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문 잉크도 안 말랐는데..국토부·화물연대, 안전운임제 갈등 여전

이혜리 기자 2022. 6. 15.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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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오른쪽)와 이봉주 화물연대 본부장이 15일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안전운임제 일몰 폐지와 전품목 확대를 위한 법제화 추진 기자회견을 마친 뒤 회견장을 나서며 대화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화물연대)와 국토교통부가 화물노동자의 최저임금에 해당하는 안전운임제를 ‘지속 추진’하기로 합의하면서 지난 7일부터 8일간 이어진 총파업은 일단 중단됐다. 하지만 ‘지속 추진’의 의미를 놓고 화물연대는 ‘일몰 완전 폐지’라고 주장하는 반면, 국토부는 이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라 향후 국회 논의에서 갈등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화물연대는 15일 더불어민주당·정의당과 각 기자회견·간담회를 가지며 안전운임제의 일몰 폐지 법안 처리를 촉구하는 행보에 나섰다. 민주당 기자회견에는 박홍근 원내대표를 비롯해 조오섭·진성준 의원 등이 참여했다.

안전운임제는 낮은 운임으로 과로·과적·과속 운행이 고착화된 화물노동자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최소한의 운임을 공표하는 제도로, 올해 말 일몰을 앞두고 있다. 일몰을 폐지하려면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을 개정해 부칙의 유효기간 조항을 삭제해야 한다.

전날 화물연대가 공개한 국토부와의 합의문을 보면 ‘국토부는 화물자동차 안전운임제(컨테이너, 시멘트)를 지속 추진하고, 품목 확대 등을 논의한다’고 돼있다. 이에 따라 안전운임제가 올해 말로 없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합의문에 ‘일몰 폐지’라고 명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몰 조항을 없애 안전운임제를 항시적인 제도로 안착시킬 것인지, 일몰 기한을 일단 연장한 뒤 추후 논의하자는 것인지 입장이 엇갈린다.

화물연대는 ‘지속 추진’이 일몰의 전면 폐지라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이봉주 화물연대 본부장은 정의당 간담회에서 “일부 언론이 ‘지속 추진’을 두고 (안전운임제를) 연장한 것이라고 보도하는데 상당히 유감”이라며 “지속 추진은 일몰 폐지”라고 말했다. 일몰 기한을 연장해봤자 일몰 시점이 도래할 때 또 다시 이번과 같은 갈등이 나타날 것이라는 게 화물연대의 우려다. 화물연대 쪽에선 그런 점에서 총파업을 철회한 것이 아니라 ‘유보’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몰 폐지가 성사되지 않을 경우 또 다시 투쟁에 나설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반면 국토부는 보도자료에서 “현재 운영 중인 안전운임제를 연장 등 지속 추진한다”고 해 ‘연장’을 언급했다. 일몰 기한 연장을 말하는 것이다. 어명소 국토부 2차관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화물연대가 요구한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는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밝혔다. 어 차관은 “정부 차원에서 (안전운임제를) 하는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는 것 같다”며 “제도가 발전시켜야 할 부분이 많고, 완성형 제도가 아니다”라고 했다.

15일 경북 포스코 포항제철소 제3문에서 제품이 출하되고 있다. 포스코는 화물연대가 파업을 중단하자 이날 제품 육상 운송을 재개했다. 연합뉴스

화물연대는 “정부가 합의를 왜곡해 발표했다”며 “안전운임제 연장은 최초 국토부가 낸 안으로 화물연대는 이를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교섭 과정에서 일관되게 밝혔고, 이에 여러차례 조율을 거쳐 합의된 안이 안전운임제의 ‘기간의 정함이 없는’ 지속 추진이었다”고 했다. 화물연대는 “교섭 과정에서 연장 관련 논의는 전혀 진행된 바 없는데 국토부가 합의된 바 없는 문구를 삽입해 발표한 것에 분노를 표한다”며 “국회를 통한 법제화가 더욱 중요해졌다”고 했다.

품목 확대와 관련해서는 당초 ‘적극 논의한다’ 문구로 검토됐으나, 최종 합의에서는 ‘논의한다’로 완화됐다. 화물연대는 전품목 확대를 주장하고 있지만, 국토부는 아직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2018년 안전운임제 도입 논의 때 시멘트와 컨테이너 2개 분야로 정한 이유로 당시 국토부는 “다른 화물들은 종류가 많고 계량할 수 있는 방법이 복잡하다”며 어려움을 호소했었다. 합의 주체도 처음에는 국민의힘·화주단체까지 포함된 안으로 논의했지만, 화물연대와 국토부 2개 주체만 참여하는 것으로 정리됐다.

화물연대 총파업은 중단됐지만, 노동계 투쟁이 줄줄이 예정돼있어 긴장감은 높아지고 있다. 통상 여름은 각 사업장의 임금·단협 투쟁이 본격화하는 시기다. 택배노조 우체국본부는 우정사업본부의 새 위탁계약서가 쉬운 해고를 가능케 한다며 오는 18일 하루 경고 파업을 한다. 20일부터는 전국에서 동시다발 농성에 들어간다.

민주노총은 다음달 2일 전국노동자대회를 연다. 같은 날 공공운수노조는 총궐기를 진행하는 등 민주노총 산하 노조들이 서울 도심에 집결한다. 민주노총은 반노동적 인식을 드러내온 윤석열 정부를 규탄하고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 적용 저지, 비정규직 철폐, 특수고용노동자 노동3권 보장 등을 내걸고 있다. 다음달 중순에는 금속노조가 20만명 참가를 목표로 총파업을 한다.

최근 국민의힘이 산재 사망 사고가 발생한 기업의 경영책임자 처벌을 완화하는 내용의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안을 발의한 것도 노동계와의 갈등 촉발 지점이다. 한국노총은 전날 성명을 내고 “윤석열 정부와 ‘윤핵관’, 경영계의 삼각 편대가 노동자 목숨을 팔아서 사용자 배를 불리겠다며 정경유착의 포문을 연 것”이라며 “개악 저지를 위해 강력히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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