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K] 원숭이두창 확산은 사전에 계획된 음모다?

임주현,최유리 입력 2022. 6. 8. 07:00 수정 2022. 6. 22.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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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전 세계적으로 퍼지고 있는 원숭이두창은 사전에 계획된 음모다"
"계획에 따르면 향후 18개월간 30억 명이 감염되고 사망자는 최고 3억 명에 이른다"
"지금 퍼지고 있는 바이러스는 일반 두창 바이러스보다 전염력과 살상력을 강화·조작한 것이다"

최근 인터넷 공간에서 글과 영상을 통해 퍼지고 있는 내용입니다. 계획된 시나리오에 따라 원숭이 두창이 올해 5월 15일 퍼지기 시작해 6월 5일부터 본격적인 감염이 시작되고 전 세계적으로 30억 명이 감염돼 총 2억 5천만 명이 사망할 것이라는 게 주장의 골자입니다.

일부 세계 지도자와 백신 기업들이 백신을 팔아먹기 위해 이런 계획을 세우고 의도적으로 원숭이두창 바이러스를 퍼뜨렸다는 겁니다. 실제로 5월 들어 세계 각지에서 감염자가 나오면서 유포 글 내용이 들어맞고 있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글 갈무리


나름의 근거도 제시합니다. 미국의 싱크탱크인 '핵위협방지구상(NTI-The Nuclear Threat Initiative)'이 지난해 11월 발간한 보고서 내용을 근거로 내세웁니다.NTI는 핵과 신기술, 생물학적 위협을 경고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국제 비영리단체입니다.

아프리카 풍토병이었던 원숭이두창이 이례적으로 아프리카 밖으로 확산하는 상황에서 나온 주장인데요. 믿을 만한지 따져봤습니다.

■ "미리 계획했다"는 NTI 보고서 내용 살펴보니

NTI가 발간했다는 해당 보고서는 실존합니다.(보고서 주소 : https://www.nti.org/analysis/articles/strengthening-global-systems-to-prevent-and-respond-to-high-consequence-biological-threats/)

전 세계적으로 30억 명이 감염돼 총 2억 7,000만 명이 사망할 것이라는 내용도 분명히 담겼습니다. 일부 영상과 글에서는 "2억 5,000만 명이 사망한다"고 돼 있지만 보고서에 적시된 수는 2억 7,000만 명입니다.

하지만 현 상황을 과학적으로 예측한 내용이 전혀 아닙니다. 각 대륙을 대표하는 19명의 고위급 지도자와 전문가 그룹이 모여서 토론한 일종의 '모의 훈련' 시나리오입니다.

NTI는 지난해 3월 글로벌 국제안보포럼인 '뮌헨안보회의'와 협력해 중대한 생물학적 위협을 줄이기 위한 '모의 훈련(tabletop exercise)'을 진행했습니다. 모의 훈련은 실제 상황을 가정해 실시하는 훈련입니다. 훈련을 통해 특정 비상 상황에서 각자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미리 준비할 수 있습니다.

이는 가상의 시나리오를 기초로 합니다. 다시 말해 실제 상황이 아닌 가상의 극단적인 상황을 설정해놓고 대응 연습을 한 겁니다.

온라인으로 진행된 ‘모의 훈련’ 모습


당시 NTI는 인구 2억 5,000만 명의 가상 국가 '브리니아(Brinia)'에서 원숭이두창 변종 바이러스가 이례적으로 확산한 상황을 '설정'했습니다. 특히 해당 바이러스에 대한 효과적인 치료법이나 백신이 없어 주변 국가로 급속히 퍼져나가 전 세계 2억 7,000만 명이 사망하는 상황으로 '가정'했습니다. 기존보다 강력해진 변종 바이러스는 브리니아와 오랜 분쟁 관계에 놓여있던 가상의 인접국 '아르니카(Arnica)'의 테러 그룹이 만들어 퍼뜨린 것이었습니다.

NTI는 보고서에서 이런 극단적인 상황을 설정한 것에 대해 "세계적인 재앙은 현대 생물학 도구를 누군가 고의적으로 오용하거나 의도치 않은 실험실 사고 등에 의해서도 야기될 수 있다"면서 "그런 상황까지도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하는 것이 국제 사회 모두를 위한 인도주의적 책무"라고 강조했습니다.

인터넷에 퍼진 주장은 이 가상훈련 시나리오를 누군가 과학적 예측치인 것처럼 가장해 퍼뜨린 것으로 보입니다. 언뜻 보면 사실처럼 보이게 하는 전형적인 '가짜뉴스', 허위조작정보입니다.

■ NTI "실제 원숭이두창 확산은 순전히 우연의 일치"

그런데 이런 허위·조작정보는 국내에서만 유통된 게 아닙니다. 해외에서는 세계보건기구(WHO)가 원숭이두창의 확산을 경고한 지난달부터 이미 퍼졌습니다. NTI의 모의 훈련 시나리오와 WHO의 경고가 시기적으로 맞아떨어지면서 국내외적으로 허위조작정보가 유통되기 좋은 환경이 조성된 셈입니다.

그러자 NTI는 최근 성명서를 내고 "현실 속 원숭이두창 발병이 가상의 시나리오 내용처럼 빠르게 확산하거나 그렇게 높은 치사율을 유발할 가능성은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성명서 주소: https://www.nti.org/news/nti-statement-and-frequently-asked-questions-regarding-the-nti-munich-security-conference-2021-tabletop-exercise-on-reducing-high-consequence-biological-threats/)

모의 훈련 대상을 원숭이두창 바이러스로 정한 이유에 대해서는 "시나리오에 그럴듯하게 맞는 병원체가 필요해 전문가 그룹이 제공한 다양한 옵션 중에 SARS-CoV-2(코로나19) 바이러스와 다른 특징을 가진 원숭이두창을 선택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원숭이두창은 DNA 바이러스로, RNA 바이러스인 코로나 19와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NTI는 그러면서 원숭이두창이 최근 실제로 확산하는 상황에 대해 "이미 지난해 영국, 미국에서도 확인된 바 있고 지난 수년 동안 관련 정보가 축적돼 왔다. 현재 여러 국가에서 원숭이두창이 실제로 발생하고 있는 것은 순전히 우연의 일치"라고 강조했습니다. 이미 수년 전부터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던 원숭이두창 바이러스가 우연히 시나리오가 설정한 기간과 맞아떨어졌다는 설명입니다.


■ 해외 언론도 검증…관련 내용 모두 "사실 아냐"

해외 유수의 언론들도 팩트체크 기사를 통해 인터넷 공간을 떠도는 관련 루머를 검증했습니다.

영국의 로이터와 BBC는 "NTI가 원숭이두창 발병을 사전에 계획했다고 볼만한 증거가 없다"고 전했습니다. 미국 3대 팩트체크 기관으로 꼽히는 폴리티팩트도 해당 주장을 거짓(False)으로 판정했습니다.

프랑스 방송사 ‘France 24’ 팩트체크 방송 화면


프랑스 방송사 등 각국의 여러 매체도 마찬가지 결론을 내놨습니다. 근거 없는 허위·조작정보가 시간 차를 두고 한국으로 유입된 겁니다. 가상의 시나리오를 실제의 현실과 혼동할 필요가 없습니다.

임주현 기자 leg@kbs.co.kr
최유리 SNU 팩트체크센터 인턴기자 ilyoucho@naver.com

임주현 기자 (leg@kbs.co.kr)

최유리 SNU 팩트체크센터 인턴기자 (ilyouch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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