의 시 같다. 처음 그 사건을 접하는 사람의 이해를 도우면서도 투쟁의 현장에서 함께한 사람들의 서정과 서사를 담았다. 그 이유를 물었다.

"첫째는 시를 잘 쓰지 못했기 때문이겠지요. 시에서 잘 풀어냈다면 굳이 필요 없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쌍용자동차, 삼성반도체, 콜트콜텍 등의 싸움은 짧게는 10년, 길게는 15년 동안 지속된 사회적 투쟁이었습니다. 그 시의 맥락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덧붙인 짧은 산문입니다."

산문체의 기록이 가능했던 이유는 그도 현장을 함께 지켰기 때문이다. 그는 "현실과 동떨어진 고귀한 시의 권위를 허물고 현실의 강력한 개입을 위한 일종의 실험시로 너그럽게 보아 주셨으면 좋겠다"면서 "노동 현장의 피눈물을 이런 식으로라도 기록하려는 전위적 고민의 산물이자, 기존 시의 권위에 대한 야유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돼지열병>은 생태시로의 확전을 고민한 흔적이다. 그는 이 시에서 "상수원인 임진강의 한 지류는/살육당한 돼지 핏물로 그득 차 취수가 중단됐다"면서 그 와중에 돼지열병 테마주를 띄우며 돈벌이에 골몰하는 투기자본의 모습을 고발했다. 이어 그는 "이 땅/모든 개돼지들의 처지가/위와 같다"면서 "동물들이 사육당하는 것처럼/인간 개체 대부분도 사육당한다"는 동질성을 부각시킨 뒤 인간과 개돼지의 연대를 호소했다.
 
어떻게 연대해야 할까
축산과 축적의 대상물인
이 땅의 모든 개돼지들은
서로가 서로를 뜯어먹지 않고
서로가 서로의 비참과 오물을 집어삼키지 않으며
어떻게 자유롭고 평온한 생명으로
존엄한 생명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

- <돼지열병> 중에서
 
그에게 이 시집을 관통하는 한 문장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면서 다음과 같이 부연했다.

"아직도 전근대적인 폭력과 야만과 차별, 불평등으로 인한 수많은 인간과 자연의 소외 현상이 벌어지고 있죠. 수많은 절규와 아수라들의 죽음들이 만연해 있어서 가끔은 지옥 같은 곳이라고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계는 참 아름다운 곳입니다. 우애든 우정이든 사랑이든... 서로에 대한 자비와 배려, 협동, 환대의 문화가 더 많은 곳이죠.

인간의 욕망으로 파괴되고 있지만, 아름다운 계절과 물과 바람과 향기를 맡으면서 살아갈 수 있는 아름다운 지구별이 이 우주에 또 있을까요? 이 곳에 인간으로 태어나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기적 같은 일이죠. 이런 거룩한 삶과 생명을 이윤과 착취의 대상으로 삼는 소수의 독점과 폭력을 거둬내야 하는 힘든 숙제가 남았지만..."

사랑 때문에 시를 쓴다는 말은 이런 의미였다. 야만과 폭력의 세상에 대한 분노를 넘어서기 위해, 사랑 때문에 그는 싸움의 거리에 선다는 의미였다.
 
 거리에 나서야 만날 수 있는 송경동 시인. 그는 지난해 11월 서울 광화문 광장에 텐트를 치고 캠핑촌장이 됐다.
ⓒ 정대희
 
[후원] 오마이뉴스 후원하는 까닭

노동 현장과 거리, 광장에서 온몸으로 시를 쓰는 그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이기도 하다. 마이크를 들고 거리에서 몸싸움하면서, 농성 천막이나 한 평 남짓 감옥에서 <오마이뉴스>를 통해 세상에 쏘아 올린 기사는 80여 편에 달한다.

그에게 <오마이뉴스>는 어떤 언론인지에 대해 물었다. 그는 "<오마이뉴스>의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모토는 모두가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해방적이고 혁명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면서 "소수자들의 소중한 이야기를 다루는 게 시인데, <오마이뉴스>는 언론으로서 그런 자리를 지켜주고 있다, 시적인 언론"이라고 말했다.

그는 10년 넘게 <오마이뉴스>를 후원해 온 '10만인클럽 회원'이기도 하다. 최근 '익천문화재단 길동무' 상임이사로 재직하기 전까지는 30여 년 동안 전업활동가로 살면서도 월급을 받기는커녕 변변한 돈벌이도 하지 못한 그였다. 하지만 그는 "사실, 제가 아니라 <오마이뉴스>가 저를 후원해왔다"면서 "그동안 <오마이뉴스>는 제가 쫓아다니던 수많은 현장을 찾아와 힘들게 투쟁하는 이들의 사연이 세상 밖으로 나아가게 해주는 한 줄기 빛이 되어주었고, 지난 십수 년간 <오마이뉴스>는 저의 제일 가까운 동지 중 하나였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②편으로 이어집니다.
 
▲ "꿈꾸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거리의 시인' '투사 시인'으로 불리는 송경동 시인을 인터뷰했다. 송 시인은 최근 4번째 시집 '꿈꾸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창비 출간)를 냈다. 시인의 치열한 삶과 서정적 투지가 빛나는 시, 그리고 길거리 싸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김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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