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투약하고 시체 버린 의사인데..법원 "면허 재교부하라"

최민영 2022. 5. 30.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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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산부인과 의사 사체유기’ 사건으로 면허가 취소된 전직 의사에게 의사면허를 재발급해야 한다고 법원이 결정했다. 게티이미지뱅크.

2012년 ‘산부인과 의사 사체유기’ 사건으로 면허가 취소된 전직 의사에게 면허를 재발급해줘야 한다는 취지의 법원 판결이 나왔다. 사건 이후 10년 동안 충분히 뉘우치고 반성했다는 이유에서다. 범죄자 의사 면허 재발급에 관대했던 보건복지부 조차 이례적으로 재발급을 거부한 사례에서, 법원이 이를 뒤집는 판단을 내려 비판이 나온다.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재판장 김순열)는 전직 산부인과 전문의 ㄱ씨가 보건복지부 장관을 상대로 낸 ‘면허취소 의료인 면허 재교부 거부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30일 밝혔다. 복지부가 ㄱ씨에게 의사면허를 다시 발급해줘야 한다는 취지다.

ㄱ씨는 2012년 7월31일 새벽 0~2시 사이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자신의 병원 진료실에서 ‘잠을 편하게 푹 잘 수 있도록 해달라’는 지인 ㄴ씨 요청을 받고 프로포폴과 유사한 향정신성 의약품 미다졸람, 수술용 전신마취제 베카론, 수술용 국소마취제 나로핀·리도카인을 다른 약물과 함께 무분별하게 섞어 ㄴ씨에게 투여했다. 약물을 투여받던 ㄴ씨는 그대로 숨졌다. 사망 원인은 ‘다수 약물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중독의 기전으로 인한 호흡정지’였다. ㄱ씨는 ㄴ씨가 숨진 사실을 확인하자 ㄴ씨의 차량에 사체를 옮겨 실은 뒤, 서울 서초구 한 공원에 차량을 방치해 사체를 유기했다. 이 사건으로 ㄱ씨는 징역 1년6개월의 실형을 살고, 2014년 2월 출소했다. 복지부는 2014년 8월1일 ㄱ씨의 의사면허를 취소했다.

면허 취소 3년 뒤인 2017년 8월1일, ㄱ씨는 복지부에 의사면허 재교부를 신청했다. 하지만 복지부는 2020년 3월2일 ㄱ씨의 신청을 거부했다. 면허 재교부 안건을 논의한 행정처분심의위원회 직역별 소위원회 소속 위원 7명 중 6명이 심의에 참석해 5명이 불승인 의견을 낸 것이다. 의사면허 재교부 신청이 사실상 대부분 승인된 전례에 비추어 보면, ㄱ씨의 불승인 결정은 이례적이었다.

실제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20년 국정감사에서 “보건복지부의 ‘최근 10년(2011~2020년) 의사면허 재교부 신청·교부 현황’ 자료를 분석해보니 103건 중 100건이 승인돼 재교부율이 97%에 육박한다”고 밝힌 바 있다. 심각한 범죄를 저지른 의사의 면허를 재승인한다고 비판받아 온 복지부마저도 ㄱ씨의 범죄를 다시 의사로 활동하면 안되는 엄중한 잘못으로 본 것이다.

이에 반발한 ㄱ씨는 행정소송을 냈다. ㄱ씨는 “복지부가 면허 재교부 신청을 불승인하면서 처분의 근거와 이유를 제시하지 않아 ‘이유제시의무’를 위반했다. 면허가 취소된 지 3년이 지나 재교부 제한 기간이 지났으며, ‘개전의 정’이 뚜렷해 재교부 신청 요건을 모두 충족했다”고 주장했다.

1심은 ㄱ씨의 주장을 전부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ㄱ씨는 형사재판 과정에서 유족에게 2억5천만원을 공탁하고 민사소송에서 손해배상금으로 3천만원을 지급했다. 지난 10년간 의료기기 판매업, 변호사 사무실 사무장 등 많은 직업 전전하며 후회와 참회의 시간 보냈으며, 출소 이후 수년간 매주 비영리민간단체에서 무료급식 자원봉사활동을 하는 등 ‘개전의 정’이 뚜렷하다”며 “비록 중대한 과오를 범했지만 개전의 정이 뚜렷한 의료인에게 한 번 더 재기의 기회를 부여해 자신의 의료기술이 필요한 현장에서 봉사할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 의료법의 취지와 공익에 부합한다”고 판시했다.

이같은 법원의 결정에 시민사회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나영명 보건의료노조 기획실장은 “복지부에서도 이례적으로 불승인한 사안을 법원이 허가해준 것은 문제다. 의사의 업무는 환자의 건강, 생명과 직결되는 일인만큼 중대 범죄를 저질렀거나 형사법을 위반하는 등의 경우에는 의사 자격정지나 면허정지를 엄격하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최민영 기자 my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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