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전 평화파 VS 정의파..똘똘 뭉쳤던 서방, 쪼개진 까닭

임선영 2022. 5. 29.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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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 초기 똘똘 뭉쳤던 서방이 '전쟁 결말'을 놓고 다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전쟁 장기화에 따른 우크라이나와 전 세계의 손실, 러시아의 더욱 강력한 도발을 걱정하는 쪽은 휴전을 촉구하고 나선 반면, "나쁜 평화는 피해야 한다"며 여전히 우크라이나의 승리를 지지하는 나라들도 있다.

불가리아 싱크탱크 자유전략센터(CLS)의 정치학자 이반 크라스테프는 이코노미스트지에 "서방은 두 개의 진영으로 갈라지고 있다"며 "전투를 중단하고 하루빨리 협상을 시작하라는 '평화파'와 러시아는 침략에 대한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정의파'다"고 진단했다.


물가 상승, 전쟁 비용 지원, 핵무기 부담


'평화파'로 분류되는 대표적인 나라는 프랑스·독일·이탈리아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28일(현지시간) 블라미디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전화 통화하며 "휴전"을 촉구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왼쪽)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AFP=연합뉴스
마크롱 대통령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나와 숄츠 총리는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영토 보전을 존중하면서 모스크바와 키이우 간의 협상을 통해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점을 푸틴 대통령에게 강조했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는 러시아 대통령에게 휴전을 촉구했으며 마리우폴 아조우스탈 제철소에서 항전하다 러시아군에 포로로 붙잡힌 우크라이나군 2500여 명의 석방도 요구했다"고 전했다.

앞서 이탈리아는 휴전, 전선의 비무장화 등을 단계적으로 하는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을 위한 4단계 평화 로드맵을 유엔(UN) 등에 제안한 바 있다.

이같은 휴전 요구는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에 따른 세계적인 곡물·원유 등의 물가 상승과 전쟁 비용 지원 부담 증가 등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으로 올해 국제 밀 가격은 약 60% 급등했고, 아프리카·중동을 중심으로 식량 부족 현상이 나타나는 실정이다. 미국과 유럽이 지금까지 우크라이나에 지원한 전쟁 비용은 각각 수조 원에 달한다.

마크롱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과 통화한 후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 마크롱 트위터 캡처

우크라이나 협상단 대표인 미하일로 포돌랴크는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지만, 우리에게 항복을 강요하려는 것처럼 느껴진다"며 불편한 마음을 드러냈다.


英·에스토니아 "우크라이나 승리해야"

그러나 미국과 가까운 영국은 물론이고, 일부 다른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은 섣부른 휴전 논의를 경계하고 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28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통화 후 소셜미디어에 "나는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우리는 우크라이나와 장기적으로 함께 할 것이며 계속해서 우크라이나가 자국을 방어할 수 있는 장비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적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로이터=연합뉴스

발트 3국 중 하나인 에스토니아의 카야 칼라스 총리는 "푸틴을 자극하는 것보다 푸틴에게 굴복하는 것이 훨씬 위험하다"며 "나쁜 평화를 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을 신청한 핀란드의 산나 마린 총리는 지난 26일 키이우 방문 후 성명을 통해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 EU가 단결하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에스토니아의 카야 칼라스 총리. 로이터=연합뉴스

앞서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은 키이우를 방문해 ""우크라이나 영토의 1㎝라도 러시아에 내어줘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美 "승리"→"휴전"...전쟁 불확실성도 영향

우크라이나 최대 지원국인 미국은 우크라이나의 항전을 지지하지만 최근 들어 미묘한 입장 변화도 드러냈다.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부 장관은 지난달 키이우를 방문해 "서방은 우크라이나가 승리하고, 러시아가 패배하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했지만, 3주 후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부 장관과 통화에서 즉각 휴전을 요구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최근 미 뉴욕타임스(NYT)는 '러시아의 패배는 비현실적'이란 내용의 사설을 실어 파장을 낳기도 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통화 후 트위터에 올린 글. 보리스 존슨 트위터 캡처

이코노미스트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불확실성도 서방의 분열에 영향을 끼쳤다고 분석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로부터 키이우와 하르키우를 지켜냈지만, 마리우폴이 함락됐고 돈바스 루한스크주의 요충지 세베로도네츠크가 포위될 위기에 처했다.

이에 '평화파'는 전투가 오래 지속될수록 우크라이나와 전 세계의 인적·경제적 비용이 커진다고 우려하는 반면 '정의파'는 러시아 제재 효과가 이제 나오기 시작했으며 시간과 무기가 더 제공되면 우크라이나가 승리할 수 있다고 반박한다.

이코노미스트는 지금은 '우크라이나의 미래는 우크라이나인이 결정한다'는 명제가 서방의 분열을 억제하고 있지만, 우크라이나의 선택은 서방이 제공하는 것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기도 하다고 진단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서방의 태도가 '전쟁 결말'의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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