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시각] 국격과 배틀필드

박소연 입력 2022. 6. 2. 14:32 수정 2022. 6. 3. 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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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하나 바꿨는데 대한민국 국격이 바뀌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한미 정상회담을 이렇게 평가했다.

대한민국의 국격, 나라의 품격은 정말 높아졌을까.

한미 정상회담 이후 기업들의 평가는 집권 여당 대표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이준석 대표의 '국격' 발언이 무책임해 보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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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하나 바꿨는데 대한민국 국격이 바뀌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한미 정상회담을 이렇게 평가했다. 대한민국의 국격, 나라의 품격은 정말 높아졌을까. 한미 정상회담 이후 기업들의 평가는 집권 여당 대표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한 대기업 상장사 임원은 "IPEF(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 가입 이후 걱정이 많은데 겉으로 티는 못 내고 있다"며 "배터리 소재는 중국에서 수입하는 비중이 높아 갑자기 수출 규제라도 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솔직히 난감하다"고 했다. 미국으로선 배터리 생산 강국인 한국을 IPEF에 가입시켜 안전한 공급망을 확보했지만, 배터리를 만들어야 하는 우리 기업들은 원재료 공급 국가인 중국과 거리가 멀어졌다는 설명이다. 만약의 보복에 대비해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소재 공급망 리스크를 검토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이마저 새 정권과 강대국의 눈치를 보느라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분위기다. 이는 비단 배터리 산업 분야만의 문제는 아니다.

‘높아진 국격’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을 들어보자. 한 경제단체 임원은 "이번 바이든 방한으로 한반도에 미·중 무역 갈등의 뚜렷한 전선이 형성돼 버렸다"고 했다. 미국과 중국이 자원과 산업을 두고 다투는 패권전쟁에서 한반도가 ‘배틀필드(battlefield·싸움터)’가 됐다는 것이다. 바이든이 일본보다 먼저 한반도를 찾아 한국의 IPEF 가입을 과시하면서다. IPEF 합류가 국익을 위한 부득이한 결정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 사이에 낀 우리로선 바이든의 방한과 맞물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보다 조용히 합류하는 것이 나았을 것이다. 이준석 대표의 ‘국격’ 발언이 무책임해 보이는 이유다. 중국은 IPEF 출범으로 향후 세계 공급망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커졌다. IPEF의 실체가 구체화할수록 중국은 날카로운 반응을 보인다.

물론 IPEF 가입과 관련해 중국의 보복을 크게 우려할 필요가 없다는 해석도 있다. 중국으로선 과거 경제 보복 조치를 할 때 내세웠던 안보 위협을 내세우기엔 명분이 약한데다 IPEF 13개국이 있는데 한국만 보복하기 어렵다는 점을 근거로 한다. 하지만 보복의 명분은 만들기 나름이다. 과거 사례를 보면 2019년 일본 정부는 우리 대법원의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판결에 따른 보복 성격으로 수출규제를 시행했지만, 표면적으로는 한국의 수출관리에 부적절한 사안이 있기 때문이라고 핑계를 댔다. 중국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 당시 겉으로는 안보 위협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한한령(한국제한령)을 내리면서 유통·화장품·자동차 등 전혀 무관한 분야에 피해를 줬다.

중국이 어떤 명분으로든 우리 핵심 산업의 급소를 노린다면 결과는 더욱 위협적일 것이다. 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미국·중국·일본과의 교역 중 핵심 수입품목의 75.5%가 중국산이다. 수입 의존도 90%가 넘는 228개 품목 중 무려 172개에 달하는 규모다. 바이든의 방한 이후 정부와 여당이 ‘꿈보다 해몽’으로 우쭐한 사이 기업 현장의 현실은 더욱 팍팍해졌다. 대규모 미국 투자를 약속하고 뒤로는 중국의 보복 리스크에 떨고 있는 기업들의 모습, 우리 국격의 민낯이다. 정부와 여당은 ‘자화자찬’을 거두고, 우리 산업의 급소를 밀도 있게 연구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의 전쟁터에 우리 기업들이 볼모로 잡혀있다.

박소연 기자 mus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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