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도 권한도 없는데..윤 대통령 "북 원점 타격" 무슨 수로?

권혁철 2022. 6. 10.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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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정치BAR_권혁철의 안 보이는 안보
2010년 천안함 이후 7년간 '원점타격' 공언
표적 탐지 능력, 전작권 없어 실행 어려워
북한군 포격으로 남북간 긴장감이 높아지던 2015년 8월21일 오후 서부전선의 한 부대 벙커에서 포신이 북쪽을 겨냥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 사진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9일 천안함, 제2연평해전, 연평도 포격전, 북한 목함지뢰 사건 장병과 유가족 등 20명과 점심식사를 하며 “연평도 포격처럼 북한이 도발하면 원점 타격하겠다”고 했다. 이날 간담회에서 한 유가족이 ‘연평도 포격 도발에 대해 북한의 사과를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묻자 윤 대통령은 “지금 만약에 그런 일이 벌어지면 사과가 필요한 게 아니라, 군 매뉴얼대로 원점 타격을 하면 된다”는 취지로 답했다고 한다.

원점 타격은 2010년 천안함 사건 이후 이명박 정부가 처음 꺼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한반도 군사적 긴장이 높아질 때면 원점타격을 호언 장담했지만 결국 한번도 실행하진 못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도 못한 원점타격을 윤석열 정부는 할 수 있을까.

원점 타격은 도발원점, 지원세력, 지휘세력까지 타격한다는 개념이다. ‘도발 원점’은 한국을 공격하는 부대의 인원과 장비를 일컫고 ‘지원세력’은 탄약이나 연료 등을 지원하는 부대를 말한다. 지휘세력은 군사작전의 지휘부로, 연평도 포격전의 경우라면 황해도 해주에 있는 북한군 4군단 사령부가 된다.

원점 타격은 천안함 사건 이후 공식화한 ‘적극적 억제전략’에 바탕을 두고 두고 있다. 2010년 5월24일 이명박 대통령은 대국민담화에서 “대한민국은 앞으로 북한의 어떠한 도발도 용납하지 않고 적극적 억제 원칙을 견지할 것이다. 앞으로 우리 영해·영공·영토를 무력 침범한다면 즉각 자위권을 발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뒤 이명박 정부는 북한 도발에 대한 응징 범위를 공격원점 타격에서 점차 지원세력 타격, 지휘세력 타격까지 확대했다.

2010년 11월 연평도 포격전 이후 김관진 당시 국방부 장관은 “추가 도발이 있을 경우 북한의 포격 원점은 물론 지휘부와 지원세력까지 응징하겠다”고 말했다. 원점 타격을 군사적으로 뒷받침하려고 이명박 정부는 육상의 군사분계선(MDL)과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 교전수칙과 작전개념을 바꾸고 원점 타격을 할 수 있는 무기들을 대거 수입했다. 이명박 정부 때 임명된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2013년 박근혜 정부 때도 유임되면서 원점 타격 기조도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실제 상황에서 원점 타격은 없었다.

2010년 11월23일 연평도에 북한 포탄이 떨어져 연기가 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010년 11월 연평도 포격

2010년 11월23일 오후 2시34분께 서해 연평도의 해병대 기지와 민간 마을에 북한 해안포와 곡사포로 추정되는 포탄 100여발이 떨어졌다. 해병대원 2명이 숨지고 16명이 다쳤으며 민간인은 2명이 숨지고 수십명이 다쳤다.

원점 타격을 하려면 연평도에 배치된 대포병레이더가 북한 포탄의 궤적을 역추적해 포대 위치를 포착하고 연평해병 K-9 자주포 중대가 이를 즉시 타격해야 한다. 하지만 북한의 1차 포격 당시 우리 군의 대포병레이더는 작동하지 않았고, 북한군 포격 원점을 파악하지 못했다. 이때문에 연평해병 자주포 중대는 실제 북한군 포격 지점이 아니라 평소 훈련할 때 사격 목표점인 북한 무도 기지를 향해 포탄을 발사했다.

당시 미국 국방장관인 로버트 게이츠의 회고록을 보면, 연평도 포격전 때 이명박 대통령은 전투기를 동원한 보복을 계획했지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이를 말렸다. 이동관 홍보수석도 자신의 회고록에 “연평도 상공까지 출격했던 F-15 전투기 2대를 활용해 보복하라는 이 대통령의 지시에 대해 군 관계자들이 ‘미군과 협의할 사안’이라며 행동을 주저했다”고 썼다. 한국 전투기가 북한 황해도 군사기지를 공격해 북한이 반격할 경우 확전·전면전 가능성에 대비해야 하고, 이 경우라면 데프콘(방어준비태세) 4에서 데프콘 3으로 올려야 한다. 데프콘 3이 발령되면 한국군 작전통제권이 한미연합사사령관(미군)에게 넘어간다. 전작권이 없는 한국군 입장에선 “미군과 협의할 사안”이라고 주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에 대해 공군 쪽은 “공대공 무장을 달고 출격한 전투기에 공대지 공격을 하라는 무리한 지시를 해서 타격이 불가능했다”는 반론을 내놨다.

#2011년 8월 NLL 이남 포격

2011년 8월10일 오후 1시께 북한이 서해 용매도 기지에서 북방한계선(NLL) 남쪽 해상으로 해안포를 쏘았을 때 연평도에 배치한 대포병레이더는 작동 스위치를 끈 채 대기 중이었다. 대포병레이더는 하루 24시간 가동하면 과열이나 과부하로 고장나기 때문에 대개 하루 5~6시간 가동하고 그 외 시간에는 가동을 멈춰야 한다. 북한의 해안포 발사 시점에 레이더가 가동하지 않았으니 원점을 알 수가 없었다. 원점 타격이 불가능했던 이유다.

#2014년 3월 NLL 이남 포격

황해도 장산곶, 강령반도 등의 북한군이 2014년 3월31일 낮 12시 포탄 500여발을 쐈고 이중 100여발이 북방한계선 남쪽 해상에 떨어졌다. 백령도 K-9 자주포는 포격 원점이 아니라 북방한계선 인근 해상으로 300여발을 대응 사격했다. 이에 대해 보수단체 쪽에선 “원점타격을 실시하지 못했으며, ‘원점 타격 방침’이 조롱거리로 전락했다”고 비판했다.

#2014년 5월 해군 초계함 포격

북한 해안포가 2014년 5월22일 서해 해군 초계함을 향해 포탄 2발을 쐈다. 포탄이 떨어진 곳은 NLL에서 20㎞ 이남이었고 포탄은 함정 좌우 각 150m 지점에 떨어졌다. 이때도 대포병레이더가 멈춰 있었기 때문에 정확한 포격 위치를 확인하지 못했다. 군은 포격 원점이 아닌 북한 함정 근처 바다에 5발의 대응사격을 했다.

군 당국이 2015년 8월10일 경기도 파주 등 비무장지대 접경지역 2곳에서 11년 만에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다. 2004년 6월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 합의에 따라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고 대형 확성기를 철거하고 있는 군인들. 연합뉴스

#2015년 8월 연천군 야산 포격

2015년 8월4일 비무장지대(DMZ) 목함지뢰로 부사관 2명이 중상을 입자 11년 만에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다. 북한군은 2015년 8월20일 오후 3시52분께 14.5㎜고사포 1발과 76.2㎜직사포 수발을 경기도 연천군 야산 등에 포격했다. 이에 군은 케이(K)-55 자주포의 155㎜ 포탄 29발로 공격 원점이 아니라 북한 임의의 지점을 포격했다. 당시 국방부는 “원점 타격이 아니라 대응 타격을 했다. 아군피해가 없는 지역에 포탄이 떨어졌기 때문에 원점 타격을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 군 내부에서도 원점 타격에 대한 비판이 나왔다. 공군사관학교가 내는 <공사논문집>(현재 ‘군사과학논집’) 2015년 66권 2호에 실린 ‘북한의 국지도발억제를 위한 공격원점 타격의 문제점과 대응책’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공격원점 타격 개념은 주도권, 억제효과, 예방학습효과 측면에서 억제하기도 힘들 뿐더러, 도발을 당한 우리 군이 표적을 탐색할 책임과 도발 상황을 도발자의 주도에 따라 수동적으로 끌려갈 수밖에 없는 취약성을 가지고 있는 전술개념이다. 따라서 국지도발 억제를 위한 공격원점 타격 개념으로는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기가 어렵다고 판단된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평소 원점 타격을 호언 장담하다 막상 실제 상황에는 원점 타격을 주저하거나 회피했다. 전작권을 가진 미국이 확전을 우려해 원점 타격을 말리고, 한국군의 대포병 탐지능력 대응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권한과 능력도 부족한데도 말만 앞세운 것이다. 2008~2012년 청와대 대외전략비서관·대외전략기획관으로 근무했던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이런 사정을 잘 알 것이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지금까지 ‘북한 도발에 강력한 대응책’으로 원점 타격을 강조하고 있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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