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용기 있는 자여, 알맹이만 가지시라" 알맹상점의 좌충우돌

한겨레 입력 2022. 6. 4. 10:10 수정 2022. 6. 10.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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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하지만 말자 ."

두 아이를 키우는 주부 래교씨는 2018년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붙은 안내문을 보고 충격받았다 . '지저분한 비닐은 못 가져간다 '고 했다 . 중국에서 쓰레기 수입을 금지하며 한국에서 '쓰레기 대란 '이 일어났다 . "분리배출만 하면 다 재활용되는 거라 믿었는데 ." 당시만 해도 포털에 '제로웨이스트 '를 치면 뜨는 게 거의 없었다 . 유튜브로 다른 나라 사례를 찾았다 . 비닐봉지 대신 장바구니를 썼다 . 자기가 해본 걸 유튜브에 올렸다 . 그러다 '현타 '가 왔다 . "버겁더라고요 . 물건을 산 건지 쓰레기를 산 건지 모를 만큼 쓰레기가 쏟아지는데 내가 아무리 재활용 잘해도 소용없겠구나 ." 좌절할 때쯤 , '알짜 '가 됐다 . 알맹 @ 망원시장 캠페인은 자주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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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 커버스토리]세제, 화장품 등 필요한 만큼만..'알맹상점' 세 대표 인터뷰
제로웨이스트 문화 새 길 개척한 '쓰레기 덕후'들의 고군분투
자기 용기 들고 온 손님들, 100㎖ 포장 연간 7만5천개 줄여
손님이 가져온 용기에 올리브유, 식초 등을 담아 파는 코너. 페어드스튜디오 윤지원

“망하지만 말자.”

2020년 6월 서울 망원시장 한편에 제로웨이스트숍 ‘알맹상점’을 열며 고금숙(45), 이주은(32), 양래교(41) 세 여자는 다짐했는데 속으론 ‘망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 상점은 한국의 첫 리필스테이션이다. 손님을 귀찮게 하는 곳이다. 세제, 화장품 등을 사려면 손님이 용기를 가져와 필요한 만큼 직접 담아야 한다. 30여평짜리 공간 한쪽에선 종이팩 등 ‘쓰레기’를 모은다. 그 옆에는 재활용 촉구 등 캠페인 포스터가 붙어 있다. 어쩌다 대표가 된 ‘쓰레기 덕후’ 세 사람은 손님이 사려고 하면 “진짜 필요한 거냐”며 말리기까지 한다.

안 망했다. 이니스프리 등 기업이 이 작은 가게를 따라 리필스테이션을 내놨다. 최근 책 <알맹이만 팔아요, 알맹상점>을 내며 세 사람이 리필 판매량을 정리해 보니, 지난 한해 이 작은 가게에서 100㎖짜리 용기 7만 5천개 사용을 줄였다. 재활용률이 낮은 플라스틱 병뚜껑, 종이팩 등 8274㎏을 모아 재활용할 수 있는 업체를 찾아 보냈다. 2년 새 제로웨이스트숍은 전국 190여곳으로 늘었고 신념에 따라 상품을 사는 ‘가치 소비’는 트렌드가 됐다. 지난달 24일 망원동 알맹상점에서 세 대표를 만났다 .

‘어쩌다’ 사장…알맹의 시작

환경단체에 다니던 금숙씨는 2018년부터 ‘알맹@망원시장’ 캠페인을 벌였다. 망원시장에서 비닐포장과 플라스틱을 줄이도록 장바구니를 대여하고, 손님이 가져온 용기에 알맹이만 담아 팔도록 가게 사장을 설득했다. ‘시장 라운딩’해야 할 때마다 속이 울렁거렸다. 사장님들이 손사래 한번 치면 위축됐다. 캠페인을 함께하는 ‘알짜’들이 모이고 달라졌다. 주은, 래교씨도 ‘알짜’였다. 이들은 장바구니를 들고 몰려다니며 알맹이만 파는 데 협조한 상인들에게 ‘돈쭐’을 냈다. “선 결제가 최고예요. 카페 사장님 설득할 때는 미리 케이크를 종류대로 사서 쫙 깔아요.”(금숙) “그때 우리 진짜 많이 먹었지.”(주은) “사장님 반응이 안 좋아도 같이 다니니 위안이 됐어요.”(래교)

한국 최초 제로웨이스트 리필스테이션 ‘알맹상점’의 양래교, 고금숙, 이주은(왼쪽부터) 대표. 페어드스튜디오 윤지원

인천에 사는 주은씨는 용기를 싸 와 망원시장에서 장을 봤다. 2019년부터다. 영양사였던 그는 그해 눈을 다치면서 전업주부가 됐다. 미니멀라이프를 꾸려보려 짐 정리를 했다. “짐을 내 집 밖으로 내보내면 끝인 건가?” 공부하다 장볼 때 용기를 들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환경운동은 시민단체에서만 하는 건 줄 알았어요. 내가 너무 몰랐구나.” 한 포럼에서 금숙씨를 만났다.

두 아이를 키우는 주부 래교씨는 2018년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붙은 안내문을 보고 충격받았다. ‘지저분한 비닐은 못 가져간다’고 했다. 중국에서 쓰레기 수입을 금지하며 한국에서 ‘쓰레기 대란’이 일어났다. “분리배출만 하면 다 재활용되는 거라 믿었는데….” 당시만 해도 포털에 ‘제로웨이스트’를 치면 뜨는 게 거의 없었다. 유튜브로 다른 나라 사례를 찾았다. 비닐봉지 대신 장바구니를 썼다. 자기가 해본 걸 유튜브에 올렸다. 그러다 ‘현타’가 왔다. “버겁더라고요. 물건을 산 건지 쓰레기를 산 건지 모를 만큼 쓰레기가 쏟아지는데 내가 아무리 재활용 잘해도 소용없겠구나.” 좌절할 때쯤, ‘알짜’가 됐다. 알맹@망원시장 캠페인은 자주 ‘실패했다’. 카페 사장님이 빨대를 치우기로 약속했는데 2 주 뒤 가보면 빨대가 다시 올라와 있었다. 손님들 쓴소리를 견딜 수 없다고 했다. 장바구니를 빌려간 사람들은 비닐봉지에 담긴 물건을 장바구니에 넣었다. 한편 실패하지 않기도 했다. ‘남경반찬’ 사장님은 쓰레기 문제를 담은 포스터를 가게 앞에 붙였다. “캠페인은 의식을 깨우는 거고 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걸 알게 됐죠.”(래교)

알맹상점에서 판매 중인 화장품, 클렌저 등 리필 용품. 페어드스튜디오 윤지원

“어떻게 바꿀 수 있지? 답이 안 보이는 거예요.”(금숙) 그는 비닐봉지 사용을 엄격하게 금지하는 케냐로 떠났다. 비행기값을 아끼려고 타이 방콕을 경유했다. 방콕에서 인터넷에 접속한 날, 그는 곧 태어날 ‘알맹상점’을 보았다. 5층 건물을 통째로 쓰는 방콕 제로웨이스트숍은 세제, 샴푸 등을 말통에 담아 리필했다. 소리쟁이풀을 끓여 샴푸를 만들기도 했던 금숙씨가 바랐던 가게였다.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망원시장에 있는 카페 한구석을 빌려 세제를 담은 말통 5개를 늘어놓았다.

“어려운 일일 줄 몰랐어요.” 20ℓ 말통에 친환경 세제를 공급하겠다는 업체는 없었다. 그는 “인간 끈끈이”처럼 업체에 달라붙어 설득했다. 말통에 달 벨브도 문제였다. 세제 점성에 따라 막혀버리거나 줄줄 샜다. 장사가 잘된 건 아니었다. 그런데 사람이 모였다. “만지고 보는 거 자체로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공간이 거점 역할을 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금숙) 카페에서 쫓겨났다. 이참에 가게를 차려버려? 캐나다 1년 살기를 앞두고 있던 래교씨는 점도 봤다. “이 가게는 우리가 바라던 거였어요. 혼자였다면 못 했을 거 같아요.”(래교) 비영리단체가 아니라 가게여야 했다. “시장 경제에서 자리 잡아야 지속가능하다고 생각했어요. 환경운동으로 먹고살 수 있는 ‘셀프 그린 뉴딜’ 인 셈이죠.”(금 ) 금숙씨의 퇴직금과 래교씨의 주식 투자금이 종잣돈이 됐다. 세 사람은 투자액과 관계없이 일한 시간에 따라 생활임금을 받는다.

요거트, 딸기청 등을 소분해서 구매할 수 있도록 마련해둔 냉장고. 페어드스튜디오 윤지원

가장 어려운 화장품 용기

소분해 포장재에 담은 친환경 선크림을 팔 것인가? 말통 분량으로 사서 소비자들이 필요한 만큼 덜어가게 하려면 업체에 특별 주문을 넣고 테스트를 마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월세도 내고 직원들 월급도 줘야 하는데 말이다. 세 사람은 기다리길 택했다. 여름이 바짝 다가온 지금까지 알맹상점엔 선크림이 없다. 쓰레기를 줄이는 게 원칙이다. 국내 친환경 제품, 일회용이 아닐 것, 유통과정에서 쓰레기가 나오지 않는 물건 등 원칙을 세울 때까지 셋은 다투고 설득했다. “얘기하다 보면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흔들릴 때 서로 잡아줄 수 있는 거 같아요.”(주은)

복병이 있었다. 당연히 스킨, 로션 등을 덜어 팔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러려면 ‘맞춤형화장품조제관리사’ 자격증이 필요했다. 셋은 느닷없이 수험생이 됐다. “수능 언어영역 같았어요.” 금숙씨가 합격해 화장품을 리필할 수 있게 됐다. 자격증 과정은 화장품을 섞어 만드는 데 필요한 지식을 점검하는 절차겠지만, 화장품을 나눠만 파는 데는 별 쓸모 없는 걸림돌이었다. 이런 규제를 완화해달라고 세 사람은 환경부, 식품의약품안전처, 국회 등을 설득했고 올해 조제관리사 없이 샴푸, 린스, 액체비누, 보디클렌저를 리필하는 가게 3곳이 시범운영에 들어갔다. “자기 용기를 들고 찾아와준 손님들 때문에 가능했어요.” 환경부가 한국환경공단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2019년 화장품 용기 7806종 가운데 ‘재활용 어려움’은 64.2%(5011종 )다. 알맹상점에서 2021년 한해 동안 판 화장품은 4198ℓ로 100㎖ 플라스틱 병으로 환산하면 1년 동안 플라스틱 병 4만개를 아낀 셈이다.

알맹상점의 좌충우돌을 엮어 낸 책 <알맹이만 팔아요, 알맹상점>. 페어드스튜디오 윤지원

제품 공급도 문제였다. 20 ℓ짜리 말통으로 공급해 달라 하면 최소 주문량이 300㎏이란 답이 돌아왔다. 이 양을 유통기한 안에 팔아야 했다. 제로웨이스트 가게라면 다 겪을 만한 일이었다. 알맹이 도매를 시작한 이유다. 다른 속셈도 있었다. “캠페인을 같이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금숙) 이렇게 제로웨이스트숍 150곳이 연결돼 ‘도모도모 모임’을 만들었다. 천연수세미를 만들고 양말목을 재활용하는 창작자들도 모였다. 작은 ‘알맹’ 생태계가 만들어진 셈이다.

‘쓰레기 덕후’들의 작은 승리

‘알맹’ 생태계의 핵심은 ‘불편’을 찾아다니는 손님들이다. 이 손님들은 종이팩을 잘라 펼친 뒤 깨끗이 씻고 말려 이고 지고 온다. 종이팩(일반팩, 멸균팩 )은 종이가 아니다. 재활용률은 15.8%다. 일반팩은 화장지, 멸균팩은 페이퍼타월 원단으로 쓸 수 있지만 버려진다. 알맹상점 한쪽에 종이팩을 모으는 이유다. 플라스틱 병뚜껑, 쓰다 만 크레용, 폐카트리지 등도 모아 재활용을 할 수 있는 업체에 보낸다. “계룡산에서 여행 가방 가득 뚜껑을 담아 오신 분도 계셨어요. 매번 감동이죠. 저희는 사실 아무도 안 올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참여해주는 사람들을 보면) 가능하구나, 의지가 생겨요.”(래교)

알맹상점은 커뮤니티 자원회수센터 역할도 하고 있다. 브리타 정수기 폐필터, 폐카트리지, 플라스틱 병뚜껑 등을 모아 재활용 가능한 곳으로 보낸다. 페어드스튜디오 윤지원

변화는 가능했다. 플라스틱 병뚜껑이 증명했다. 한가지 재질이 아니면 재활용이 어려운데 뚜껑 안에 고무 패킹, 실리콘 따위가 들어 있곤 했다. 탄산수 ‘씨그램’ 병뚜껑이 그랬다. 주은, 래교씨는 ‘카카오 프로젝트100’에 참여해 100명을 모았다. 씨그램 본사인 한국코카콜라 고객센터에 100명이 뚜껑을 바꿔달라 요청했다. 이제 씨그램 뚜껑은 재활용이 가능하도록 한가지 재질로 만든다. “미션을 함께했던 분들이 환호성을 질렀어요.”(래교)

그중에서도 금숙씨가 가장 짜릿하게 기억하는 건 정수기 회사 브리타코리아가 재활용 시스템을 마련하겠다고 이메일 답장을 보냈을 때다. 2020년 알맹상점, 십년후연구소, 여성환경연대는 ‘브리타 어택’을 벌였다. 브리타는 미국, 캐나다, 영국,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직접 필터를 수거해 가면서 한국에서만 나 몰라라 했다. 152일 동안 1만4546명이 서명하고 폐브리타필터 1500개가 모였다. 이제 브리타코리아 홈페이지에서 폐필터 회수 신청을 할 수 있다.

재활용이 어려운 플라스틱 병뚜껑을 모아 만든 고리들. 페어드스튜디오 윤지원

지난해 5월부터 알맹상점은 ‘멸, 종, 위기’(멸균팩 종이팩 위기 탈출의 준말)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올해 1월 환경부는 ‘종이팩 분리배출 시범사업’을 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지자체에서 시스템을 갖추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도모도모 모임이 움직였다. 229곳 지자체에 물었더니 156곳 (68%)이 종이팩 수거 체계를 갖추지 못했다. “쓰레기 문제를 개인에게만 전가하지 말고 기업과 정부에 재활용 시스템을 갖추라고 요구하는 거예요.”(금숙)

알맹상점은 지난해 7월 2호점 서울역 리(re)스테이션을 열었다. 다회용컵을 쓰는 비건 카페를 실험하고 있다. “워라밸은 예전에 무너졌다”는 세 사람, 돈을 벌었을까? “월세 내고 매니저 6명 월급 밀리지 않고 나가고 저희 생활임금 받은 게 남은 거죠. 아직 투자금 회수도 못 했어요. 그래도 작은 사람들이 모여 작은 승리들을 만들어가고 있으니 차리길 잘했다 생각해요.”(금숙)

알짜들의 ‘어택’ 히스토리

2018~2019년/ 알짜@망원시장

시장에서 플라스틱·비닐봉지 사용을 줄이자고 ‘알짜’들이 모였다.

2020년 8~12월/ 브리타 어택

브리타코리아에 폐필터 재활용을 요구했다.

2021년 1~6월/ 화장품 포장재 어택

‘포장재 재질·구조 등급 표시제’를 시행하면서 환경부가 2025년까지 생산된 제품 포장재의 10% 이상을 회수하면 ‘재활용 어려움’ 표시를 안 해도 되도록 행정고시를 한 데 대한 반발로 시작했다. 화장품 포장 용기 8천개를 모아 자원봉사자 100명이 일일이 재활용 가능 여부를 확인했다. 그중 18%만 재활용이 가능했다. 빈 병을 화장품 회사에 보내 재활용, 재사용을 촉구했다.

2021년 5월~현재/ 멸.종.위기

종이팩 재활용 시스템을 마련하라고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김소민 칼럼니스트 monduck201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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