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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바빠도 베이스는 꼭 밟자

김양희 기자 입력 2022. 05. 29.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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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희의 인생 뭐야구]잘못된 판단으로 생기는 어처구니없는 '입틀막' 실수 '본헤드(바보) 플레이'
2022년 5월18일 서울 송파구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두산과 에스에스지(SSG)의 경기. 11회말 더블아웃 뒤 선수들이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연합뉴스

2-2로 맞선 연장 11회말 1사 만루. 타자는 2구째 체인지업을 받아쳤고 타구는 좌익수 쪽으로 날아갔다. 상대 수비수는 혼신의 힘을 다해 타구를 잡으려 했으나 공은 한 번 튕기고 글러브로 들어갔다. 3루 주자는 홈플레이트를 밟고 환하게 웃으면서 박수를 쳤다. 모두가 경기 종료를 생각했다. 하지만 웬걸, 경기는 끝나지 않았다. 끝내기 득점이 인정되지 않았다. 2022년 5월18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 에스에스지(SSG) 랜더스 경기 때 일어난 일이다.

모두가 끝났다는 순간, 심판 공수 교대 지시

주자들의 ‘본헤드 플레이’가 문제였다. 타자 조수행의 타구가 뜬공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한 뒤 주자들은 다음 베이스로 진루해야 했는데 1루 주자 안재석도, 2루 주자 정수빈도 경기가 끝났다고 생각한 탓인지 그라운드 위에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이때 조수행의 타구를 원바운드 슬라이딩으로 잡은 SSG 좌익수 오태곤은 유격수 박성한에게 공을 던졌고 박성한은 2루 주자 정수빈을 태그아웃(수비팀이 상대팀 신체 부위를 접촉해 아웃시킴)시킨 뒤 2루 베이스를 밟아 안재석까지 포스아웃(수비팀이 베이스를 밟아 주자를 아웃시킴)으로 엮어냈다.

한국야구위원회(KBO) 공식야구규칙 득점 5.08 ‘득점의 기록’ (a)항 부기에 따르면, 주자가 홈에 들어가더라도 △타자 주자가 1루에 닿기 전에 아웃되거나 △주자가 포스아웃되거나 △선행주자가 베이스를 밟지 못해 세 번째 아웃카운트가 이뤄지면 득점으로 인정되지 않 는다.

즉, 두산 3루 주자 김재호가 홈플레이트를 먼저 밟든 안 밟든 주자들이 아웃되면 득점은 인정될 수 없었다. 심판진이 4심 합의 끝에 ‘경기 끝’이 아닌 공수 교대를 지시한 배경이다. 만약 박성한이 2루 주자 태그를 하지 않고 2루 베이스를 먼저 밟았다면 3루 주자의 끝내기 득점은 인정되는 터였다. BQ(야구의 IQ에 해당하는 야구지수)가 중요한 이유다.

공수가 바뀐 뒤에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끝내기 상황을 주자들의 안일함으로 날린 두산은 정신없는 12회초를 보냈다. 특히 우익수 수비에 나선 조수행은 더 혼이 나간 듯했다. 1사 1·3루에서 케빈 크론(SSG)의 뜬공을 놓치면서 2타점 3루타를 허용했다. 프로 데뷔 6년 만의 첫 끝내기 안타가 좌익수 앞 병살타로 바뀌었으니 수비에 도통 집중할 수 없었던 것. 결국 두산은 2-5로 졌다. 연패를 끊지 못한 두산은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졌다. 연패가 ‘5’까지 늘어나다가 5월21일 롯데전에서 겨우 끊었다.

두산뿐만이 아니다. 프로야구에서는 종종 말도 안 되는 플레이가 나온다. 2011년 채태인은 1루에 있다가 외야 뜬공 때 2루로 뛰어 베이스를 밟았다가 다시 2루를 밟고 1루로 가려다가 수비수가 뜬공을 떨구는 것을 확인하고 3루로 다시 뛰었다. 하지만 2루를 밟지 않고 3루로 뛰어서 ‘누의 공과’로 아웃됐다. 송지만은 1999년 홈런을 치고도 홈플레이트를 밟지 않아 홈런이 3루타가 되고 말았다. 1997년 김영진은 9회말 2사 1·2루 낫아웃(삼진아웃 때 포수가 공을 놓쳐 타자가 1루로 진출하는 것) 상황을 착각하고 경기가 끝났다고 판단해 공을 관중석으로 던졌다가 타자를 살려줘 역전의 빌미를 제공했다. 엘지(LG) 트윈스 포수 유강남은 2021년 SSG전에서 이미 죽은 주자를 다시 죽이려 하다가 다른 주자에게 끝내기 결승점을 헌납했다. 유강남의 플레이는 지금도 ‘유령 주자 사건’으로 회자된다.

홈플레이트 밟지 않아 홈런 아니라 3루타

‘본헤드’(Bonehead)는 ‘바보’ ‘멍청이’를 뜻한다. ‘본헤드 플레이’는 수비나 주루 플레이를 할 때 잘못된 판단으로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지르는 것을 말한다. 야구에서 ‘본헤드 플레이’란 말이 처음 등장한 것도 끝내기 상황에서 나온 어이없는 주루 실책 탓이었다. 두산과 여러모로 비슷했다.

1908년 뉴욕 자이언츠(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시카고 컵스는 치열한 우승 경쟁을 펼쳤다. 9월23일 두 팀의 경기는 이목을 집중시켰고 1-1로 팽팽하던 9회말 자이언츠는 2사 1·3루 끝내기 찬스를 맞았다. 엘 브리드웰이 중전 적시타를 날리면서 경기는 자이언츠의 승리로 끝나는 듯했다. 맞수를 이긴 데 광분해 관중도 그라운드로 난입해 이 상황을 즐겼다.

그러나 다음날 경기는 ‘무승부’로 결론 났다. 당시 1루 주자였던 프레드 머클이 2루 베이스를 밟지 않고 더그아웃으로 들어가버렸기 때문. 당시 공을 잡은 자이언츠 2루수 조니 에버스가 2루 베이스를 밟았고 컵스 감독은 포스아웃을 주장해 사무국이 이를 받아들였다. 3루 주자의 득점은 두산처럼 인정되지 않았다. 두 팀은 정규리그 성적에서 동률을 이뤘고 단판 승부 끝에 컵스가 이겼다. 9월23일 경기가 끝내기 승리로 인정됐다면 정규리그 우승은 당연히 자이언츠 구단의 몫이었다. 컵스는 분위기를 타고 월드시리즈까지 제패했다. (흥미롭게도 컵스는 이때 우승 이후 2016년까지 108년 동안 월드시리즈 왕좌를 차지하지 못했다.)

리그 최대 맞수인 컵스가 월드시리즈 우승까지 했으니 자이언츠 팬들의 마음이 오죽했을까. 분노의 화살은 당시 내셔널리그에서 가장 어린 선수인 19살 머클에게 향했다.(반대로 당시 시카고 술집 등은 이름을 ‘머클’로 바꾸기도 했다.) 이후 머클은 ‘본헤드 머클’로 불렸다. ‘본헤드’는 주홍글씨처럼 평생 그를 따라다녔고 그의 딸은 학교에서 ‘본헤드 딸’이란 말을 들어야 했다. 1926년 은퇴 때까지 그가 겪었을 고통을 짐작할 수 있다.

언론부터 팬까지 머클에게 필요 이상의 비난을 퍼부었을 때 한 사람만은 끝까지 그를 감쌌다. 존 맥그로 당시 자이언츠 감독이다. 그는 정규리그 우승을 뺏겼다며 사무국에 화냈지만 19살 어린 선수는 절대 비난하지 않았다. “다른 경기에서 이겼으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이라면서 패배했던 다른 경기들을 지적했다. 머클의 실수로 인한 무승부도 결국 정규리그 1경기일 뿐이라는 얘기였다.

끝내기 상황도 끝나야 끝난 것이다

두산-SSG 경기에서 하나는 배웠다. 끝내기 상황이어도 반드시 선행주자는 다음 베이스를 밟아야 한다는 것. 야구는 절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것을. 그것이 비단 끝내기 상황이어도 말이다.

김양희 <한겨레> 문화부 스포츠팀장·<야구가 뭐라고> 저자

*‘인생 뭐, 야구’ 시즌2를 시작합니다. 오랫동안 야구를 취재하며 야구인생을 살아온 김양희 기자가 야구에서 인생을 읽는 칼럼입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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