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중앙일보

[중앙시평] 나라의 비약을 생각한다

입력 2022. 06. 01. 00:34 수정 2022. 06. 02.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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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인류사에 대한 깊은 통찰 가운데 절대적 경계, 절대적 전초라는 말이 존재한다. 유례가 많지 않은 극히 희귀한 경우다. 대륙과 해양, 제국들, 문명들, 체제들, 종교나 이념들 사이에 존재하는 지역이나 국가를 경계·전초, 또는 교량·가교라고 할 때 이 요소들이 한두 개가 아니라 온통 한꺼번에 중첩된 사례를 절대적 경계라고 부른다.

현대 한국 사례가 정확히 여기에 해당된다. 한국은 대륙과 해양 사이에 위치할 뿐만 아니라, 미국과 중국, 동양과 서양,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자유주의와 비자유주의, 게다가 두 한국이 가공할 세계 내전인 한국전쟁을 치른 전형적인 절대 경계국가다. 하여 지금 우리 외교가 직면한 난관이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하게 된다.

「 한국은 절대 경계이자 절대 전초
최악의 위험과 최고의 기회 공존
외교가 초고속 발전의 제일 동력
미·중 대결 하 외교비약 가장 절실

오늘날 한중 무역은 전체 한국 무역의 4분의1에 달한다. 반환 이후 중국으로 편입된 홍콩과의 무역까지 합칠 경우 이는 더 크게 늘어난다. 무역수지는 더욱 그러하여 전체 무역수지에서 차지하는 대중 흑자(7000억 달러)는 단연 압도적이다. 한중 수교라는 외교행위의 경제적 효과는 절대적이었던 것이다. 홍콩(5000억 달러)까지 합칠 경우 한중 흑자는 물경 1조 2000억 달러에 달한다. (홍콩교역은 대부분 대중 재수출이다.)

한미 무역은 더욱더 그러하였다. 미국의 점령으로 세계 자유주의 국제질서와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로 편입된 초기의 결정적 위치설정, 그리고 미국의 원조로 지탱한 전후 초반을 제외하더라도, 건국 이래 1965년까지 한미 교역과 지원이 차지하는 액수와 비중은 절대적이었다. 그러나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교역 선두는 한미가 아니라 한일로 바뀌며(65년 39% 대 34%에서 66년 37% 대 38%), 이 순위는 박정희시기 내내 지속되었다(1966~1979). 그러나 한국경제가 개방경제를 지향한 뒤에는 다시 미국이 1위를 차지하여 중국에게 1위를 내줄 때까지 지속하였다(1980~2004). 2004년 이후 지금까지는 변화가 없다.

한미, 한일, 한중 외교관계가 교역의 관계·규모·비중·순위에 그대로 반영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놀라운 수치요 병진이다. 우리가 위태로운 절대적 경계에서 질풍노도처럼 선진국으로 질주해온 핵심 원동력의 하나는 바로 외교였던 것이다. 앞의 객관적 통계를 통하여 외교가 무역이고 정치가 경제이며, 우호관계가 곧 이익이며 번영이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이 전체 통계는 외교·안보와 경제·무역이 분리되기 어렵다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외교·안보·평화가 경제·무역·이익인 것이다.

외교가 개척한 지평을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기업과 민간영역이 갖추고 있었다는 점 역시 결정적이었다. 오늘날 한국은 반도체·가전·자동차·조선·배터리를 포함해 세계표준과 가치사슬의 거의 정점에 올라와 있다. 의료·문화·예술·스포츠 영역도 같다. 기술·국방·무역·국력은 세계 선두권으로서 전후 최고 순위이며, 외국의 강점과 전쟁을 체험한 국가로서는 유일한 선진국 진입사례다. 외교의 방향과 전략이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한 민간 영역의 창의와 자율, 선도성과 확장성과 서로 어우러진 결과다.

숨가쁜 단기 위기와 격동은 있었지만 한국의 세계위상과 경제발전과 선진국 진입의 한 중심 기축이 외교의 대성공이라는 점은 너무도 분명하다. 한미동맹 이후 혼신의 힘을 다해 마치 부채살과 공작날개처럼 미국·일본·(중동)·(소련)·중국·세계로 펼쳐지는 예술같은 외교를 구현하였던 것이다. 물론 근간 기축으로서 한미동맹이 있었기에 한일, 한중수교의 외교 공간이 가능하였음은 재론을 요하지 않는다. 한미동맹이 있었기 때문에 한중수교가 가능했고, 한중수교로 인해 한중교역을 통한 막대한 무역이익이 가능했던 것이다.

역사상 한반도에 존재했던 나라들이 세계의 어느 지역보다도 전쟁이 적은 장기 평화와 초장기 국가존속이 가능했던 제일 이유는 당대의 제국들과 견주어 결코 낮지않은 외교역량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해준, 거의 제국 수준에 도달한 지식과 교육, 안목과 문화 수준 때문이었다. 오늘날 우리들 평화의 원인이자 결과인 우리의 경제·기술·지식·문화를 생각하매 과거 역시 당연한 조합이었다. 외교의 실패는 자주 전쟁이었다.

나라의 비약을 이루었던 거인들을 떠올려본다. 영구 평화국가를 꿈꾸고 안출한 이순신은 말한다. “출전하여 만 번 죽을지라도 한 번 살려는 계책을 돌아보지 않으련다(出萬死 不顧一生之計).” 대륙의 변경국가에서 세계와 해양을 품는 평화·교량국가를 향한 방략을 제안한 민영환은 “천 번을 생각하면 반드시 한 번은 얻을 것(愚者千慮 必有一得)”이라고 언명한다. 한국을 대륙에서 해양으로, 변방에서 세계로 나아가게 한 초기 중심인물 이승만은 “대한이 오늘날 이 지경을 당한 것을 전부 종합하여 볼 때, ‘청나라’ ‘일본’ ‘러시아’의 해악을 차례로 받은 까닭이나… 다 우리가 스스로 불러들여 그들의 욕심을 키워줘 이렇게 만든 것”이라고 맹성한다.

아! 셋 모두 모골이 송연한 절대 마음이다. 외교·안보·평화문제는 천 번, 만 번을 생각하자. 그리하여 절대적 경계에서 다시 한번 절대적 비약을 꿈꿔보자.

박명림 연세대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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