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도 못할 짓 같다..방화살인에 놀라서 안정제 먹고 법정갔다"

유동주 기자, 성시호 기자, 이세연 기자 2022. 6. 10.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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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뉴스1) 공정식 기자 = 10일 오전 대구 수성구 범어동 변호사 사무실 화재 현장에서 경찰·소방·국과수·한국전기안전공사 등으로 구성된 합동감식반이 정밀 감식을 진행하고 있다. 2022.6.10/뉴스1

대구 변호사사무실 방화 사건으로 변호사 사회가 동요하고 있다. 6명이 사망한 대구 방화사건에 대해 일선 변호사들은 '직업적 회의감'과 '두려움'을 느낀다고 토로하고 있다.

그간 의뢰인과의 분쟁 등 크고 작은 민원에 시달리던 변호사들은 자신이 담당했던 사건 관계자들도 대구 사건과 같은 짓을 벌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걱정이 앞선다고 입을 모은다.

"내 의뢰인도 아닌데, 잘 알지도 못하는 상대방 의뢰인이 테러하러 왔다는 게 '충격'"

대구 사건에서 자신의 외뢰인이 아닌 상대방 의뢰인이 직접 테러를 가한 것도 의외라는 반응이다. 보통 변호사들이 겪는 어려움 중 하나는 자신을 선임했던 의뢰인과 틀어졌을 때 발생하는 각종 민원이다. 대부분 사건 결과에 불만을 품고 지불해야할 수임료를 주지 않거나 변호사단체에 징계해달라는 진정을 하거나 협박을 가하는 것들이다.

그런데 이번 대구 사건에선 서로 얘기해본 적도 없고 잘 알지도 못하는 상대방 의뢰인이 상대편 변호사에게 직접 공격을 가했단 점에서 변호사들은 충격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서초동 개업 변호사 A씨는 "상대측 의뢰인이 나에게 위협을 가할 수 있을거라고 예상해 본 적이 없어서 당황스러웠다"며 "맡은 일을 잘할수록 오히려 상대방에게 보복 당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거라면 변호사 생활 참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고 호소했다. 이어 "변호사 업무 자체가 갈등 상황의 정점에서 대변인이 되어 다투는 일이다보니 언제든 신체적 위협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며 "이 때문에 만성 두려움과 피로를 느끼기도 한다"고 했다.

극단적인 물리적 협박을 받았다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형사사건 국선변호를 다수 진행한 B변호사는 "국선변호를 하면서 '칼로 찌르고 싶다', '출소하면 찾아갈테니 기다려라' 등의 폭언과 협박을 많이 듣는데 자주 듣다보니 무뎌졌었다"며 "그런데 이번 사건을 접하고 다시 경각심이 생기며 걱정이 늘었다"고 했다. 이어 "특히 형사사건은 공격적인 성향의 의뢰인을 대하기도 하기 때문에 두려움이 더 크다"라고 했다.

"이제 변호사도 못할 짓이란 생각 든다…방화 소식에 몸이 떨려서 안정제 먹고 선고공판 들어갔다"

사건 당일 끔찍한 방화살인 소식을 듣고 법정에 가기 두려워졌다는 변호사도 있었다. 10년차 C변호사는 "뉴스를 보고 '이제 변호사도 못할 짓'이란 생각이 들었다"며 "선고가 2건이나 있었는데 갑자기 결과를 듣기가 전에 비해 많이 두려워져서 안정제를 먹고 법정에 들어갔다"고 고백했다.

형사 전문인 D변호사도 "주로 형사사건을 맡다보니 상대편 의뢰인에게 협박을 당하진 않지만 의뢰인에게 불만이 섞인 전화를 많이 받는다"며 "형사사건 의뢰인이 '결과가 잘못됐으니 돈 돌려내라', '가만두지 않겠다'라고 하는 경우는 많았다"고 했다.

(대구=뉴스1) 공정식 기자 = 9일 오전 10시55분쯤 대구 수성구 범어동 대구지방법원 인근 7층짜리 빌딩 2층에서 방화로 인한 불이 나 7명이 숨지고 40여명이 다치는 등 다수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사건이 일어난 변호사 사무실 건물 유리창이 깨져 있다. 2022.6.9/뉴스1

사법체계의 한 축이면서도 사법체계와 법치주의의 한계에 무력감을 느낀다는 이들도 있다. 민사 사건을 주로 다루는 6년차 E변호사는 "사법제도는 사적으로 분쟁을 해결하거나 보복하지 않고 법원에서 분쟁을 해결하고자 만들어진 제도인데 이런 사건들을 보면 씁쓸하다"며 "하나의 돌발 사건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문명화되기 이전으로 회귀한 셈"이라고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테러에 사실상 대비할 수 없다는 점도 변호사들이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다. 대형 로펌처럼 출입이 까다롭지 않은 대부분의 중소형 로펌과 개인 변호사 사무실은 언제라도 테러에 노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철통 보안 '대형 로펌' 외엔 사실상 무방비…CCTV 설치하고 보험들어도 사전에 막진 못해"

소규모 사무실을 직접 운영하는 대표 변호사들은 개인적으로 CCTV를 설치하거나 보험을 드는 등 최소한의 조치 밖에 할 수 없다고 하소연 했다. 제도적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F변호사는 "CCTV를 설치하고, 업무시간이 끝난 오후 6시 이후에는 사무실 문을 잠가놓는 등 나름 신변보호를 위한 조치를 하고 있지만 이걸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며 "이번 사건도 이같은 방법으론 충분히 막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올해 소형 로펌을 연 G변호사는 "대형 로펌은 큰 돈을 들여 경비업체를 고용하거나 방호시스템을 마련할 수 있지만, 소규모 변호사 사무실은 현실적으로 스스로 보호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변호사뿐만 아니라 소속 직원들도 이번 사건으로 걱정이 커서 사고가 나더라도 실질적인 피해보상을 할 수 있는 보험이라도 추가로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이어 "의료인을 폭행하면 가중처벌하고, 경찰관이나 소방관을 폭행하면 공무집행방해죄로 처벌하고 있다"며 "국민의 기본권과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는 변호사들에 대한 폭력에도 법적인 장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대구=뉴스1) 공정식 기자 = 9일 오전 10시55분쯤 대구 수성구 범어동 대구지방법원 인근 7층짜리 빌딩 2층에서 방화로 인한 불이 나 7명이 숨지고 40여명이 다치는 등 다수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경찰과 소방당국이 사고현장 주변을 통제하고 건물 내부에서 희생자 수습과 수색을 진행하고 있다. 2022.6.9/뉴스1

"변호사들이 의뢰인 대하는 태도에 대해 반성해 볼 필요도 있어…패소한 경우에 책임회피로 자극해선 안 돼"

10여년 동안 대형 로펌에서 일하다 질병이 생겨 변호사 업무를 잠시 쉬고 지방에서 휴양을 하고 있는 H변호사는 "현업을 떠나 있어서인지 이번 사건을 보고 동료 변호사들이 느낄 두려움도 공감됐지만 반대 측인 불만을 가진 외뢰인 심정도 새삼 고려해 보는 계기가 됐다"며 "개인적으로 대형 로펌에서만 일해서 기업 상대라 그런 일을 겪을 일이 거의 없었지만 개인 사무실을 운영하는 변호사들은 소위 '진상 의뢰인'을 처리하는 게 큰 업무 중 하나고 그런 이유로 대부분 사무장을 둔다"고 설명했다.

H변호사는 "과거에 변호사들이 의뢰인을 귀찮게 여기거나 직접 만나지 않고 사무장이 대부분 상대하도록 했던 큰 이유 중 하나가 이런저런 민원들을 피하기 위해서였다"며 "모든 사건이 의뢰인 뜻대로 풀릴 수 없는 일이고 민사 사건이면 한 쪽은 필연적으로 패할 수 밖에 없는데 그런 과정에서 패한 변호사가 의뢰인에게 상대편 변호사 욕을 한다거나 내 잘못이 아니란 식의 책임회피를 하면 의뢰인들을 자극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어 "분쟁의 해결사인 변호사들이 오히려 분쟁을 새로 만들거나 부추긴 건 아닌지 그리고 의뢰인들을 대하는 태도에선 고칠 부분이 없었는지 반성적으로 생각해 볼 필요도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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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주 기자 lawmaker@mt.co.kr, 성시호 기자 shsung@mt.co.kr, 이세연 기자 2counti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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