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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일본인들은 정말 한국을 좋아할까

장부승 관서외국어대 국제정치학 교수 입력 2022. 06. 11. 03:01 수정 2022. 06. 11.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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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장부승의 海外事情]
최악으로 치달은 한일관계
상대를 설득하는 최선의 방법

동네 마트에서 한국 상품 판촉 행사를 봤다. ‘韓国’(한국)이라고 간판을 만들어 천장에 달고, 한국 음식을 소개하는 게시판도 붙였다. 일본에서 흔히 보는 광경이다. 이제 일본에서 한국 먹거리는 일상화된 느낌이다. 김밥, 비빔밥, 떡볶이, 냉면, 불고기, 잡채, 고추장, 김 등 마트에 가면 한국 음식이 많다. 텔레비전을 켜면 한국 드라마가 나온다. 대사도 한국말이다. 학생들이 케이팝(K-pop)에 맞춰 춤을 추고, 카페에선 한국 노래가 흘러나온다. 한국 가수들은 꾸준히 일본을 찾는다. 객석은 일본인들로 그득하다.

일러스트=유현호

민족 자긍심으로 가슴이 웅장해진다. 대.한.민.국! 그러나 금세 궁금해진다. 일본 사람들은 정말로 한국을 좋아하는 걸까? 그렇다면 일본 정부는 왜 과거사에 대해 사과하지 않는가? 왜 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을 거부할까?

이 모순을 설명하기 위해 흔히 동원되는 것이 ‘혼네-다테마에’ 이론이다. 일본 사람들이 겉으로는 한국을 좋아하는 척하지만 속내는 한국을 싫어한다는 것이다. 정말? 사실은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억지로 한국 음식을 먹고, 드라마를 봐? 아무래도 말이 안 된다. 그래서 나오는 것이 ‘정치인-국민 분리론’이다. 일본 국민들은 한국에 우호적인데, 일본 정치인들 때문에 한일 관계가 악화됐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현재 징용과 위안부 문제 관련 일본 내에서는 거의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좌우를 아우르는 일본의 5대 일간지가 근래 한일 관계 악화의 일차적 책임은 한국에 있다는 입장을 사설로 밝힌 바 있다. 좌파 야당들마저 우선 한국 측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한다. 여론조사 결과를 봐도 일본 국민 3분의 2 정도는 징용과 위안부 문제 관련해 정치권, 언론과 의견이 같다.

일본인들은 모순덩어리인가? 이 문제의 답을 찾기 위해 똑같은 질문을 우리에게 해보면 어떨까?

한일 관계가 나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 십여 년간 일본에 대한 호감도는 바닥이었다. 그런데, 일본을 찾는 관광객은 많다. 코로나 이전 일본 방문 관광객이 대략 연간 3000만명이었는데, 그중 700만 정도가 한국인이었다. 코로나 규제가 해제되면서 일본행 관광 상품이 불티나게 팔린다. 일본이 싫다면서 왜 한국인들은 일본을 찾나?

한일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던 몇 년 전 한국의 대응도 일본인들에게는 미스터리다. 국제정치 무대에서 다른 나라가 우리 말을 듣지 않을 경우 전형적으로 사용되는 정책 수단이 수출 금지다. 보통 ‘제재’라고 하는데, 쉽게 말해 우리 물건을 쓰지 말라는 것이다. 태평양 전쟁 발발 직전, 일본을 향해 미국이 꺼내든 칼도 ‘수출 금지’였다. 상대방에게 경제적 고통을 줘서 우리 말을 듣도록 하는 외교 수단의 일종이다.

그런데 한국은 정부 고위 관계자가 “죽창을 들자”고 하면서도 수출 금지는 취하지 않았다. 정부 차원에서 일본에 타격을 줄 만한 조치는 사실상 전무했다. 당시 한국은 맥주, 의류 등 소비재에 대해 시민들 차원에서 ‘보이콧’을 했을 뿐이다.

일본 맥주를 안 마시면 일본 경제에 타격이 갈까? 아사히 맥주를 생산하는 아사히그룹의 연매출이 20조원인데, 한국에 수출되는 일본 맥주 다 합쳐봐야 불과 몇 백억원이다. 그나마 잠시 줄었던 수입도 불과 2년 만에 원상 복귀됐다. 소부장(소재, 부품, 장비) 독립을 했다더니, 일본으로부터의 소부장 수입은 늘기만 한다.

이번엔 정말로 한국이 세게 나와서 진짜로 일본 경제에 타격이 오는 것 아닌가 내심 긴장했던 일본인들마저 이제는 ‘아, 한국에서 외치던 반일(反日)은 우리를 향한 것이 아니라 자기들끼리 국내에서 싸우는 과정에서 나온 구호였나 보다’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도무지 이해가 안 되기 때문이다. ‘죽창’을 들자더니 막상 휘두르지는 않으니.

/장부승 교수 제공 일본의 한 마트에 한국 소주와 과자 등이 한국 식료품 칸에 별도로 전시되어 있다. 일본에선 한국의 음식과 K-POP 등이 대중화된 지 오래다.

문화에 대한 우리의 태도 역시 일본인들에겐 모순이다. 일본 TV에 한국어가 나오면 흐뭇해하면서, 한국 지상파에서 일본어 드라마는 볼 수 없다. 한국 걸그룹에 환호하는 일본 젊은이들에 뿌듯해하지만, 한국에선 일본어가 한 단어라도 들어간 노래는 라디오 전파를 타지 못한다. 일본에서 한글 간판을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한국에서 ‘오뎅’ ‘스시’는 불순한 말로, 순화 대상이다. 우리는 한일 간 문화 교류를 늘리자고 하지만, 일본인들이 보기에 우리는 일방적 문화 수출만 고집하는 건 아닐까?

앞으로도 일본인들이 한국 노래 많이 듣고, 김치 많이 먹는다고 한일 간 구체 외교 사안에 대해 일본 정부 입장이 바뀌진 않을 것이다. 사안의 본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섣불리 ‘정치인-국민 분리론’을 내세울 일이 아니다. 일본인들 다수가 우리와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들에게 직접적으로 우리 입장을 설명하겠다는 적극적 자세를 가져야 한다.

동시에, 우리 역시 마음을 열어야 한다. 상대방을 설득하는 최선의 방법은 우선 상대방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우리는 문을 닫은 채 너희만 귀를 열라 해서는 앞으로 나갈 수 없다. 교류는 쌍방향이어야 한다. 우리 역시 일본에 마음을 열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것이 대등한 한일 관계의 기초 아닐까?

일본 제국주의가 패망한 지도 이제 77년이다. 강산이 여덟 번 바뀌고, 갓난아기가 백발 노인이 될 세월이다. 이젠 우리도 “일본인들은 한국을 좋아하냐?”라고 묻기만 할 게 아니다. 우리 스스로에게도 물어야 한다. 우리는 일본을 좋아하나? 아니, 우리는 일본을 좋아할 준비가 되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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