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완화 선봉에 섰던 김승희 내정자..'검증 안된 신약 사용' '임상시험 비용 환자 전가' 추진
김승희 보건복지부 장관 내정자가 과거 식약처장과 국회의원으로 재직하면서 줄기세포 치료제 등의 허가 절차를 생략하고 검증되지 않은 신약을 환자에게 판매할 수 있게 하는 등 제약·의료기기 회사의 이익과 밀접한 보건의료 분야의 규제 완화를 다수 추진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환자의 안전보다 관련 업계의 이익에 부합하는 행보를 보인 인물이 복지부 수장으로 적합하느냐는 비판이 나온다.
31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김 내정자는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비례대표이던 2016년 ‘첨단재생의료의 지원 및 관리에 관한 법률안’(첨단재생의료법)을 대표발의했다. 첨단재생의료란 인간의 세포·조직·장기를 대체하거나 재생시켜 원래의 기능을 할 수 있도록 복원시키는 의료기술로, 줄기세포 등 세포 치료, 유전자 치료, 조직공학 치료 등이 포함된다. 김 내정자는 당시 “첨단재생의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고, 실제 재생의료라는 명칭을 붙인 세포치료 등이 일부 병원에서 시행되고 있지만 이에 대한 법적 근거가 모호하다”며 “의학적 안전성 등도 담보되기 어려워 국가 차원의 관리가 필요하다”고 제안 이유를 밝혔다.
그런데 당시 발의된 법안 내용을 보면 ‘첨단재생의료 실시’에 대해 오히려 약사법과 의료기기법상 허가·신고·임상시험 승인 절차를 생략한다고 규정했다. 통상 일반 의약품·의료기기는 식약처의 품목·제조허가를 받고 임상시험 승인 절차를 거쳐 개발되는데, 줄기세포 치료제 등은 이같은 절차를 거치지 않고 환자에게 적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대신 첨단재생의료심의위원회를 둬 ‘안전성, 의학적 적합성 등에 관한 심의 업무’를 수행하게 했는데, 당시 보건의료 시민단체들은 이 심의 업무가 “유효성에 대한 평가 없이 임상 1상 정도의 안전성만 검토하는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이마저도 ‘위험이 매우 낮은 경우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한 기준에 맞는’ 경우엔 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치지 않도록 하고, 시판 후 장기추적조사도 ‘실시할 수 있다’는 임의조항으로 들어갔다.
특히 임상시험 비용을 환자에게 전가시킬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 대표적인 독소조항으로 꼽혔다. 심의위원회 심의사항에 ‘재생의료 실시에 있어 연구대상자 및 환자가 부담하는 비용의 적절성’을 포함해, 임상시험의 비용을 환자가 부담할 수 있게 했던 것이다. 이 경우 환자가 비용을 부담하면서 충분히 입증되지 않은 실험약을 처방받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해당 법안은 당시 첨단재생의료와 관련해 발의된 다른 법안들과 병합돼 2019년 국회를 통과했다. 최종안엔 김 내정자 발의안의 독소조항 상당 부분이 빠졌다. 전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세포치료제나 유전자치료제는 아직 연구가 많이 안 돼있어서 부작용 위험이 높아 더욱 신중해야 하고 제대로 허가 받은 제품만 환자한테 사용해야 한다는게 학계나 관계 기관들의 권고”라며 “별도로 잘 관리하는 법을 만들겠다고 (김 내정자가) 얘기를 했는데 실제로는 임상시험 승인 등 절차를 간소화해 더 빨리 허가하도록 하는 내용이었다”고 지적했다. 환자의 안전보다 관련 업계의 이익을 더 고려했다는 것이다. 전 국장은 “통과된 법안도 문제가 있는데 김 내정자가 냈던 법안이 제일 문제가 많았다”고 했다.
김 내정자는 식약처장을 하던 2015년 6월에는 난치병 환자 등에게 연구개발 중에 있거나 허가 신청 중인 ‘혁신의약품’을 허가해주는 ‘의약품 안정공급 지원 특별법’ 입법을 시도하기도 했다. 이 법 역시 검증되지 않은 신약을 환자에게 적용하고 판매까지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으로 당시 보건시민단체들의 비판을 받았다. 해당 법은 결국 통과되지 않았다. 같은 해 식약처에서 ‘웰니스 기기’ 분류를 신설해 위해도가 낮은 개인용 건강관리 목적 제품은 허가받지 않고 출시하도록 하는 정책도 시행했다. 정확도가 낮은 건강·만성질환 관리 기기들도 쉽게 판매될 수 있도록 규제를 푼 것이다.
시민단체들은 환자의 안전을 도외시하고 제약회사·의료기기 업계에 이익을 주는 규제 완화를 해온 김 내정자에 대한 지명을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건강권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은 지난 30일 성명을 내고 “김 내정자가 정부와 국회에서 발휘해온 전문성과 쌓아온 경륜이란 다름 아닌 의약품·의료기기의 안전과 효과를 평가하는 데 필요한 허가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었다”며 “기업규제 완화와 의료 민영화에 특화된 복지부 장관 지명을 철회해야 한다”고 밝혔다.
민서영 기자 min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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