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한일관계 개선, 서두르되 면밀해야

기자 2022. 5. 30.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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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보영 국제부장

美 바이든 亞 순방 초점은 일본

日, FOIP·IPEF 선제적 제안 속

동북아서 ‘현상 변경’ 가능성

尹 대일 정책은 원론적 입장뿐

원칙·소통·협상 단계 수립 필요

반일 감안해 ‘천천히 서두르길’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이후 처음 열린 한·미 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치렀지만, 지난 20∼24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 하이라이트는 단연 일본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한국을 먼저 들러 2박 3일 머물기는 했지만, 일본에서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발족 선언, ‘쿼드’(미국·일본·호주·인도 4자 안보협의체) 정상회의까지 주목도 높은 행사를 잇달아 개최했다. 일본은 바이든 행정부의 대아시아 전략인 인도태평양전략(FOIP)뿐 아니라 이번 IPEF 발족에도 사실상 공동제안국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의 ‘코너스톤(주춧돌)’ 역할이 더욱 커지고 있는 셈이다.

특히,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지난 26일 자강(경쟁력·혁신·민주주의 투자)·동맹(동맹 및 파트너와의 제휴 강화)·경쟁(안보·기술 등에서 중국과의 경쟁)의 3대 대중 전략을 발표한 만큼, 바이든 행정부는 아시아 핵심 동맹인 한·일과의 양자 및 3자 협력 강화를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 역시 미·일 동맹 강화를 명분으로 개헌을 통한 ‘정상국가화’를 위한 경로를 착착 준비하고 있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는 지난 23일 미·일 정상회담에서 북한·중국 대응을 명목으로 방위비 대폭 증강을 사실상 용인받았다. 오는 7월 참의원 선거 승리 뒤 현재 국내총생산(GDP) 대비 1%인 방위비를 2%까지 증액하고, 적기지 반격 능력 보유를 추진할 가능성도 농후하다.

아시아에서 이처럼 사실상 ‘현상 변경’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의 대아시아 정책은 전반적으로 모호하다. 특히, 한·미 관계를 뒷받침해줘야 하는 한·일 관계에 대한 구체적 내용이 안 보인다. 지난 3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윤석열 정부 110대 국정과제’에는 ‘셔틀외교 복원을 통한 신뢰 회복’ ‘김대중·오부치 선언 정신 발전적 계승’ 등 원론적 이야기만 담겨 있다. 지난 21일 발표된 한·미 정상 공동성명에도 미국이 요구하는 한·일 관계 개선과 관련해 ‘북한의 도전에 대응하고, 공동의 가치를 지지하고, 규범에 기반한 국제질서를 강화하기 위한 한·미·일 3국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고 간단히 적었는데, 딱 1년 전 문재인 정부의 한·미 정상 공동선언 문구와 큰 차이가 없다.

정부 출범 초기인 만큼, 대일 정책 리뷰에 시간이 필요하지만 국내 상황이 녹록지 않다. 2019년 7월 1일 한·일 관계 경색의 직접적 원인인 일본의 대한 수출 규제 조치의 배경이 된 강제징용에 관여한 일본 기업의 국내 자산 현금화 절차는 이르면 올여름 본격화할 가능성이 있다. 한·일 위안부 합의를 둘러싼 파문도 재점화할 태세다. 최근 공개된 외교부 문건에 따르면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과정에서 외교부 당국자가 당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대표였던 윤미향 의원에게 합의 내용을 미리 알린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의 한·일 관계 개선 의지는 매우 긍정적이지만,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및 파기의 교훈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똑같은 사태가 재연되면 국제적으로는 한국이 국가 간 합의를 수차례 파기하는 국가라는 오명이 굳어지며, 국내적으로도 반일 시위 격화에 따라 정권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 들리는 윤석열 정부의 ‘큰 틀의 한·일 관계 정상화 합의→ 한·일 정상회담→ 연내 현안 일괄 해결’ 시나리오가 우려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선 첫째, 한국 외교의 목표와 대일 정책 기조의 확립을 한·일 관계 개선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정쟁의 가장 좋은 소재인 반일 파도를 넘는 것은 깊이 있는 철학과 튼튼한 원칙이다. 둘째, 실패로 판정 난 문재인 정부의 ‘피해자 중심주의’를 넘어서는 위안부·강제징용 피해자들과의 소통 강화 및 지원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셋째, 물밑·비밀 협상 전통이 강했던 한·일 협상 역시 가급적 투명하게 전환해야 한다. 국제질서 전환기에 직면한 한·일이 과거사를 넘어 글로벌 협력 관계로까지 발전해야 한다는 공감대 속에서 양국 국민의 마음을 사는 협상이어야 한다. 이 모든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신속성’이 아니라 ‘주도면밀’이다. 윤석열 정부에 ‘천천히 서두르라(Festina lente)’는 라틴어 경구를 되새겨 볼 것을 권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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